사람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만들어 관계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신인류 대박!

제2장. 적극적 복지사회

 

1. 적극적 복지사회를 향하여

 

근대사회가 성립된 후 민주적 생활양식이 보편화되었음에도, 구시대처럼 학대를 받으면서 숨죽이고 살아가는 여성이 많았습니다. 이는 부계사회의 등장 후 오랫동안 소외된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절대 유일신이 불확실한 존재로 생각함에 따라 형성된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폄하는 여전하여 17~18세기까지 초야권이 있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소가족제도가 보편화되었으며, 시민혁명으로 자연법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사회가 성립되었음에도 여성은 여전히 10대 1 정도의 불평등과 가정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사실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전통 한국의 경우, 대가족제도에 의해 집안 어른이나, 이웃들의 눈치를 살펴야 함에 따라 여성에 대해서 가혹행위나 폭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제부터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소가족제도가 보편화되면서 가정폭력이 증가하게 되었다. 물론 양반문화를 지향하였던 한민족은 난폭한 행동이나, 억지를 부리거나, 상스러운 욕을 하지 못하는 선량한 민족이었습니다.

이는 한민족 여성들이 양반문화에 의해 인권유린이나 폭력에 의한 학대를 받지 않았음을, 일제의 혹독한 헌병통치에서 살면서도 아름다운 마음씨로 후손의 행복한 인생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매일 새벽에 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 헌병통치의 억압으로 공포가 일상화된 가운데, 수탈로 인한 절대빈곤층의 증가로 직업을 구하기 위해 도시로 왔던 가족들은 가정폭력으로 가정불화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사회 혼란과 6.25 전쟁이나 자본주의의 심화 과정을 겪으면서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 등으로 소가족제도가 보편화되면서, 가정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즉 한민족이 폭력적이고 무례한 사람을 쌍놈들이라 경멸하였지만, 일제의 무자비한 극단적 폭력을 경험하면서 폭력이 일상화된 것입니다.

이는 중용을 생활화하여 극단적인 것을 피하는 온순한 좋은 기질을 나약함으로 비하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해방 후 동족상잔이라는 끔찍한 일까지 겪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한민족의 고유한 특성이 사라지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1 인간의 상품화로 불행하게 된 여성

인류는 자본주의로 인하여 만들어진 제국주의시대를 겪으면서, 인류의 반인 여성들은 비 복지적인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인식하여 탈 자본주의를 위한 결사를 하였습니다. 즉 자본주의가 인간을 상품화하면서 여성의 성이 가장 먼저 상품화되고, 폭력의 위협을 당했기 때문에 탈 자본주의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여성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를 다음의 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살인의 20~50%가 가정 안에서 일어나고 살인의 40%는 부부의 살인이며, 이들의 85%는 아내가 구타당해 살해된 경우라는 보고가 있고, 여자 피살자의 40%는 남편이 살해한 경우라고 한다.

독일에서도 여성 피살자의 22%가 남편의 폭행으로 죽었다 한다. 김광일의 조사에 따르면 구타당하는 아내의 61%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적이 있는데, 골절이 41%, 탈구 21%, 안구 탈출 안구파열이 6% 칼등 예리한 물건에 찔린 상처가 21% 임신한 아내를 때려 유산한 경우가 29%나 되었고, 두개골절이 2명, 안구 파열에 의해 안구가 튀어 나온 경우도 있었다………

93%는 구타 이외에 말로 협박하고 욕을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는데 상스러운 욕에서부터 상대방의 체면과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하는 말을 하고 죽으라고 저주하거나 죽인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88) (서진영, 여자는 왜, 동녘 250~251p)

또한 “김광일의 연구대상 중 54%가 아내 구타 후 강간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는데 구타당한 후 공포와 모멸감 그리고 상처의 아픔 때문에 여성에게는 성교할 의사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폭력으로 성교를 감행하는 것이다.” (89) (서진영 251p)

이처럼 사고로 다치는 경우보다 가부장이나 남성들의 폭력에 의해서 다치는 경우가 더 많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남성이 출산할 수 없음에 따라 신체적으로 유리한 성충동이 강력한 만큼, 상대적으로 오늘날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때로는 공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충돌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부계주의적인 자유주의와, 모계주의적인 민주주의를 혼합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절차적 정의로서 수단에 머물게 한, 불완전한 민주주의가 남녀상호간의 충돌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부계와 모계가 균형을 이루는 체제로 공고화되어야 함에도, 부계가 정치 권력을 독점한 데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계와 모계의 두 축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지구촌 시대가 되었음에도, 부계 일변도의 권력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착오의 결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계 편도의 권력구조와 부합되는 신자유주의의 원칙을 고수함에 따라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여성들에게 치명적이며, 양극화로 인하여 사회발전의 중추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희박해지면서, 인간의 연대성이 무너진 위험한 사회가 공고화된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부계주의의 경제 제도로써 자본주의가 만드는 절대적 양극화는 가족해체를 증가시키면서 결손가정의 자녀들로 인하여 유발되는 사회적비용이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습니다.

하여 천부인권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한, 모계적 가치인 ‘천부소유권’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위한 정치경제 제도가 성립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여성이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한 생활 정치의 주역이 되는 체제의 성립을 말하는 것입니다.

 

1.2.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여성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성립된 근대사회는 여성의 사회참여를 가능케 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여성의 경우 저임금의 허드렛일이나, 비정규직 등으로 마치 문어가 자신의 꼬리를 먹는 것처럼, 소모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여성 인권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못했지만, 구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공업 중심이었던 초기자본주의에서 여성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즉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여성 노동자가 노예 노동자를 대체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제2차 산업혁명인 중화학 공업을 넘어 오늘날 제4차산업혁명인 첨단 과학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많은 여성이 형편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즉 남성을 보조하는 고전적인 일자리조차도 기계로 대체되어 저임금조차 줄어가고 있습니다. 하여 경제적 독립도 어려워져가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자본주의(물질주의)와 여성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부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는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하며,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양극화가 형성되면서 나타나는 높은 실업률이 복지축소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속성에 충실할수록 사회복지도 소홀해지면서 많은 여성이 서비스업으로 몰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도덕적 타락이나, 가족해체, 범죄증가 등으로 인해 요구되는 복지 수요와 치안 비용 등 사회적비용의 폭발적 증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모계적 속성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정치가 부계적 속성을 내재한 경제적 자유주의를 통제할 수 없었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여 자본주의 분배양식(물질주의)은 인간을 타락하게 함을 역사적 경험으로 알게 됨에 따라 존재의 삶, 관계의 살을 가능케 하는 모민주의 분배방식(정신주의)에서 사는 것이 바람직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회조직의 기초인 가족은 사회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음에 따라 모성에게 정부가 가족복지를 위해 ‘소유상하한제’로 만들어지는 잉여가치를 모성에게 수당으로 지급하는 새로운 분배양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정에서 모성이 배려, 보살핌, 출산, 양육, 건강 식탁, 청결 등 일정한 복지 노동을 인정하여 정부가 보상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적극적 복지국가라고 합니다.

아무튼 신자유주의는 야경국가 수준의 국가를 구현코자 함에 따라 자본주의 속성에 충실했던 초기자본주의와 여러 면에서 흡사합니다. 물론 공산당의 퇴출로 인하여 인간의 배타적 소유욕인 탐욕을 배양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은 더욱 확고해진 결과로 신자유주의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부계적 분배양식으로써 자본주의는 세계적 양극화를 초고속으로 달성함에 따라 더욱 위험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시작한 지 약 200년 정도이지만 세계적 양극화와 더불어 오늘날 70억 인구 중 대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임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적나라한 향락산업과 더불어, 도덕적 타락을 유도하는 퇴폐적 문화가 보편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섹스를 상품화한 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퇴출을 전제로 한 테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합리적이며 지혜로운 존재임에 따라 테러로 문제해결을 하기보다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은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사회협동을 한 결과, 오늘날의 고도 과학 문명을 이루어 지구촌 사회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인간은 양심을 통해 형성된 인류의 각성으로 인하여 문명화된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믿음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 선하게 살 수 있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세계화로 역사 발전케 하는 것이 인간의 출생목적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3 능력이 배양된 여성

부계혈통주의가 주류를 이루면서 남성은 세력을 형성하기 쉬웠던 반면, 여성은 부계혈통주의를 보조하는 처지로 세력을 형성할 수 없었습니다. 즉 부계혈통주의로 인하여 여성을 혈통 보존 수단으로 종속함에 따라 대다수 여성이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절대빈곤층의 여성의 경우 자녀부양과 생존을 위해 매춘을 했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은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함에 따라 남편의 외도나 굴욕적인 멸시, 수모 등을 겪게 된 것입니다. 하여 매춘의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적극적 복지국가가 성립되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양극화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천부소유권’을 사회적 합의로 인정하여 물적 기초를 보장하는 모민주의 분배양식인 ‘소유상하한제’로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한다면 매춘 자체가 소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무제한 소유를 정당화하여 무한한 탐욕을 배양함에 따라 한정된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환경오염으로 새로운 질병 확산이나, 산재로 인한 노동력 상실 등으로 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이 되는 가운데, 인간성 황폐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인류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적어도 수억 년에 걸친 경이로운 생명의 기적을 무시하며 우선 편리함이나 욕구 충족 등을 위한 삶을 추구한 결과로 재앙을 맞고 불행한 인생을 살 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 자본주의를 수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사회로 나빠졌다면, 탈 부계적인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모민주의의 성립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부계적 가치가 주류를 형성한 사회에서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진보하기 위해 모계와 부계가 균형을 이루는 모민주의 정치체제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이는 근대사회가 성립되었다 할지라도 여성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앞의 사실을 긍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계적 가치가 일반의사로 되어 있는 척박한 환경에서 비교적 단기간에 정치세력을 형성하여 남녀평등이 차별금지법으로 어느 정도 실효성을 갖게 된 사실이나, 여권신장을 권고하거나, 여성 NGO가 국내 정치에 압력을 행사하거나, 녹색 생명 운동을 위한 국제적 NGO의 중심에서 독자적이고 조직화 된 힘을 갖추는 등을 통해 여성이 정치적 감각이 상당함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는 법이 본질적으로 불문법처럼, 판례에 의존하고 있으며, 더불어 정서에 부합되는 판단을 함에 따라 여성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극복하고 있음을 볼 때, 실현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여성이 주도하는 생활 정치가 오래지 않아 활성화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즉 부계사회가 등장한 후 가족복지만을 담당하고, 수천 년에 걸쳐 사회적 합의에 직접적인 참여를 하지 못했으며, 종속적인 지위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불과 100년 정도에 걸쳐 획기적인 여권신장을 이룩한 점을 상기해본다면, 여성이 민주정치에 적합함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실적으로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는 인간의 삶은 급박한 문제가 많음에 따라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인권은 선언적 의미로 머무르기 쉬운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인권운동과 더불어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생명 운동으로서 녹색 환경운동을 조직화한 비정부기구가 세계정부처럼, 각국에 권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동등한 교육의 기회와 더불어 남녀평등을 익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부계혈통주의가 엄연하게 사회정서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의 경우 교육과 현실이 다른 표리부동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음에 따라 여성은 내심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심으로 인하여 인격 장애를 겪기도 하거나, 더 나아가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실적으로 부계혈통주의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남녀평등을 교육받는 여성의 경우 죽도 밥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에 표류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현재의 모순을 해결코자 하는 의지로써 페미니즘(여성 사회주의)이나, 녹색 생명 운동 NGO 등에 참여한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이러한 갈등은 여성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현실 적응을 위한 가부장의 노력을 원망이나 공격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물론 남녀평등을 가르치는 학교 교육과 전혀 다른 불평등한 현실을 가르쳐야 하는 가정교육으로 인하여 가장은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하여 가족부양 능력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은 권한보다 책임이 더 많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스스로 가부장제를 벗어 던져야 할 때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강도의 경쟁이 일상적인 현대자본주의에서 원자화된 개인의 삶을 살게 함에 따라 중압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수많은 가장이 삶을 포기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오늘날 가장은 대표성만 있을 뿐, 권위가 약화 되었음에도, 수천 년에 걸쳐 공고화된 가부장제로 가정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오늘날 무한경쟁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남성의 능력은 양극화로 우열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족을 이끌만한 경쟁력을 갖춘 가장들조차, 신자유주의가 공고화될수록 전문성의 부족으로 다수가 경쟁에서 탈락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양극화로 대다수 가장이 힘겨운 삶을 살고 있음을 볼 때, 남성들이 모계적 분배양식의 성립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위험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운동으로써 녹색생명운동의 정치화와 부계와 모계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각 각의 한 축으로 제도화하여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가 양극화를 빠르게 형성하면서 빈곤층의 확대로 가족해체나, 독신 증가 등 수많은 문제를 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등한 교육과 직업훈련 등으로 여성들의 개인적인 역량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제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서 대부분 여성이 초기 자본주의사회처럼 ‘생존을 위한 혼인’을 해야 할 상황이 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부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차가워진 결과로 성립한 소극적 복지국가를 넘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모계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로 역사 발전해야 할 상황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 부계적 분배양식의 문제

오늘날 제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한 인류는 과소비, 높은 교육 수준, 전문화, 높은 실업률, 가족 내부의 욕구불만 폭발 등으로 가장이 부양책임을 다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가장을 돈 버는 기계’라고 폄하를 하거나, 가장은 권위도 없이 부양의무와 가족 대표로서 책임만 있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가장은 ‘빛 좋은 개살구’인 것입니다. 하여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은 부양의 책임이 구조화되어 있음에 따라 적극적 복지사회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가부장은 샌드위치의 입장에서 해방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계 스스로 만든 자업자득의 결과임에 따라 여성에게 공동 주체로서 역할 분담을 요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로 모계적 분배양식을 구현해야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4차산업혁명 시대에 이른 오늘날 고전적인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없어졌으며, 공룡기업군의 무한경쟁으로 인하여 형성된 세계적 양극화는 1대 99라는 절대 치에 이르게 되면서 대다수 가장은 몰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거대기업 공룡집단의 등장, 높은 실업률과 빈곤층의 확산, 과잉경쟁의 유발 등으로 가장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여 부계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여성과 함께 문제해결을 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채워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것처럼 욕구를 자극하는 ‘풍요 속의 빈곤’으로 인해 만들어진 자본주의 발 위험한 사회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탐욕을 배양하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변모케 함에 따라 인간다움의 하나인 나눔, 양보, 용서 등의 마음이 빈약하게 되면서, 인간성 황폐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영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적합한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존재의 삶’을 살 수 있게끔 역사 발전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오늘날 지구촌 시대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우리 속담처럼,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 다름을 존중한 협력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아무튼 무한경쟁의 결과로써 중산층이 사라진, 파레토(Pareto: 1848-1923)가 주장한 20대 80의 양극화 사회가 근대사회의 인간 존엄 정신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은 1대 99라는 절대적 양극화로 근대정신(모더니즘)은 의미를 잃었음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 존엄을 구현하기 위해서 성립한 근대사회는 인간의 사회성과 개인성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 부의 균형도 어느 정도 이루어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음에 따라 이기심을 극대화하여 양극화를 유발하는 자본주의는 근대정신과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인하여, 합법을 가장한 법의 잣대를 기만하여도 성공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할 경우, 자연법사상의 핵심의제인 인간의 사회성이 파괴된다는 점은 문제입니다. 하여 자연법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일어난 시민혁명의 취지에 부합되는 적극적 복지사회로 역사발전이 되는 것이 순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구시대의 절대주의적인 양극화를 거부한 시민혁명의 인권선언이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한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양극화는 이성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불 합치함을 선언한 것입니다. 즉 시민혁명의 원동력인 철학적 상대주의(인본주의)가 절대 봉건제를 퇴출한 것입니다.

하여 배금주의의 양극화는 구시대의 절대주의 양극화와 동질적임에 따라 시민혁명 정신과 배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민혁명 정신은 온전한 민주주의로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에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자본주의는 시민혁명의 뜻과 배치되는 양극화를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인 관용성, 복지, 분권 등과 어울리지 않는 신자유주의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는 자유, 평등, 박애의 인권선언을 근간으로 하여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성립되었음에도, 마치 자유주의를 위해 근대사회가 된 것처럼, 인류의 이상인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위한 형식적 민주주의로써 수단으로 머물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유주의적 분배양식을 민주적 결정인 다수결로서 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 원칙을 위한 절차적 정의로써 민주주의가 수단에 지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여 제국주의로 인한 참담한 역사적 경험이나, 이에 반동한 사회주의의 등장이나, 양극화 등을 통해서 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위한 정치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당경쟁을 유발한 부작용의 결과인 지구온난화, 천재지변, 환경오염 등의 자연 재앙이나, 양극화로 인한 범죄 유발, 치안 비용증대, 가족해체 등을 유발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넘어서 신인류에게 적합한 경제적 민주주의로 진보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무언가 불행한 일들이 많이 유발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수많은 사회단체나, 건강 의료와 관련된 사업이 번창하거나, 보험과 같은 산업 등이 날로 번창하고 있을 상기해 볼 때, 자본주의가 처음 예상했던 우려보다 훨씬 빠르게 위험한 사회가 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물질 풍요를 통해 인간해방을 구현하겠다는 자본주의는 독신이나, 가족해체, 환경오염, 온난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구시대의 권력 양극화로 인한 부패를 시민혁명으로 타파하고, 근대사회를 성립했던 것처럼, 지구촌 시대를 살아야 하는 신인류는 부의 양극화로 인하여 위험한 사회를 타파하기 위해 모민주의 분배양식으로 진보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성의 고유한 일자리인 복지를 주관하여 가족의 태양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모계적 분배양식이 보편화되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1.5 ‘존재의 삶’(미니멀리즘) ‘관계의 삶’을 위한 분배양식

첨단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인류는 고학력이 요구되는 첨단기술이나 전문화 등을 근간으로 하는 무한경쟁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과부하가 걸려 있습니다.

특히 다수여성들은 우수한 남성들의 뒷바라지 수준의 비숙련, 저임금, 비정규직 등으로 삶의 질은 고사하고 생존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저소득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4년도 여성 임금은 남성 대비 64.5%, 2009년도는 62.4% 2020년 67.7% 정도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임금이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고용은 전체의 반 정도로 숙련도가 낮은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하여 모자가정의 경우 계속 가난하게 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공업화로 여성들의 일자리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내용 면에서 남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임금과 낮은 기술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양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양산되는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한 예산의 부족으로 인하여, 여성의 삶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주의가 소유권 보장을 우선함에 따라 어디까지나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한 복지는 후 순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 원칙에 충실한 무한경쟁으로 유발되는 충돌은 천문학적 사회적비용 부담이나 빈곤층의 양산에 따른 폭발적 복지비용 등으로 자본주의 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설비 자동화와 모든 분야가 전문화함에 따라 만들어지는 고실업을 정부가 해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제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학력, 첨단기술, 전문지식 등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에서는 고실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실직과 비정규직의 증가와 더불어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는 이유입니다. 또한 오늘날 식탁은 공업화된 제품들로 가득하거나, 보살핌의 기업화나 양육의 외부의존 등 여성 고유의 대부분의 일이 기업화가 됨에 따라 대다수 여성은 저임금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여 요란한 선전과 높은 빌딩, 거대한 산업시설, 쇼핑천국 등으로 일자리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 수요가 적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빈곤층 여성들이 매춘을 선택한다 해도 도덕적으로 매도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 있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자본주의에서 답을 찾으려는 태만함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매춘에 대해서 단속만 할 뿐 생계형 매춘을 감소시키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성립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절대빈곤층의 경우 생존을 위해 유일한 재산인 자신의 몸이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근본적으로 매춘이 사라지는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이 세계화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오늘날 자본주의 헌법이 자연법사상을 근간으로 해서 만들어졌지만, 양극화를 정당화하는 자본주의에서 빈곤자들 인권은 그림의 떡처럼 법적 실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부인권’의 내용으로써, 자연법사상을 확장한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적극적 복지사회가 구현될 수 있는 정치경제 제도(체제)가 세계화(보편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 존엄을 위한 분배양식인 공유제와 여성의 성교독점권을 보장하여 매춘이 없었던 사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 존엄을 위해 필요한 물적 기초를 보장한 모계적 분배 태도가 참고될 것입니다.

이는 지구촌 시대를 맞이한 인류는 ‘존재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인류가 위험한 사회로 퇴행할 수 없음에 따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분배양식으로 역사 발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태고부터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숙제를 풀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임에 따라 ‘존재의 삶’이 적합할 것입니다.

하여 수많은 사회협동의 결과로써 제4차산업혁명 시대를 만든 사실과 더불어 미니멀리즘 트랜드 자체가 ‘존재의 삶’을 위한 준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시대를 타파하여 성립한 근대사회를 넘어, 포스트 자본주의로써, 온전한 민주주의로써 ‘모민주의’로 역사 발전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즉 오늘날 지구촌 시대에 맞는 자연법사상이 확장된 ‘천부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모민주의’의 ‘소유상하한제’가 보편화될 것입니다. 물론 태고로부터 있어 온 사회협동의 결과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인간의 탐욕을 배양하며, 필요 이상의 과잉경쟁을 유발하여 인간성 황폐화, 자원고갈, 환경오염, 먹이사슬 붕괴 등의 나쁜 결과를 만들었다고 볼 때,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인간성이 회복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2. 구심력의 배양(강화)

 

오늘날 신자유주의에서 살아가는 가장은 전통과 현실의 중간에 있는 마치 샌드위치와 같은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는 만성적으로 부족한 소수의 고급인력, 투자금융의 전문가, 거대기업의 경영진 등은 고소득자가 되는 가운데, 중소기업 경영자나, 중산층은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동화로 어중간한 기술자나 다수의 일반 노동자는 공급과잉으로 저임금의 비정규직이 양산될 만큼, 고실업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제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은 부양의 책임을 다하기 힘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부양책임을 전제로 한 남존여비의 사회정서는 여전함에 따라 현실적으로 사면초가에 있습니다.

또한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사무자동화나 공장자동화 등으로 남성이 했던 일을 저임금의 여성이 대신할 수 있음에 따라 산업 자동화가 가속화될수록 대다수 가장은 부양책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첨단 과학기술, 자동화 기술, 정보통신, AI(인공지능) 등의 발달로 가능해진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에서 자본의 축적이 가속화됨에 따라 낮은 단계의 기술자는 쓸모가 없어지고 있는 가운데, 저임금 여성의 사회진출은 확대되고 있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초국가적인 다국적 기업에 의한 산업 집중화로 양극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형성된 위험한 사회로 인하여 인류의 구심력인 모성성이 상실되는 위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욕구 본능을 자극하고, 배양하는 자본주의에 의해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근대사회에서 모성에게 사회적 미덕으로써 모성애적 인내를 요구하면 받아드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지만, 고실업 사회가 된 오늘날 여성은 출산 양육과 생계까지 책임지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모성애를 벗어던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여 가부장제 사회이면서 모성의 사회적 미덕을 강조하는 것은 착취로 볼 수 있음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미덕에 대한 보상을 적극적 복지사회의 성립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복지적인 신자본주의는 가족이기주의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며, 이로 인한 과당경쟁이 가족 착취를 유발하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태적으로 민주적이며, 복지적인 여성과 부합되는 새로운 정치경제 제도로써 탈자본주의적인 모계 민주주의가 적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오늘날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부계혈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가부장제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여 부성과 모성 중에 누구나 가장이 될 수 있는 공유제처럼, 부계와 모계와 함께 각 각의 한 축으로 존중하는 모민주의 체제가 요구됩니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에서 소득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사노동이나, 봉사 등을 소득으로 인정하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하기 위한 체제가 세계화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2.1 탈자본주의를 지향

자본주의적 양극화로 유발된 빈곤층의 경우 매춘이 생계 수단으로 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탐욕을 배양함에 따라 매춘이나, 강간 등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스스로 부패와 타락을 즐기며, 흉물스럽게 퇴보하고 있습니다.

이는 절대 봉건제로부터 반동하여 형성된 자유주의가 인간의 사회성과 개인성의 균형을 무시하고, 인간의 개인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구시대의 절대주의 풍토에서 형성된 자유주의가 상대주의적인 평등주의나 박애주의, 복지주의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하여 자유, 평등, 박애의 인권선언을 명분으로 하여 일으킨 시민혁명이 자유와 평등을 한발씩 양보케 하는 박애를 통해 조화로운 삶을 구현코자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를 제1의 원칙으로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인간의 사회성에 의해 인류 역사가 발전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개인성에 중심을 두는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인간의 사회성 퇴보로 인한 위험한 사회를 만들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는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만들어 감에 따라 스스로 영적 존재임을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여 영적 존재로서 인간은 민주주의 본질에 부합되는 모계적 분배양식이 적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경제적 민주주의로써 경제민주화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절대주의 풍토에서 만들어진 자본주의는 상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지구촌 시대가 요구하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해 요구되는 경제적 민주주의로 변모함에 따라 퇴출이 될 것입니다. 즉 지구촌 시대를 맞이한 신인류는 시민혁명 정신과 부합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여 ‘존재의 삶’을 살 때가 된 것입니다.

하여 모계적인 민주주의가 절차적 정의라는 형식을 넘어 내용으로써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온전한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 여성들이 권력의 반을 갖는 모민주의의 세계화를 위한 결사가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정치는 근본적으로 비폭력적이며, 말로 하는 정치임을 특징으로 하고 있음에 따라 여성들에게 유리한 정치제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적 생활양식이 보편화된 세상이 되었음에도, 부계 일변도 현실에서 단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일 뿐, 여성은 여전히 불리합니다. 이는 전체주의를 지향했던 부계사회에서 형성된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작용케 하는 반쪽민주주의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성들은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비주류로 전락하면서 정치, 경제, 종교,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소외되고부터 부, 권력, 기술, 지식, 조직, 육체적 힘 등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즉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여성의 생태적 본능에 적합한 종교와 예술, 의료, 복지 등을 부계가 독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계사회는 성의 특성에 따른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남녀의 특성을 상호 보완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남성이 독점하여 주체가 되고 여성은 객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개인성에 중심을 둔 자본주의에서 생태적으로 복지적이며 사회성이 발달한 여성에게 불리한 것으로 나타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타심이나, 사회성을 근간으로 하는 평등, 박애, 복지 등과 배치되고 있습니다. 하여 인간의 이기심을 동기유발로 하는 자본주의는 양극화를 유발하며 소비를 자극하고, 부추긴 결과, 자원고갈,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가족의 해체나, 독신 등의 증가로 불행한 인생을 양산하는 위험한 사회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2 여성들의 태도 변화

부계적 가치에서 발현된 자유주의가 인류의 반인 여성의 삶을 불행하게 한다면, 인간의 삶과 부적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남녀가 생태적 기능과 심성이 다른 특성에 근거한 상호보완적이며 기하학적 남녀평등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부계주의의 연장선에 있는 자유주의가 남녀에게 산술적인 대등한 경쟁을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녀가 인간으로서는 같지만, 질적으로 다른 존재임에 따라 질적으로 다른 것을 존중하는 체제가 성립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은 스스로 국가의 보호와 배려를 받기 위한 권력의 반을 보장받는 새로운 정치경제 제도로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권신장을 위해 근세에 이르러 여성과 자유주의가 부적합한 사실을 인식하는 여성들이 주도하는 여성 사회주의 정치사상으로써 페미니즘이 주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즉 여성들이 근대 후 근세에 이르러 여성우월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페미니즘(여성사회주의)은 여성의 사회지배를 목적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여 여권신장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지만, 완전한 민주주의로써 ‘모민주의’ 성평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되었던 여성혁명(Women’s Revolation)론이나, 여성의 삶(Women Live)이라는 슬로건과 더불어 남성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남적론(男敵論)을 내세우며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세계 각국에 전파되면서 세상의 반인 여성의 심금을 울렸을 뿐만이 아니라, 녹색 생명 운동으로써 국제여성 NGO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성운동은 자본주의를 수정한 소극적 복지국가를 성립할 수 있었으며, 제2차 대전 후 복지사회를 공고화하면서 중도주의의 원동력이 되었던 사실을 상기해 볼 때, 지구촌 시대가 요구하는 적극적 복지사회가 보편적 가치로써 자리 잡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여성 지도자가 논리보다 감성에 호소하여 남성들의 반성과 참여를 끌어내었습니다. 하여 여성 자신들이 대단한 존재로 각성하게 되었으며, 가정에서 유발된 갈등 폭발로 인한 파괴력 등으로부터 제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수많은 가족해체로 인한 이혼의 증가로 사회문제가 유발되었으며, 분노에 찬 용기 있는 여성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이중의 고통을 감수하며 빈곤한 삶을 대가로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여성은 후회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동료 여성에 대한 사명감으로 분연히 일어선 희생의 결과, 후일 대다수 여성은 자유로워졌고, 이혼할 때 상당한 위자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사회보장을 강화하게 됨에 따라 위기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좋은 국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 당시의 세계인구의 6%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자원의 40% 이상을 소비하는 부국이었고, 2010년 세계 경제의 27%인 유럽연합보다 더 큰 세계 경제의 28%를 차지할 만큼 초강대국인 사실과 더불어 사회보장제도가 튼튼함에 따라 여성들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개도국이나 제3세계 국가에서 미국식 여성운동을 전개했다면, 여성들은 파멸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선진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 여성운동의 활동이 미약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복지축소를 근간으로 하는 신자본주의에서 전업주부를 권장하는 가부장제로써 신보수주의를 병행함에 따라 ‘남적론’처럼 부계주의 종말을 원하는 여성의 염원을 무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여성들

유럽에서 전통적 가치와 충돌로 인하여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던 자본주의를 미국의 개척정신이 활짝 피게 한 것이나, 미국 여성들의 여권신장운동 표어로써 ‘남적론’까지 제기한 것 등을 상기해 볼 때, 용기 있는 개척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기초하여 행동으로 보여준 사실 자체가 세상 여인들에게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고, 여권신장을 위한 고난을 달갑게 받아드린 용맹한 결사는 여성이 주체가 된 혁명으로써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하여 위험한 세상으로 변모한 오늘날 태생적으로 복지적이며, 민주적인 여성이 생활 정치의 주역이 되어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할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성의 출산과 양육을 통한 재창조의 결과 2022년 현재 세계인구가 79억 명에 달하게 된 사실에서도 여성이 주역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79억 명에 이르는 규모의 인류는 궁극적인 삶의 의미와 더불어 수많은 의문을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규모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힘들어지고, 인간의 상품화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가운데,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조차도 해결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하여 세상의 주체로써 인간은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새로운 분배양식을 위한 정치체제로 진보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인류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한 녹색 생명 운동과 부합되는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체제로 역사 발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혜로운 인간은 고통을 유발하는 제도를 합리화하며 고집하기보다 신속한 퇴출이 바람직함을 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구가 많다고 해서 인간을 경시하거나 소모적인 존재로 만들어가는 제도는 퇴출이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세력을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치 감각이 없는 것으로 오랫동안 오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모계사회가 씨족연대사회로서 수만 년에 걸쳐 인류를 이끌 수 있었음을 상기해본다면, 정치적 감각이 우수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기모계사회였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네트워크적인 하나의 세계로써, 오늘날 NGO나, UN과 흡사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여성이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보편적 가치로 공고화할 수 있는 정치역량의 발휘를 기대해봅니다.

 

 

3. 모계적 분배양식의 보편화

 

닫힌 사회로써 구시대는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무시하였지만, 개방적인 지구촌 시대를 맞이한 인류는 문명화됨에 따라 남성들은 생태적으로 다른 여성을 상호보완적인 인생의 동반자로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늘날 선진국 중심으로 정당이나 의회에서 여성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복지나 민원 해결을 위한 생활 정치의 주체가 되고 있음에 따라 여성 상호 간에도 신뢰가 쌓이고 있습니다. 이는 부계 편도의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로 강화되면서 형성된 위험한 사회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계 일변도의 정치문화에서 형성된 위험한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 여성이 권력의 반을 갖고, 여성 스스로 양적(산술적), 질적(기하학적) 평등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시점이 된 것입니다. 물론 ‘존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 인류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선택하고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근대사회가 성립된 후, 여성이 단기간에 걸쳐 획기적인 여권신장과 실력을 갖추게 된 사실을 볼 때, 태생적으로 복지적이고, 민주적인 여성은 지구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 대다수 여성은 구시대처럼, 고된 삶으로 인하여 현실 도피적인 경향이 있거나, 혹자는 신데렐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모를 가꾸고 용의주도하게 부유층의 남성을 유혹하여 결혼을 꿈꾼다고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적극적 복지사회가 생태적 특성과 부합되기 때문에 중심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3.1 부계적 분배양식의 퇴출

일반적으로 여성은 직관력과 입체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으며, 감성이 발달한 편인 반면, 남성은 관념적이며 가시적인 세계를 잘 이해하고, 이성이 발달한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인간을 재창조하는 여성이 감성이 발달했지만 반면에 남성들은 각박한 현실의 모순을 극복해야만 하는 과정에서 이성이 발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농업혁명을 일으켜 잉여가치를 만들면서 늘어난 인구로 인하여, 형성된 부계사회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잉여생산으로 인한 배타적 소유 관념이 형성된 결과, 모계사회의 공유제가 퇴출이 되고, 정교분리의 부계사회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여 운명론적 권한을 부여받은 자가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절대주의적인 부계 신본주의 사회와 모계 신본주의 사회와는 출발부터 다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자율성과 개체성을 존중한 인본주의 사회였던 반면, 부계사회는 절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전체주의 사회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세상의 주체로써 생각한 인본주의 사회였던 반면, 부계사회는 인간을 대자연의 부분으로나, 절대 존재의 피조물로 생각한 신본주의 사회였습니다. 이처럼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스스로 시대에 맞는 문화를 창조하며 살아간 사실과 오늘날 지구촌 시대를 맞이한 신인류는 감성을 중시하며 개방적 사회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대모신의 후손인 인간은 스스로 영적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서 인류의 이상인 적극적 복지사회로 역사발전이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경제적 동물’로 변모하게 되는 부계적 분배양식보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지는 성과를 인류가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진보하게 됨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즉 인류공영을 위해 한발씩 양보를 하는 모계적 분배양식인 ‘소유상하한제’를 통해, 인류의 당면한 주요 과제인 탈 양극화, 소비 절약, 환경문제, 식량문제, 우주개발 등을 비롯해 인간성 회복, 영적 존재임을 각성하는 등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 양극화가 형성되어 긴장감이 팽배한 가운데,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등 전대미문의 재앙과 각종 테러나 흉악범의 증가 등을 유발하는 위험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중산층을 확대할 수 있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구현할 수 있는 체제의 성립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태고로부터 믿어온 순환 진보사상과 배치되고 있는 자본주의가 탐욕을 정당화하여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변모케 하는 사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태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로부터 스스로 영적 존재임을 믿었던 인간은 합법을 가장한 착취나 이기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나쁜 일을 피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여 마고 시대부터 인간을 영적 존재라고 믿었던 사실을 첨단시대를 통해 영적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인류는 영적 존재로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가 문명인으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바란다면,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첨단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모계적 성질인 평등과 부계적 성질인 자유를 조화롭게 할 수 있는 박애를 최상위의 가치로 하는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경제 제도의 성립이 가능케 되었습니다.

즉 부계와 모계가 공존하는 체제로써 모민주의가 적합할 것입니다. 하여 인간 존엄을 위한 체제로써, 모민주의의 정당성을 관철할 수 있는 일정한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신인류의 소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천부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물질적 기초인 ‘천부소유권’을 인정하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성립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 모자가정 등 빈곤층 모성에게 기본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프랑스의 가족수당 제도보다 적극적입니다. 이는 인류의 유지 존속하기 위한 모성보호와 더불어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족의 복지를 위한 모성 수당을 정부가 지급하여 모권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족복지를 위한 수당을 빈곤층의 모성에게 지급할 수 있는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UN과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즉 국제여성 NGO처럼 인류의 반인 여성이 중심축을 이루어 진행한다면, 가능한 문제입니다.

이는 지구촌 시대는 존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증가함에 따라 적극적 복지사회를 위한 생활 정치를 수행하기 위해 여성의 역할 확대가 요구되고 있으며, 태생적으로 민주적인, 복지적인 여성이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근대사회가 성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부계주의로 이루어진 오랜 관습이 유습으로 잔재하였으며, 근세까지 다수여성들은 빈곤과 가사노동 등으로 지식, 교양, 학문 등을 익힐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지구촌을 이끌 수 있을까? 라고 의심도 하고 있습니다.

즉 부계주의가 주류를 이룬 이후 만들어진 수천 년간에 걸쳐 쌓인 원한의 결과로써 형성된 위험한 사회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고로부터 여성들이 출산 양육을 통해서 인류가 오늘날까지 존속하여 고도 문명을 이룬 결과의 반을 인정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태고 모계사회가 농업혁명이나, 인류문명의 초석을 이루었음에도, 여성에게 가혹했던 지난날의 잘못을 마땅히 보상한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주체로써 인간은 대자연과 잘 융화되고, 인간 상호 간에도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있으며, 남녀가 서로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본능과 부합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모민주의’의 보편화를 보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3.2 모계적 분배양식을 위한 체제성립

전체주의 사회였던 부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수많은 분쟁으로 사람들은 원한과 증오심을 갖게 되었지만, 태고부터 오늘날까지 모성애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여 모성애에 기초한 모계사회는 성선설적인 사회였지만, 부계사회가 등장하면서 성악설적인 인간으로 변모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모권사회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많은 사회였다면, 부계사회는 일회적 삶으로 생각함에 따라 각박한 사회였습니다. 하여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이룩한 첨단과학기술문명은 모계적 가치에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첨단과학기술문명은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한 수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한 전 단계로써 사회적 합의로 탈부계적 분배양식의 정착하기 위한 체제의 성립이 요구됩니다. 이는 모계가 부계와 대등한 권력을 갖지 못하는 기존의 부계 편도의 정치문화에 의해서 만들어진 정치경제 제도로써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지구촌 시대는 적극적 복지사회로 역사 발전해야 함에 따라 모계가 권력의 반을 갖고 부계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체제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물론 어떠한 가치로써 정치이념을 구현코자 성립된 정치체계와 이를 관철하기 위한 실력을 정치 권력이라고 볼 때, 모계적 분배양식을 인류의 삶의 원칙으로 하는 정치이념에 대한 정당성을 동조하고 지지하는 세력을 형성해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코자 할지라도, 적극적 봉사를 할 수 있는 일정한 세력이 없다면, 실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양극화나, 테러,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등으로 유발되는 위험한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세계 NGO가 존재해야 합니다.

물론 세계여성들이 주도하는 녹색생명운동 NGO는 자본주의와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탈 자본주의라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녹색생명운동을 정치이념으로 한 정당이 만들어졌고, 조직화로 정치 권력이 형성되면서 세계화의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영적 존재임을 깨닫고 있는 가운데, ‘존재의 삶’에 눈을 뜨게 된 신인류로써 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정치문화를 구현하기 위한 조직화 과정에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존중하여, 말로 하는 정치로써, 모계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에 따라 여성들과 부합되는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로 공고화되어야 하는 지구촌 시대와 어울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근대사회가 성립된 후 남녀평등을 천명했으며, 제4차산업혁명의 첨단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조차, 2021년 현재 한국은 전체의원의 19% 세계 121위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는 1995년 유엔의 ‘여성 의원 30% 할당’ 결의안 진전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여성의 표를 의식한 구색을 갖추는 액세서리 정도로 주변화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년에 걸쳐 전체주의 사회를 이끌었던 부계사회의 발전 속도보다, 모계적 가치를 조직 원리로 하는 정치세력이 빠르게 발전하고, 역량을 갖추게 된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오래지 않아 정치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즉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으며, 대다수 사람은 평화가 가져다주는 이익이 훨씬 크다는 인식을 하게 됨에 따라 태생적으로 복지적, 평화적, 민주적인 여성이 생활 정치의 주체가 되기를 인류가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3 위험한 사회의 극복

자본주의가 과잉경쟁과 인간의 상품화, 절대적 양극화 등으로 삶의 의미를 잃게 함에 따라 자본주의에서 출산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 여성들은 여러 이유로 해서 혼인을 기피 하거나, 늦어지는 경향으로 출산율이 저하되는 등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되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국내적인 초기자본주의에서 발전하여 보편화된 국가자본주의 시대는 어느 정도 각국의 문화적 차이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발전하였지만, 신자유주의는 인간 존엄과 배치되는 ‘경제적 동물’로써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본주의에서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살게 함에 따라 만들어진 위험한 사회를 겪으면서 무의식중에 출산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실제 오늘날 세계시장 확대가 가능한 대량 정보처리 능력의 획기적 발달 등으로 무한축적이 가능함에 따라 만들어진 신자유주의 이념은 경영학, 회계학, 첨단 과학기술, 대자본 등을 축적하고 있는 선진국이 중심이 된 사상으로써 위험한 사회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즉 신자유주의는 형이하학으로써 경제를 최고의 가치에 두는 ‘물신주의’의 심화로 인해 인간이 소외되면서 형성되는 위험한 사회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 ‘소유의 삶’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면서 형성된 제국주의로 인하여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유발된 것처럼, 오늘날 반자본주의를 위한 테러가 많아짐에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지구촌 시대 이전에는 배금주의에 의한 충돌은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했지만, 오늘날 양극화로 나타나는 위험성을 극복하길 바란다면 ‘존재의 삶’에 중심을 두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 가치를 설정하여 스스로가 복종하는 문화적 존재로서, 지역별로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독특한 생존 양식이 있음에 따라 유발되는 문화적 충돌을 피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적 양극화로 해결하기보다 ‘존재의 삶’이 가능한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체제의 세계화로 극복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선진국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공고화되어 선진국이 유리하게 됨에 따라 후진국의 경우 불만이 폭발하기 때문에 사회통합을 위해 자국의 문화를 강화하여 서구적 가치를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자본주의가 만들어가는 세계적 양극화로 인하여 유발되는 테러나, 과소비로 인한 환경오염, 과잉경쟁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의 부작용을 방치할 수 없음에 따라 인류는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신인류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남녀평등의 차별금지법으로 실효성을 위해 규정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발 절대적 양극화현상으로 인하여 현실적으로 실익이 없음에 따라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체제가 성립되어야 남녀평등의 실효성이 보장됨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에도 네팔에서 인도로 팔려나가는 여성이 남성의 10분의 1의 값으로 팔려나가는 것처럼, 여성은 경제원칙에 의해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성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4 근대정신과 배치되는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사람을 ‘경제적 동물’로 살아가게끔 하고 있습니다. 즉 자본주의는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소유에 있다고 전제함에 따라 인격 수양보다 탐욕을 배양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에 충실해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가 수많은 사람을 인간성 황폐화하거나 환경의 파괴로 인하여 피해를 주고 있음에 따라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정치경제 제도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분권을 제1의 원칙으로 하는 근대사회와 배치되는 자본주의 발 절대적 양극화로 대다수 사람이 인간 존엄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천문학적 거래 규모로 대량소비를 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경제가 삶의 목적으로 뚜렷하게 변모하게 되면서 등장한 신자유주의 사상은 근대정신의 제1의 원칙과 배치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공산당을 퇴출할 수 있을 만큼, 자본주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강력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만들게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영적 존재로서 인간과는 배치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태고부터 인간다운 삶은 ‘존재의 삶’에 무게를 두었고, 솔선수범한 성현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한 비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을 상기해 볼 때, 과거로부터 평범한 사심으로 가득한 다수의 결정으로 역사발전이 된 것은 아닙니다.

즉 다수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가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고, 배양하여 위험한 사회를 만들어 감에 따라 인간의 선한 면을 배양하며, 존재의 삶을 살았던 세력은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자본주의는 소유를 궁극적 삶의 목표로 생각하는 평범한 다수의 결정에 부합하는 사상임에 따라 만들어진 신자유주의를 세계화한다는 것은 부적절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일회적 삶을 하는 인간을 별수 없는 속물로 생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권력 양극화를 이루었던 구시대가 시민혁명으로 무너지고, 분권적인 근대사회가 성립된 것을 상기해 볼 때. 근대 시민정신과 배치되는 부의 양극화를 유발하는 자본주의로 인하여 모더니즘이 의미를 잃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형성된 이유입니다. 즉 ‘풍요 속의 빈곤’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인간 존엄을 구현코자 했던 시민혁명 정신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권선언의 내용으로써 ‘천부소유권’을 인정하여 경제적 기초가 보장되는 체제를 성립해야만 시민혁명 정신과 부합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상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사회에서 절대주의적인 양극화를 유발하는 자본주의는 퇴출이 되고, 근대정신에 충실한 모민주의가 세계화되어야 합니다. 이는 오늘날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성립되고부터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가능하게 된 제4차산업혁명 시대를 상기해볼 때, 경제민주화로써 탈 양극화가 과학적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 생활 정치 시대

지구촌 시대는 인류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천부소유권’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로 역사 발전해야 함에도, 태만함으로 인하여 자본주의에 머문다면, 인류는 위험한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여성의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희생의 대가를 치렀으며,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인권선언은 명문화되어 있었음에도, ‘여성은 남자 아래이니 불평불만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배신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후일 전체주의로써 제국주의가 등장하면서 대가를 치렀습니다. 예를 들어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여성은 신자본주의와 불합치함을, 비정한 모성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복지축소로 인류의 구심력인 모성애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하여 지구촌 시대와 불합치한 반민주적인 양극화현상으로 인한 위험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한 체제의 보편화를 위해 여성 NGO가 주도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지구촌 시대는 상대주의(인본주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세계여성이 모계 동일체로서 주체적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근대사회는 인본주의 사회로써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근대사회가 성립된 후, 남녀평등문제는 인권신장을 위한 주요의제로 다루어짐에 따라 여성들의 실력도 획기적으로 배가되었습니다.

하여 모계사회에서 여제사장으로서, 인류를 이끌어간 것이나, 오늘날 녹색 생명, 환경운동 등을 통해 인류에게 ‘존재의 삶’을 깨닫게 하는 사실 등을 상기해볼 때, 지구촌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여성 지도자들이 여권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참여를 하였을 때, 사회적 매장이나 희생된 경우가 많았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여성운동가를 여성들이 불신하는 경향이 아직도 잔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비주류로 있었던 여성들은 모계적 가치에서 발현된 민주적 생활양식이 보편화된 오늘날까지도 차별적 정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철학적 상대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절대주의적인 숙명처럼, 남녀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서구의 구시대가 10대 1의 가치로 여성을 소외한 것을 상기한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국가가 보장하는 인권은 인간으로서 남녀 상호 간에 존엄성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하여 ‘모민주의’와 같이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체제가 성립된다면, 인간 상호 간에 존엄성을 지켜서 실질적인 남녀평등이 구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분배양식으로 인한 인권유린이 확대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유주의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온전한 민주주의로써 ‘천부인권’의 내용인 ‘천부소유권’을 인정하는 체제가 성립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모계 민주주의 체제는 남녀가 조화로운 관계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동양적 가족주의에서 가정을 인생의 시작과 끝으로 생로병사를 이루는 곳으로, 천륜에 의한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성소(聖所)로 생각함에 따라 국가 존립의 정당성을 가족복지에 두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초기자본주의의 부정적인 결과를 두고, 맑스, 엥겔스, 토인비를 비롯해 석학들은 비판하였으며, 이로써 등장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를 등장케 하면서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됨에 따라 자본주의가 수정되어 복지국가가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여성과 부합되는 복지국가를 구현하여 여권신장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자본주의와 대립했던 공산주의가 퇴출이 되면서 국가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로써 신자유주의 시대로 발전되었습니다.

이는 초기 자유방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힘들었던 사실을 상기해볼 때, 이와 흡사한 구조이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세계 분업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에서 여성의 삶이 어려워질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에서 만들어지는 양극화로 인해 복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할지라도 대책이 없음을 천명하며 만든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속성에 충실히 하는 것으로 문제해결을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비 복지적임에 따라 여성 상호 간의 양극화로 유대성이 약화 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구촌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신인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함에 따라 이에 적합한 생태적으로 복지적, 민주적인 여성이 생활 정치를 이끌어가기 위해 모계 동일체와 같은 유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6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분배양식

자본주의가 만드는 양극화현상으로 중산층이 몰락되면서 부유층과 빈곤층이 대립하는 위험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즉 반사회적인 인격의 형성을 완화해주며 사회의 중추적 기능을 하는 중산층이 약화 됨에 따라 갈등이 증대되면서 비정한 사회가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중산층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방식의 테러인 인터넷의 악플, 야동, 소규모 테러, 냉소주의 등이 만연하고, 엄청난 파괴력으로 인해 불안정한 사회가 되었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범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후 인류의 위기에 대한 로마클럽의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에서 탈 자본주의를 권고했으며, 로마클럽을 만든 이탈리아의 아우레리오 벳제이는 서양의 선민주의에 대해 경고하기를, 서구 문명이 인류를 구제할 지혜가 있는가? 라고 반문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소유의 삶’을 지속한다면, 단지 머리 좋은 동물일 뿐, 사람의 도리를 할 수 없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를 살아야 하는 신인류에게 ‘존재의 삶’을 위한 탈자본주의적인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로 역사 발전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상극의 삶’에서 ‘상생의 삶’을 위한 새로운 체제가 세계화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태고부터 인류의 구심력으로써 변함없는 모성애는 복지주의의 근원이기 때문에 여성이 복지 주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고대 중국의 어느 황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황제는 백성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여 유능한 대신들에게 답을 가져오라 하였더니, 책 10권 분량을 황제에게 바쳤지만, 황제가 대다수 백성이 무지하니 더 많이 줄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한 권으로 만들어 황제에게 제출하였다. 하지만 황제는 노발대발하면서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을 수 있느냐’라고 한 장의 종이에 적어오라 했지만, 아무도 제출하지 못하여 전부가 숙청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평범한 농부가 ‘공짜는 없다’라고 적어 제출하였습니다. 이에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전국에 방을 부쳐 백성의 생활지침으로 삼으니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교훈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노력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협동으로 진보해야 할 의무가 인간에게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자연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고, 공존을 위해 아낌없이 주고 있는 햇빛, 공기, 물, 식물, 광물, 동물 등의 자원조차 결코 공짜일 수가 없음을 인식해야 하며, 먹이사슬의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인간은 선의의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않거나, 과잉경쟁으로 인한 과소비나, 탐욕과 태만 등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한다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로 모계 유습을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물의 발견이나, 무형문화나, 서책 등으로 전해진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모계 유일신 종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며 문화의 토대가 된 부계 우월종교의 신들은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믿었던 ‘조상신’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여제사장이 사회를 이끌어가면서, 모계와 부계의 조화를 이루게 한 복지사회로써 공유제 사회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여 손익을 계산하지도 않으면서 부족한 것을 보완하며 인류의 끝없는 재창조와 선한 목적을 이루는 기본단위로써 가족의 행복을 위해 모계적 가치가 구체화 된다는 사실은 바람직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가족의 의미는 약화 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주의 피조물로써 개인의 절대성을 중시한 자유주의가 무정부적인 경향이 있으며, 가족의 연대를 약하게 하는 분배양식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 아닌 이전투구를 하며 살아가는 ‘경제적 동물’로 만들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튼 한정된 자원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자원고갈과 원전 개발로 인한 방사능오염,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먹이사슬의 붕괴 등을 유발케 하는 자본주의는 지구촌 시대를 만든 자체로 역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지구촌 시대로 진보한 인류는 모성애를 근간으로 이루어지는 가사노동, 출산, 양육 등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로 진보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여성이 인류의 한 축으로써 남성과 정치적 균형을 이루어 여성의 복지본능이 발휘되는 생활 정치 시대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어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로 역사 발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행복한 인생을 위해 ‘소유의 삶’을 벗어나, 이상인 ‘존재의 삶’을 구현하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로 진보해야 합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비록 단순하지만, 곡선적인 시간의 개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공유제로써 안정된 삶을 살았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곡선적인 시간의 개념이 입증되었습니다.

하여 입체적이고 곡선적인 시간개념을 이해했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여성을 상기해볼 때, 위험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뜻있는 여성들과 함께 무리 지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능력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여성들이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문화를 형성하여 인류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인류의 공동자산(자연환경, 공기, 물, 태양, 땅, 석유 자원 등)의 고갈로 극단적인 경쟁을 완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연 친화적인 ‘존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인류가 마음만 먹는다면 ‘소유상하한제’를 표준으로 한 상속세를 3대에 걸쳐 조정한다거나, 주식 배분을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아울러 기금도 많이 증가하고, 기술혁명으로 저렴한 생활용품의 구매와 저렴한 주거비 등으로 존재의 삶이 가능케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방법이 연구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위험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제4차산업혁명이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분배양식을 구현하기 위한 초석을 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