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물은 이제 그만

소금물은 이제 그만

산업사회는 소금물 먹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다. ‘풍요속의 빈곤’은 현대사회의 특징이다. 만족할 수 없는 소유의 삶을 산다.

사무실을 단장하기 위해 페인트업자를 불렀다. 깔끔하게 잘해서 만족했다. 평소 잘 아는 업자의 소개로 만난 사람이다. 마무리할 때 즈음해서 부탁 하나 덜어줄 수 있느냐고 했다. 순간 공사비의 일부를 받고 싶어서 그런가? ‘무슨 사연인지 어디 한번 풀어나 보이소’

씨름선수인 장남이 전국체전에서 고등부 2등을 하여 모 고등학교에 입학 될 것을 믿었는데 탈락이 되어 억울하다고 한다. 삼등은 입학했다고 한다. 이미 결정 난 일이니 참 난감하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하나 싶었다. 사정은 이해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라 부탁을 들어주기 어려워서 거절했다. 실제로 집단의 속사정을 모르는 일은 해결하기 어렵다.

갑자기 표정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굳어졌다. 그래도 일을 하면서 한 번 더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아들의 장래를 위해 광주에서 대구로 이사를 왔다고 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체격도 좋은 사람이… 가능성 있는 아들 덕에 소금물의 목마름은 더했다. 이만기 같은 천하장사가 꿈이었던가 보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라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필이면 왜 나인가.

한 번도 힘자랑 돈 자랑한 일이 없어 상관이 없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이 있을 때가 있다. 세속에서 별꼴 다 보고 살은 사람이 왜 그것을 모르겠는가? 사정이 너무 딱한 것 같아서 ‘수일 내에 한번 알아 볼 테니 믿지 말고 기다려 보이소’라고 위로를 했다. 자식이 전 재산인 그에게 인간적으로 찡한 것을 느꼈다.

당시 여론조사 심의위원을 하던 때라 지역책임자를 불러 조사하고 알려주라 하였다. 지역감정으로 인한 것은 명분일 뿐 돈 문제임을 알았다. 실제로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패쇄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장을 만나 부당한 것을 시정하도록 부탁하니, 다음날 조처를 하였다고 연락을 받았다. 업자는 너무나 좋아하며 말보르 한 갑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의 수준에서 최고의 대우다.

양담배를 피우면 벌금을 매겼던 때라 부담이 되었다. 잘못하면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는데 집에서만 피우니 별탈이 없었다. 숨어서 피우는 말보르 담배를 친구와 나누어 피우니 더 맛있다. 그의 갈증을 해결하니 나의 갈증도 해결된 듯했다.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꼭 잡는 두 손의 따뜻함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중앙정치에 진입하면서 욕구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지구당에서 사무국장이 회의가 끝난 다음 독대를 청한다. 큰 식당을 하는 여사장이 만나자고 한다. 정치자금과 관련이 많은 사조직에 참여하길 바라는 것이다. 아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이권 개입이나 승진을 원하는 사람들보다 좋다.

단지 정치의 속살을 모르는 분이다. 정치공학적인 입장에서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사연을 잘 모른다. 장사를 하니, 정치인의 모습이 좋아 보였던 것 같다. 사극을 좋아하는 분이다. 자식이 권력자가 되길 바라는 갈증을 조금이나마 채워주었다. 정치는 주고받는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충족시켜야 권력이 유지된다.

주변에는 권력이 필요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똥이 더럽다고 다 빼면 죽는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계층에서 활약하는 지도층들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야 한다. 명분은 지역사회발전이지만 욕구 충족이 우선한다. 정치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힘든 사회일수록 권력의 갈증은 심해진다. 탐욕을 부추기며 살아가는 사회는 위험하다.

권력과 욕구는 소금물을 닮았다. 갈증의 정점에서 마셨던 소금물을 거절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수수한 삶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정치는 힘든 과제이다. 소금물 먹은 사람들과 살아온 삶은 힘들었다. 훌륭한 정치지도자의 민주적 권위를 존중하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이유이다. 소금물을 끓고 관계의 삶을 살고자 하니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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