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문턱
붓 가는 대로 쓴다는 수필이 좋다. 누구나 쉽게 수필창작을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준 표현은 일품이다. 수필창작의 문턱은 높지만 낮춘다. 수필은 우리들의 삶에 의미를 더해준다.
수필의 문턱이 낮아 진입을 쉽게 했는데 문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갈 수도 없다. 할수록 높아지는 문턱을 알고 나니 도전해볼 만하다. 마치 원석을 캐어 보석으로 가공하여 아름다움을 펼치는 장인처럼 신난다. 수필은 평범했던 사람에게도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수많은 문턱을 넘어 결국 죽음의 문턱에서 도착한다. 때로는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나 겪기도 한 사람으로 문턱의 의미를 잘 이해한다. 문턱을 높여 닫힌 사회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기득권 문턱이 얼마나 높은가를 안다. 문턱을 넘기 위한 담합. 패거리, 이지매, 고약한 신고식, 편 가르기 등이 다수를 불행하게 한다. 하수들이 만든 문턱은 통과비를 내거나 시련을 겪게 하는 등으로 힘들게 한다.
프랑스대혁명은 신분제의 높은 문턱을 무너뜨렸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권선언으로 인간 상호 간의 문턱을 제거했다. 훌륭한 사람들이 문턱을 낮추려고 1000년 동안 노력한 결과가 이루어진 것이다. 신분제로 무임 승차한 사람이나, 많이 배운 소인배는 문턱을 높였다. 신분의 문턱을 높인 국가는 폭 망했다. 패거리 문턱으로 부패하면서 다른 민족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얼마 전 TV에서 모 종교에서 자식과 부모가 서로 뺨을 때리는 과정을 방송했다. 여 목사가 신도를 때렸다. 오직 여 목사가 신도 때린다. 여 목사와 아들과도 때리는지 궁금했다. 낙원을 찾아 태평양 한가운데 섬나라에 무상으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서로 학대한 가족이 해체되어 오직 목사만 바라본다.
한국에 있는 교회는 허름하여 접근이 쉽다. 문턱이 낮아 실패한 인생에는 희망이었다. 문턱이 낮아 들어가긴 쉬웠지만 나올 수가 없는 곳이다. 믿는 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배타적인 만큼 대가는 크다. 대다수 종교에서는 지도자 자신을 위한 세계를 만든다. 때로는 행복을 찾아 문턱을 낮춘 종교에 귀의하여 목숨을 걸거나, 광신으로 패가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세종대왕은 한글로 글의 문턱을 낮추었다. 글을 몰라 당한 억울한 백성이 많음을 알고 있었다. 신분제 사회의 문턱인 글(한자)을 독점한 권문세족들의 횡포를 막는 데 한글은 최고였다. 세종대왕처럼 생각하는 훌륭한 문인들이 수필의 문턱을 낮추어 만인이 읽고 쓰면 행복해지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수필이 사람에게 덕을 나눈다는 점을 알아 문턱을 낮추었을 것이다. ‘붓 가는 대로’라는 용기를 심어 높은 문턱을 넘어가기를 바라면서…
수필 창작과정에서 일상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된다. 수필은 스스로 문턱을 낮추는 겸손함이 있다. 문학의 문턱은 높지만 낮추었다. 수필을 읽을 때 인간애를 느낀다. 수필창작을 할 때 도를 닦는 기분,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