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금붕어

토마스의 금붕어

나이를 먹을수록 보이지 않는 세계를 체험하면서 세상을 알게 되는 만큼 철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고 있음을 인식하고부터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양심을 가진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성 황폐화로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도 있지요. 하여 오늘은 금붕어 이야기가 새로운 세계관이 구현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새롭게 다가옵니다. 특히 해석 (3)에서 학습 능력을 키우라는 말이 가슴에 다가옵니다. 여러분도 느껴보세요.

할머니와 금붕어-이야기 해석(1)

<할머니와 금붕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이야기이다. 우리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라서 관심을 가지고 보았는데 요즘 교과서에는 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게르만족의 전래 동화라고도 하고, 러시아 지방의 이야기라고도 하는데,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신기한 물고기를 어떤 이는 넙치라고 하고, 어떤 이는 가자미라고도 한다. 그 물고기가 넙치든 가자미든 금붕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것이 어떤 물고기든 이야기의 본질에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할머니와 금붕어>의 원제목이 <어부와 그의 아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어부와 그의 아내>보다는 <할머니와 금붕어>라는 제목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이 제목으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이제부터 <할머니와 금붕어> 이야기를 들어보자.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한 늙은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서 그물을 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하루종일 그물을 치는 데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였다. 어부는 한 번만 더 그물을 던져보고 가자고 생각하고 그물을 쳤다. 마지막 그물을 끌어 올리는 순간 온몸이 황금빛으로 반짝반짝하는 신기한 금붕어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이었다.

“참 신기한 일도 다 있군!”

어부가 신기한 금붕어를 쳐다보고 있는데, 금붕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 좀 살려주세요. 본래 나는 바다 용왕의 아들인데, 모처럼 나들이 나왔다가 이렇게 할아버지한테 잡히게 되었네요. 나를 놓아주신다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금붕어를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어 금붕어를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금붕어에 대한 이야기를 할머니한테 했더니, 할머니가 노발대발하며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바보 같은 늙은이, 왜 그냥 놓아주었어? 은혜를 갚겠다거든 헌 물동이 하나라도 달래지.”

할머니가 깨진 물동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자, 할아버지는 곧 바닷가로 달려갔다.

“금붕어야, 금붕어야!”

할아버지가 금붕어를 부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할아버지, 무슨일이예요?”

“금붕어야, 우리 집 물동이가 깨져서 말이야, 물동이가 하나 필요한데…”

“알았어요, 할아버지.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금붕어는 걱정말라고 했지만, 더 큰 걱정거리가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집에 돌아가 새 물동이를 보고 기뻐하고 있을 때, 할머니는 더 화가 나서 더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은혜를 갚겠다는데 이까짓 물동이가 뭐야? 당신은 다 쓰러져가는 이 오두막집이 보이지도 않아요? 금붕어한테 다시 가서 말하세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우리가 부자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아니에요?”

할머니의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다시 바닷가로 걸어갔다.

“금붕어야, 금붕어야!”

할아버지가 금붕어를 부르자, 조금 있다가 금붕어가 나왔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금붕어야, 우리도 한번 부자로 살고 싶다.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다오.”

“알았어요, 할아버지. 걱정말고 돌아가세요.”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다 쓰러져가는 할아버지의 오막집은 간 곳이 없고 그 곳에 엄청나게 크고 훓륭한 집이 있었고, 할머니가 아름답고 고운 옷을 입고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이제 우리도 부자가 되었어요. 우리도 한번 남들처럼 호의호식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봅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복이 굴러들어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얼마 동안 부자로 살던 할머니는 어느 날부턴가 또 다른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얼마 동안 할머니는 행복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 이제 나는 이 나라의 왕이 되고 싶어요. 한 번만 더 금붕어를 찾아가세요. 가서 나를 이 나라의 왕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세요.”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바닷가로 가서, 금붕어를 불렀다. 할아버지가 바다로 가자, 잔잔했던 바다에 큰 파도가 치면서 요동치고 있었다.

“금붕어야, 금붕어야!”

할아버지가 금붕어를 부르자, 한참 있다가 금붕어가 나왔다.

그리고 걱정스런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말하였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금붕어야, 우리 할머니가 이제는 이 나라의 왕이 되고 싶다는구나.”

“알았어요, 할아버지.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곳에 화려한 궁궐이 있었고, 문 앞에는 병사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여왕이 되어, 화려한 옷을 입고 많은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궁 밖으로 쫓겨나 다시 물고기를 잡으며 살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여왕이 된 할머니가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불렀다.

“나는 이제 세상의 왕 노릇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어요. 이제는 바다와 육지를 다스리는 왕중의 왕이 되고 싶어요. 가서 금붕어에게 말하세요. 내가 바다 속까지 다스리고 싶어한다고.”

금붕어가 그 소원만은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여보, 그것만은…,”

할아버지가 말리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뭐 해요? 어서 가지 않고?”

할 수 없이, 할아버지는 바다로 갔다.

갑자기 폭풍우라도 칠 것처럼, 하늘엔 먹구름이 몰려오고, 성난 파도가 할아버지를 삼킬 것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이제는 용왕님도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금붕어야, 금붕어야!”

몇 번을 불러봤지만, 금붕어는 나올 줄 몰랐다.

저 불쌍하고 눈치 없는 할아버지는 그래도 계속 금붕어를 불렀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금붕어가 슬픈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도 미안한 목소리로, 주저하면서 말했다.

“금붕어야, 어쩌면 좋으냐? 할머니가 이제는 용궁까지 다스리고 싶다는 구나…”

할아버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금붕어는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말았다.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올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바닷가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는 힘없는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집에 돌아와 보니, 쓰러져가는 오막 집에, 깨진 물동이 옆에 초라한 할머니가 멍하니 앉아있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단순히 욕심 많은 할머니와 착한 할아버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마침내 불행한 결과를 얻게 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들어있다.

[출처] 할머니와 금붕어 이야기 1 토마스 -<2편으로 계속>-

할머니와 금붕어-이야기 해석 (2)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할머니는 심술궂고 욕심이 많죠. 할아버지는 아주 순진하고 착합니다. 욕심 많은 할머니는 끊임없이 착한 할아버지를 괴롭힙니다.

헌 물동이라도 달라고 해라, 부자가 되게 해 달라, 왕이 되게 해 달라, 용궁까지 다스리는 왕이 되게 해 달라, 끝없이 요구하고 또 요구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저씨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맞아, 여자들은 정말 욕심이 많아. 주고, 주고, 또 주어도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른다니까! 치마를 입으면 바지를 입고 싶어 하고, 바지를 입으면 치마를 입고 싶어 해. 생머리 할 때는 파마머리 하고 싶고, 파마머리를 하면 생머리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여자들이야. 정말 여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

또 아줌마들은 이렇게 생각하지요.

“흥, 남자들은 정말 무능하고도 멍청해. 도무지 생각이 없이 산다니까. 집안이 다 쓰러져가는 판에 웬 오지랖은 그렇게 넓은지. 정치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세상이 자기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줄 착각하며 산다니까. 남자들끼리 의리 지킨다, 사회생활 한다, 어쩐다 하는 핑계로 흥청대면서도 집안에 장독 깨지는 것은 모른다니까. 정말 대책 없는 족속 들이야.”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지요. 이렇게 이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로 알고 남녀 간의 갈등 문제로 해석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를 남녀 간의 이야기로 해석하기보다는 우리 인생사의 깊은 비밀을 간직한 이야기로 해석했습니다.

세상에는 할아버지처럼 하루하루를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할머니같이 오늘 하루의 삶에 만족하기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같이 살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할아버지의 가장 큰 소망은 그저 아무 탈 없이 평범하고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한편 할머니는 어떻습니까?

할머니는 항상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바라며 사는 사람입니다.

물동이를 얻으면, 집을 얻고 싶고, 집을 얻으면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부자가 되고 보니 왕이 되고 싶고, 왕이 되고 보니 용왕이 되고 싶습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내일을 바라고, 더 높은 것을 생각하며 사는 <이상주의적>인 인생이지요.

세상에는 할아버지처럼 현실에 만족하고 거기 안주하고 사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항상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사는 할머니와 같은 인생도 있는 법이지요. 이런 두 종류의 인간들이 서로 각축하며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지요.

당신은 이 두 사람 중에 어떤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어떤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할아버지와 같이 살면, 세상을 따라가면서 세상이 주는 것에 만족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누가 주도를 합니까? 당연히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죠.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명의 혜택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살았던 할머니 같은 사람들 덕분입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요구하는 대로,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자기 뜻이 없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결국 뜻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종노릇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평소에는 이 두 사람이 똑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말하자면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이죠.

금붕어가 잡히기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이좋게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용왕의 아들이라는 신비한 금붕어가 할아버지의 그물에 걸린 것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로, 두 사람의 인생은 크게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사건을 가리켜 인생의 분기점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터닝 포인트’라고 하지요.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작은 원인이 나중에 큰 결과가 되어 나타났을 때, 이 작은 사건을 가리켜 ‘분기점’ 또는 ‘터닝 포인트’라고 하는 것입니다.

백두산 천지에 나뭇잎이 하나 떨어졌다고 합시다. 백두산 천지의 어느 한 지점에서 사소한 각도의 차이로 압록강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두만강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이 한 지점이 바로 ‘터닝 포인트’라는 것이죠.

오늘 당신이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도, 당신의 인생에서 사소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이 이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이 순간이 바로 당신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할아버지가 금붕어를 잡은 날이 바로 할아버지의 인생의 분기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금붕어가 살려달라는 말을 했을 때, 그저 금붕어가 불쌍하다는 생각만으로 자기가 잡은 금붕어를 놓아주고 맙니다.

이렇게 평소에 바라는 것이 없이 사는 사람은 팔자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오더라도 그것을 잡지 못합니다. 그것이 기회인지 알지 못하고, 알았더라도 붙잡지 못합니다. 어쩌다가 붙잡은 기회라도 다시 놓치고 마는 것이죠. 이 할아버지처럼 말입니다.

할머니는 어떻습니까? 할머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재빨리 붙잡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놓쳐버린 기회라도 할 수만 있으면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미 놓아줘 버린 금붕어에게 당장 쫓아가서 요구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가 있는 것이죠.

할아버지가 금붕어 이야기를 했을 때, 할머니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이고, 영감 참 잘하셨소. 우리가 물고기를 잡고 사는 것도 다 용왕님의 은덕인데, 용왕님의 아들을 살려주셨다니 참 잘하셨구려. 용왕님을 화나게 하면 큰 해를 입지요.”

이렇게 말했습니까?

아니지요. 그 말을 듣자마자 할머니는 머리끝까지 화가 납니다.

“바보 같은 늙은이, 왜 그냥 놓아주었어? ‘은혜를 갚겠다.’ 거든 헌 물동이 하나라도 달래지.”

할머니의 말은 ‘왜 그런 좋은 기회를 잡지 못하고 그냥 빈손으로 왔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보 같은 늙은이’라는 것이죠. -3편으로 계속-

할머니와 금붕어-이야기해석 (3)

세상을 살다보니까, 세상에는 정말 이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마음은 벌써 늙은이가 되어 버린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꿈도 없고, 희망도 없이 그저 오늘도 무사하기만을 바라면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어떤 소원을 가지고 삽니까? 그저 오늘도 무사히! 오늘도 평안하게 만 바라고 삽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결코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오는 기회를 잡을 수가 없지요.

할머니 같은 사람만이 인생의 기회를 붙잡을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할머니를 보십시오. 할머니가 가난했을 때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부자가 되고 나서는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왕이 되고 나서는 바닷속까지 다스리는 용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단순히 ‘그래, 사람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어. 그렇게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간 결국 망하고 말지.’하고 생각해 버리고 만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생각이 짧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할머니의 욕심을 볼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헌 물동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쓸 만한 집이라도 한 채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거기에서 다시 큰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큰 부자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왕에서 더 큰 세상을 다스리는 왕 중의 왕으로, 계속 발전해가는 할머니의 ‘저 높은 곳을 향하는 마음’을 보라는 얘깁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명의 혜택은 모두가 이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무릇 사람이 어떤 소원을 가질 때 그것은 그저 우연히, 어쩌다 보니까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다. 왜 똑같은 환경에서 어떤 이는 만족하며 사는 데 어떤 이는 불만을 갖습니까? 왜 어떤 사람은 오늘을 위해 살고, 어떤 사람은 내일을 위해 삽니까? 그것은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릇을 격(格)이라고 합니다.

인격(人格)이란 바로 이 그릇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죠. 이 그릇에서 바로 소원이 나옵니다. 할머니가 가난했을 때는 헌 물동이 하나라도 얻었으면 하는 것이었죠. 물동이를 얻고 나니까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오막살이를 벗어나니까 이제 부자가 되고 싶었지요.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눈높이에 따라 거기에 걸 맞는 소원을 갖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소원이 사람의 수준을 결정하고, 사람의 수준이 다시 사람의 소원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소원은 수준을 낳고, 수준은 다시 소원을 낳는 다는 얘기죠.

누가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까? 물론 신기한 금붕어입니다. 금붕어가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할머니가 금붕어를 만났기 때문에 헌물동이도 얻을 수 있었고, 부자도 될 수 있었고, 여왕도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붕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금붕어에게 끊임없이 요구할 수 있는 할머니의 마음입니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직접 금붕어를 잡아 놓고도 다시 놓아줘 버리고 맙니다. 마음에 소원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놓아준 금붕어가 인생의 기회임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당장 바다로 달려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당신이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을 것입니다. 그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생각하고 말 것입니다. 아직 이 말을 받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할머니처럼 준비된 사람은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을 줄 압니다.

이 금붕어가 무엇입니까? 바로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람이 능력이 있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세상의 왕도 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좋은 집도 살 수가 있고, 부자가 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열심히 일하고 지독하게 저축하기만 하면, 정말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소원을 들어 주는 금붕어가 “근면과 저축”이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 금붕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정보처리 능력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엄청난 속도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많은 정보 중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 내 것으로 삼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정보는 돈이 되고,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21세기는 지식 정보화 사회라고 합니다. 이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무엇이겠습니까? 팔자를 바꿀 수 있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금붕어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정보를 재빨리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학습 능력입니다.

말하자면 공부 잘하는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빠른 시간에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1년 동안 해야 할 공부를 6개월에 하면, 6개월이 절약되는 것이죠. 이는 엄청난 능력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들보다 한 걸음, 아니 세 걸음 앞서 갈 수 있습니다. 세상은 앞서가는 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꼴찌에게 박수를! 이라는 말은 동화책에나 나오는 헛된 공상일 뿐입니다. 세상에 모든 스포츠 경기나 퀴즈 풀이 대회 등에서 누가 과연 상을 받고 칭찬을 받습니까? 모든 영광은 1등에게! 그리고 모든 욕은 꼴찌에게! 이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좋은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돈도 엄청나게 절약됩니다. 우리 앞집 아이들은 지금 중학생인데 학원에 매달 50만원씩 갖다 바치면서 보충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한 달 50만원이면, 1년 이면 600만원, 3년이면 1800만원이 듭니다. 그리고 6년이면 3600만원이나 듭니다. 학원 수업료뿐만 아니라 학원에 왔다 갔다 하는 교통비와 잡비 등을 합하면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적어도 4,000만 원 이상의 돈이 학원의 보충수업비로 날아갑니다. 아직 나이 어린 학생들은 이 돈의 크기가 실감나지 않겠지만, 학원 수업을 받지 않고도 혼자서도 공부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유익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공부의 법칙을 깨닫고, 1년 걸릴 공부를 4개월 만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공부 방법들을 정리해서 <공부 시간을 1/3로 줄여주는 공부의 법칙>을 썼습니다. 요즈음 나는 교회에 강의 신청을 받아, 이 학습법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학습법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강의를 듣고 나면, 그때야 비로소 효과적인 공부 방법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을 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 사람들이 블로그에 쓴 나의 글들을 보고는, <공부의 법칙>을 공부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정말 나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야기에 대한 해석이 지식의 재창조 작업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지식의 재창조야말로 가장 차원 높은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나는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해석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나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출처]할머니와 금붕어 3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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