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년에 걸친 원시 모계사회는 태고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정체된 사회였기 때문에, 모성의 출산을 영혼의 육화로 생각했으며, 태고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태몽을 통해서 인식하고 있는 마고 삼신(대모신)의 후손으로 인간을 생각함에 따라 인간 존엄은 태고부터였음을 알 수 있다.
즉 태몽을 꾸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태몽이 과장되지 않고, 소박하여 관념적이지 않음에 따라, 인간이 대모신의 후손이라는 점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권사회에서 모성의 지위가 신성했던 것만큼, 출산 되는 인간은 신의 후손으로서 믿었던 인간중심의 사고를 한 인본주의 사회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여성이 태고로부터 신앙의 중심에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종교적 인간형이 많다는 사실과 더불어 모성 특유의 직관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발달 된 것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볼 때, 앞의 사실을 긍정할 수 있다. 또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은 신의 후손으로서 순환 진보하며, 현생에서 수련 과정을 통해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중기모계사회였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해혹복본’의 신념을 구현하는 영적 존재였던 것이다. 하여 인간 존엄은 태고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인간의 감성(영감)에서 발현된 모계 신본주의 사회로부터 연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을 신의 후손이라고 믿어 남성을 소외하지도 않았으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 물질적 기초를 공유제로 보장하였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이 순환 진보하면서 사회협동으로 이룩한 결과물에 대한 기본재화를 보장하기 위해 공유제를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공유제는 모계사회가 영혼의 진보를 위해 영원히 순환하는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스스로 쌓은 고유한 능력과 기본적인 ‘천부소유권’을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만들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자연권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믿었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를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모든 생명체는 서로 돕고, 먹이가 되면서 순화·진보를 한다고 믿은 종교사회였다.
또한 여제사장이 씨족사회를 이끌어간 제정일치(정교일치) 사회로써, 비 혈통적인 사회로써 영혼을 육화할 수 있는 모성을 존경하여 모계 조상신을 제사하며, 살육된 동물에 대해 진보할 것을 축원하는 간단한 주문을 하거나, 정해진 시기에 희생제를 치르는 사회였다.
그리고 인간 상호 간에 동료로 생각함에 따라 인종차별의 개념이 없었으며, 자유로운 여행으로 서로의 문물을 교환하고, 호의적이고 다양성을 중시하였고, 서로 도왔던 열린 사회였다. 이는 현생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기 모권사회에서는 채취나 수렵 등에 의존하는 유목민의 생활처럼, 자연 동굴이나 이동이 쉬운 움막 등으로 생활하면서 비교적 풍요로운 행복 지수가 높은 사회였다고 하는 최근 인류학자의 보고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경우 출산 중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고, 양육 기간이 장기적임에 따라 모권사회에서는 여아 출생은 씨족의 경사였으며, 지역에서 채취나 수렵 등 식량 사정에 맞추어 여제사장에 의해 수태조절을 하여 인구수가 적었다. 뿐만이 아니라 직관이 발달한 모계사회는 실제로 몸과 마음으로 재창조(잉태, 출산, 양육)를 경험함에 따라 영혼 불멸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모성애를 근간으로 하는 모계사회가 남녀의 다른 특성이 있는 양성을 출산하는 모성의 생태적 경험과 사색을 통해 인본주의로써 음양론적인 세계관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불멸하는 영혼이 음양의 조화로 끝없는 순환과 진보를 위해 재창조가 된다고 믿었던 사회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에도 어린 나이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나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린니스트 등 음악가나 천재적인 사람들을 볼 때, 마치 생존 당시 노력의 결과가 인간으로 되돌아와서 계속 발전하는 것처럼, 수많은 순환과 축적을 통해야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모계사회가 공유제를 한 것은 영혼이 육화되어 삶의 과정에서 진보하기 위해 순환한다고 생각하여 생존 당시 자신의 고유한 일이나 공존을 위한 사회협동의 결과축적을 소위 ‘천부소유권’으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마치 언제나 잠을 자고 깨어나는 것처럼, ‘나’라는 불멸의 존재는 생사를 반복하며 연속된 삶을 살고 있음에 따라 사회협동의 결과물로써, ‘천부소유권’을 보장했다. 물론 전통 한국에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는 속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부계사회가 등장한 후, 동양의 경우는 천, 지, 인 3요소에서 인간이 주체로 이해했고, 석가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여 인간은 본래 영적 존재임에 따라 깨닫는 즉시 부처가 된다고 하였으며,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여 스스로 영적 존재임을 자각하라고 한 사실 등 인본주의적인 일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중동의 경우, 모계 유일신을 숭배하며 모계 신본주의를 세계화했던, 동이족에서 파생된 서이족의 후손인 유대인은 모계 유일신으로 원용한 부계 유일신으로 부계 신본주의 사회를 세계화한 것과는 다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동양에서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인 음양오행 사상이나, 불교의 윤회사상, 유교의 조상숭배. 도교의 불로불사의 신선 사상 등으로 변모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여 동양은 음양 철학이나, 종교 교리가 사람의 선택과 수행으로 신성한 존재로 변모할 수 있다고 한 사실은 인본주의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모계 유습을 이은 종교의 원형으로써 전통 한국의 토속신앙이나, 신앙체계 등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동학은 하느님이 사람과 함께 한다는, 즉 인간이 하나님(신)이라는 인내천(人內天)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만민평등을 교리로 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동양의 하늘(天) 사상은 소우주 인간과 대우주와 연동되어 있다고 생각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를 이은 사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태고 한국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태몽에서 항상 현몽하는 생명신이며 인격신으로 친근한 ‘마고 삼신할매’(대모신)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선조로써 인간과 함께하며 절대 존재이지만, 동네 할머니 같은 친근한 대모신인 것이다. 물론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궁극적 삶의 목적이었던 ‘해혹복본’의 신념에서 대모신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현실 세계를 불멸하는 ‘나’의 진보와 수정을 위한 특별한 기회로 생각하였으며, 나눔을 통해 인간의 본향으로 되돌아오기를 권고하였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양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음의 세계, 그리고 알 수 없는 불가지의 세계 등과 균형을 이루며 생명이 순환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있는 영원한 ‘나’는 영원한 ‘너’와 부족한 부분을 나누고, 의지하여 살아 함을 당부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소우주 인간이 주체로써 수많은 순환 진보를 하면서 자연법칙의 탐구와 대우주를 개척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알고자 노력하며, ‘해혹복본’을 굳게 믿기 위해 ‘수증’(증명)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태고 한국의 모계 유습을 이은, 고조선의 국시였던 홍익인간 사상으로 나타났다. 물론 모계 신본주의의 모계 제사장들의 유습을 이은 전통 한국의 토속신앙인 무교(무속)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하여 동학의 ‘인내천’사상의 인간 존엄은 서구의 ‘자연법’사상보다 본질적임을 알 수 있다.
중세유럽은 기독교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치가 불확실해짐에 따라 부계 신본주의가 쇠퇴하는 가운데 14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면서 자유주의 사상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이후 앞에서 설명한 홉스적인 전체주의국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로크나 루소와 같은 사회계약론자의 국가이론이 실제 계약을 막연히 가정하고 있음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나름대로 자유주의가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로크는 ‘무언의 동의’라 하여 국가권력에 동의하였다고 함으로써 국가권력을 정당화하였지만, 만약에 전쟁에서 패한 국가의 국민에게도 ‘무언의 동의’를 하였는가? 라고 반문해 본다면, 동의한 일이 없다고 한다는 점과 아울러 특히 여성들의 경우 ‘무언의 동의’가 없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난점이 있는 자유주의(개인주의)에 관해서 철학자들의 논쟁은 격렬하였고, 아울러 기독교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기존의 관습에 의해 자유주의가 19세기 초까지 이론에 머물렀던 이유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유럽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벤담(J. Bentham, 1748-1832)은 개인주의적 공리주의 이론으로 사회개혁을 역설했다.
즉 개인의 선을 행복이라고 하였고, 국가는 공공선을 위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권력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인의 행복이 인간의 내면보다 외면적 쾌락의 양에 있다 하여 쾌락 계산법을 만들어 낸 사실과 더불어 국가가 공공선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희생시킬 수 있음을 주장한 사실을 두고, ‘돼지의 철학’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이는 아마도 귀족 집안에서 성장한 벤담이 공공의 행복을 위해 전체주의적 사고를 정당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쾌락 추구는 부계가 주류를 이룬 사회에서 오히려 여성에게는 고통이 배가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볼 수 있다.
이어서 권력자와 중소자본가의 갈등, 부패한 귀족과 시민의 분노 등이 만연한 가운데, 산업혁명과 더불어 태동한 자본주의가 근대사회의 성립으로 공고화됨에 따라 공리주의도 새롭게 변모하였다. 즉 밀(J. S Mill, 1806-1879)은 벤담의 양적공리주의를 버리고, 인간 존엄을 근간으로 한,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한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의 부인 해리엇과 함께 저술한 자유론(On Liberty: 1859년)에서 교육받지 못한 자들이 형성하는 여론의 횡포에 대해 우려하면서 불균등투표를 주장하였으며, 이로 이루어진 권력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사실 등을 볼 때 엘리트주의자로 볼 수 있다.
이는 근대 시민 사회의 특징인 국가와 민중 간의 가교역할을 한 자본가와 자유주의 지식층으로 이루어진 시민단체(정당)가 만들어진 사실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동양의 유가, 도가, 불가처럼, 뜻을 같이하는 종교집단으로써 국가를 이루는 근간과 다르며, 전통 한국의 사색당파와도 다르다.
이어서 현대공리주의자인 브란트(R. B. Brandt)와 브레이부르크(D. Braybrooke)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브란트는 기존도덕률이 복지와 모순이 될 때, 기존도덕률을 어겨서라도 최대공리를 생성할 수 있다면, 기존도덕률을 무시해도 된다고 하였으며, 공공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의 존중과 일련의 규칙이 반드시 공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여 공공선이 강자의 우월적인 지위에 의해 무시된 경우가 많았던 역사적 경험에서 볼 때, 공공선을 위해 모계주의가 주류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브레이부르크는 믿을 수 없는 인간성과 더불어 불완전한 법규로 집행자들의 권한은 사익을 위해 사용한 경우가 많음에 따라 ‘천부인권’과 같은 개인의 ‘불가양도성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즉 현대공리주의는 자연법사상의 ‘천부인권’을 강화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천부인권’의 내용으로써 인간 존엄을 위한 물적 기초인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체제를 성립하여 ‘천부인권’의 실효성을 갖추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벤담의 양적공리주의는 양적인 삶을 중시하여 효율성만 강조하는 경향으로 인하여, 사회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발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에 어떠한 가족이 각자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마치 공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가족 각자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가족 착취를 하거나, 가족이기주의로 부정적인 세계관을 갖는다면, 사회기초조직으로써 가족의 본질적 기능인 사회적응 훈련과 교양을 쌓기 위한 가정교육은 의미를 잃게 되고, 가정의 사회정화기능이 훼손되면서 사회가 냉혹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벤담이 빠트리고 있다는 것은 부계적 가치가 공고화된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벤담이 자연법사상이나 사회계약을 미신 정도로 격하한 사실에 근거해 볼 때, 인간 존엄의 근간이 되는 내면세계(감성)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질적 공리주의자인 밀은 인간의 존엄을 역설하면서도 앞에서 설명된 것처럼, 엘리트주의적 경향이 있었다. 물론 19세기 초에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성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민중들은 무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즉 구시대에서부터 소외되고 무력화된 사회적 약자를 근대사회가 되었음에도, 소외와 학대를 통해서 마치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처럼 느꼈던 습속이 있었던 구시대를 벗어나는 과도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밀은 여성에게 호의적이었다.
아무튼 브란트의 공리주의는 개방적임에 따라 진일보하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성의 경우, 만약에 기존의 도덕률이 여성들에게 부적합하여 여성 자신들의 복지와 공공선을 구현하는데 장애가 된다면, 사회적 책임을 질 이유도 없을 뿐만이 아니라, 만약 남성우월주의를 근간으로 정서와 법의 보수성으로 인한 여성이 묵시적으로 무시당한다면, 여성 자신들의 도덕률을 창출하여 자신들의 권위를 높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브란트의 공리주의에 의하면, 여성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여성 지도자를 통해 규칙의 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력구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권리는 자신의 위치를 법적, 제도적, 도덕적으로 정당화시키는 힘(자격)임에 따라 여성들이 실질적 남녀평등을 구현할 수 있는 ‘모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양심에 따른 권리주장을 결사로 관철할 수 있다면, 사회에서도 실질적으로 남녀가 평등하게 되고, 가정에서도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여성의 권리문제에 대해서 제도상의 문제나 방해를 받는 등 여러 이유로 해서 여성 자신들이 규칙의 제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여성들은 규칙이 공표되어도 조직적으로 거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여성들이 권리에 대해서 민감해야 하는 이유는 부계주의가 공고화될수록 복지축소와 더불어 위험한 사회로 공고화될 경우,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모성에게 과중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하여 여성이 권력의 반을 획득하여 부계주의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성립되었음에도, 브레이브르크가 지적한 인간 양심의 오류에 의해서, 가족이라는 부분이 국가라는 전체의 힘인 권력에 의해 압도를 당하거나, 부당한 권력 작용 등 우월적 지위를 남용할 수 있음에 따라 가족복지의 중심에 있는 모성은 가족의 안정을 위해 브레이브르크의 불가양도성의 권리와 같은 의미로써, ‘천부소유권’을 보장받는 모민주의 체제의 세계화를 주도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계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 유발된 인간 양심의 오류로 인해 부정적인 것들을 양산함에 따라 가족해체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계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세상에서 남성 역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 ‘열 손가락 물어서 아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하여 남녀평등의 자녀관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족만의 생각일 뿐, 가정을 벗어나서 사회생활을 할 때, 남녀가 불평등한 현실을 정서적으로 느낌에 따라 가정과 사회가 불 일치하는 모순으로 인하여 가부장이 샌드위치가 되었다.
즉 가족 내부에서도 다름을 존중하기보다, 불평등한 현실에 부합되는 남녀불평등을 훈육해야하는 고충이 있는 것이다. 하여 남녀평등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일 뿐 실제로는 불평등하고, 형식과 내용이 불 합치한, 모순으로 인식하면서, 삶을 회의적으로 변모함에 따라 가족 내부 갈등의 폭증은 가족해체의 원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모계적 가치가 비주류로 전락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남성도 피해자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부계주의적인 공리주의가 공공선이라는 명분으로 다수를 위해 소수인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희생을 정당화한 결과, 대다수의 남성이 피해자가 된 것이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모계주의적인 자연권(천부인권)과 다른 점이 많음을 이해할 수 있다.
서구 여성이 르네상스 시대에서도 10대 1 정도의 차별을 받았던 사실을 기록한 다음 인용문을 참고한다면, 자연법사상이 모계적 가치에서 발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자는 죄악의 원천, 악마의 무기, 낙원 추방의 원인이요, 옛 율법의 파괴자이기 때문에 여자와 교제를 주의 깊게 피해야만 하며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여자라도, 설령 그 명예가 지극히 높은 여성이라 하더라도 본교의 입학을 거부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는 바이다. 이 규정을 어기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학장의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1377년 볼로냐 대학 교수단은 선언하였다.” (123) 베벨 284 P.
이는 중세 서구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이해할 수 있는 일부 사례로, 부계 절대 존재의 칙령으로 세상의 모든 여성은 참으로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유일신의 명령으로써 인간이 따질 수가 없음에 따라 모든 여성은 소외되어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은 상태였다.
이는 중세유럽이 기독교적 가치에 의한 암흑시대가 13세기 징기스칸의 세계화로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앞의 인용문 당시 서구지식인이나 학자들조차 여성을 남성의 갈비뼈 하나 정도로 믿었고, 경멸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기독교학자는 자연법사상이 기독교사상을 근간으로 한다고 주장하지만, 절대 존재에 의해 여성이 소외되었음을 상기해 볼 때, 잘못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어떠한 측면에서 기독교사상에서 파생된 부분도 있지만, 모계 신본주의의 유습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모권사회가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믿어, 공유제로 물적 기초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즉 대모신의 후손으로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분배양식인 공유제를 통해 인간 존엄을 구현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계 유일신 종교가 창립된 후, 중동지역의 여신종교를 미개하고, 사악한 종교로써 적대시하고, 폭력으로 재산을 강탈하고, 괴멸케 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철저히 부계 신본주의 사회를 공고화하여 여성을 폄하하고, 무시한 풍토가 근대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부계 유일신 종교가 자연권의 근원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종교 편을 참고 바란다.
아무튼 앞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서구사회가 암흑시대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볼로냐 대학의 입학 자격이 없었다. 이는 여성의 경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법적으로 자격이 없는 소외된 사람으로 오직 가사노동에 대한 의무만 있었다. 하여 입학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권력의 바탕이 되는 권리는 사회적 합의나 특수한 관계에 의한 것을 의미함에 따라 국가권력에 의해 보장되면 법률상의 권리가 되고, 사회적으로 권리가 인정되면 도덕적 권리로써 권위가 된다는 사실을 볼 때, 여성은 소외되어 권리(자격)가 없는 사실상 힘없는 노예나 다름없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권력이란 각 사회의 세력 간 오랜 투쟁의 결과로써 성장한 가운데 사회적 승인을 받아낸 것으로써, 자신의 이익이나 의지를 관철하는 힘을 의미함에 따라 권력을 형성할 수 없는 여성의 입장은 마치 전쟁포로와 같은, 푸대접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었던 여성은 자연법사상을 근간으로 한, 근대사회가 성립되고부터, 자연권(자연법, 천부인권)에 의한 인권을 갖게 되었다.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천부인권을 갖고 있다고 전제한 기본권으로써 인권은 일반적이고, 도덕적 권리를 보장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부인권이 있는 개인들의 계약자유를 선행하는 법률제정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여 자연법사상은 자유경쟁에 의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제도를 만들어가는 원칙이며, 법 제정이나 법 해석의 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성립된 지 약 2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실적으로 부계적 가치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남존여비의 정서가 잔존하고 있다. 하여 인간 존엄을 구현하기 위해 권력구조에도 남녀의 다른 특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체제가 성립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모계주의적인 민주주의 본질에 부합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모민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튼 오랫동안 부계적 가치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문화나 제도로 인하여,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남녀의 임금차별, 성차별, 인종차별 등 차별적 정서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상품화로 인한 모성의 구심력 상실, 무한경쟁으로 무분별한 개발, 환경오염,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첨단 과학기술 등으로 생태계 파괴에 의한 지속 불능의 상황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생명과학이 체세포로 인간 복제가 가능한 시대가 됨에 따라 이를 빌미로 모성의 출산과 양육을 저평가한다면,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구심력을 이루는 모성애가 강화되어야 함에도, 모성애가 쇠락하여 제행무상이라는 회의 의식을 갖게 될 때,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새로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여러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 비정상적인 모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과 아울러 가족 내의 갈등과 대립 등 말기적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여 자연권은 형식과 내용이 일관성을 갖추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여성성을 근간으로 했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천부인권’의 내용인, ‘천부소유권’을 보장하여 인간 존엄을 구현했던 것처럼, 경제민주화를 내용으로 하는 모민주의 체제가 세계화되는 것이 바람직함을 알 수 있다.
동양은 음양론적인 조화를 중시하여 민본주의를 근간으로 하였던 반면, 서구는 부계 신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절대 봉건제로 발전하였다. 즉 동양의 민본주의 국가는 도덕 국가를 목표로 덕치주의를 하였던 반면, 서구는 기독교 절대 존재에 의해 성립된 절대 봉건제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시 말해서 동양은 인간이 피조물이 아닌 주체로써 자율성을 믿는 가운데, 도덕적 완성을 지향하는 교화 국가였다는 점과 서구는 창조주가 주체이고, 인간은 피조물로써 절대 존재의 영광을 위하거나, 명령에 복종한 기독교 율법주의 국가였다는 점에서 다름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동양의 민본주의에서 하늘의 뜻이 백성의 뜻이라 하였던 것과 서구의 경우 인간은 피조물로써 절대 존재 아래 평등하다는 기독교를 원용한, 법 아래 인간이 평등하다고 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퇴장한 후, 동양의 경우 인간을 독립적 주체로 생각한 인본주의로 인문학이 발달했지만, 중동에서는 부계 신본주의(헤브라이즘)로 변모한 결과이다. 후일 헤브라이즘이 서구문화의 근본을 이루면서 고대 그리스의 인본주의(헬레니즘)는 쇠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절대 존재가 지배하는 중세 암흑시대(3세기~13세기)가 막을 내리게 되면서 인본주의로써 고대 그리스 철학이 부상하고, 교부철학과 함께 복합적으로 발전한 결과, 자연법사상이 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된 서구의 자연권(법) 사상은 태고로부터 오랜 과정을 거쳐 고대 그리스에서 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피라미드 입구에 새겨진 것으로 ‘너 자신을 알라’고 (너 자신이 불멸의 영적 존재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 외쳤던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제자 절대주의 철학자 플라톤에게 영향을 주어 이데아를 존재의 본질로 보게 되었다.
이는 후일 유대교에서 파생된 기독교의 사상적 체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반면 플라톤의 제자이면서도 상대주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 정치, 자연과학 등과 같이 인식의 문제를 다루었다. 즉 세상은 신의 의지가 아닌 인간이 주체로써 스스로 삶을 꾸려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인본주의 철학자였다.
예를 들어 인본주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상황에 따라 여성이 정치 권력의 중심에서 세상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여성성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를 여성이 스스로 만들어 주류를 이룬다고 할지라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 제국이 성립되기 전에 있었던 상대주의 철학자임에 따라 모계주의가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음을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아리스토텔레스의 상대주의 철학을 이은 서구의 경험주의 철학은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을 발전케 한 원동력이 된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앞의 내용이 합리적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개인의 입신양명을 추구한 제논은 스토아학파(금욕주의)가 법을 선행하는 자연법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인본주의인 헬레니즘과 부계 신본주의인 헤브라이즘이 혼재하면서 발전되어갔다. 이후 헤브라이즘의 기독교는 로마제국으로부터 가혹한 박해를 받은 후, 392년 국교로 성립됨에 따라 기독교를 위한 교부철학이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였다. 즉 기독교 신학은 세상살이의 고통의 원인을 여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원죄로 인하여 유발되었다고 하는 원죄설을 중시하여, 남녀불평등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배타적인 부계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외의 종교는 이단으로 확고히 하였다.
또한 교회 부속학교 교사들에 의해 철학으로 발전한 스콜라철학이 9세기~15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즉 스콜라철학은 자연법사상을 절대 존재의 의지 발현으로 발전시켰으며, 13세기 스콜라철학의 대표적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이 만든 국가의 법위에 상위법인 신(절대 존재)의 법으로 통제된다고 한 ‘천부인권’을 주장하였다.
이를 두고 자연법이라 하였으며, 신 아래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왕권신수설처럼, 신에 의해 권한이 주어진다는 의미로써 피조물로써 종속적인 의미가 있는 반면에, 주체로써 인간 존엄을 위한 자연법과 다르다는 사실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13세기 징기스칸의 세계화로써 동양의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본주의 사상과 인문학적 결과물과 서구문물이 교류함에 따라 인류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고, 자유주의가 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몽골제국은 중동의 이슬람문화나, 유럽의 기독교문화 등과 동양의 음양 사상, 논어, 사서삼경 등의 인문학과 화약 기술, 축조, 항해술에 필요한 나침반 등의 과학기술을 전파하는 등 동서 문물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상업주의를 태동케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서교류는 서구가 부계 신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중세 유럽이 3세기~13세기에 이르는 정체된 암흑기를 벗어나, 경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실증주의가 주류를 이루게 되어 기독교의 신뢰는 땅에 떨어져서 불확실해지면서 상업주의가 활성화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후일 새로운 가치체계를 정립하기 위해 고대 희랍의 철학을 재조명한 결과 자유주의가 태동케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여 동양의 민본주의가 서구 중세의 신본주의적인 자연법에서 후일 인본주의적 자연법사상의 발현에 영향을 끼쳤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동양의 민본주의 영향으로 유럽은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고대희랍의 상대주의철학을 재조명하게 되었으며, 이어서 경험주의 철학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휴머니즘(인본주의)을 근간으로 하는 르네상스를 맞게 되어 인본주의적인 자연법(권)사상이 구체화 될 수 있었다.
하여 동서양의 문물교류가 로마의 멸망으로 형성되었던 자유주의 사조가 자연법사상에 의해서 자유주의로 구체화 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 사조는 후일 구체제 퇴출을 시민혁명의 성공으로 근대사회를 성하게 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 자유, 평등, 생존, 행복 추구를 위한 천부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창설되었다고 했으며,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정치결사의 목적은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면 저항할 수 있는 권리로써 ‘천부인권’을 선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민혁명 후 불안정한 사회라는 과도기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벤담의 양적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정책의 결과를 우선하게 됨에 따라 자연권을 퇴색하게 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밀의 질적 공리주의는 인간 존엄을 근간으로 하였지만, 물적 기초가 보장되지 않는 인간 존엄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하여 공리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 전체주의적 파시즘이나 나치즘에 의한 전대미문의 대학살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제국주의, 패권주의, 인종차별, 성차별 등에 의해 비극적이고 참혹한 삶을 경험함에 따라 인류는 자연권(법)을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탈자유주의적인 복지사회 구현을 국가목표로 설정하게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오늘날 공법(헌법, 행정법 등)은 국가적 공권으로서 명령권, 강제권 등과 개인적 공권은 국가에 대한 권리를 참정권, 자유권, 인간다운 삶을 할 권리(생존권, 생활권), 노동 삼권, 환경권 등이 있으며, 사법(민법, 민사소송법 등)상 권리는 인격권이나 소유권 등으로 나누어져 있고, 종류와 주제, 내용 등에 의해서도 수많은 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발전과 함께 법령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자연법사상을 근간으로 해석하고 발전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기본권으로써 인권은 모든 것에 선행한다고 전제함에 따라 국가 존립의 정당성인 법과 사회제도를 자연법사상과 부합되게 만들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자본주의가 절대적 양극화를 만들어 절대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스스로 존엄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이르게 한다면, 자본주의국가의 존립 정당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천부인권’이 확장된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체제가 성립해야 함을 알 수 있다. 현대철학자 N.보위, R.사이몬은 자연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누가 어떤 대상에 대해 자연권을 갖는 경우는 ⓐ그가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고, ⓑ그 자격이 도덕적으로 근본적인 것이고, ⓒ그 자격이 그의 사회적 지위, 법체계의 명령 혹은 다른 제도적 규칙이나 관행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것이 위에서 논한 의미에서 일반적인 것일 때 뿐이다. 그리고 자연권은 위에 언급한 몇 가지 그럴듯한 의미에서 불가양도이다. 조건 ⓐ는 자연권을 권리라는 넓은 범주 속에서 포함시키지만, 다른 조건들은 자연권을 고유하고 근본적인 종류의 도덕적 권리로 특징짓는다.” – (124) 사이몬 78p.
이처럼 자연권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에서 파생되는 사회적으로나 관습적인 것과는 반대의 권리로써, 부부 사이든, 어린아이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연법을 이해하든, 못하든, 인종이 어떻든 간에 인간의 존엄함을 위해 인간 상호 간에 사회협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대모신의 후손으로 믿어 나눔을 위한 사회협동을 하였던 것처럼, 인류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토양을 스스로 마련해야 함을 이해할 수 있다. 하여 인간은 개인성과 사회성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천부인권’의 내용인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세계화하기 위한 모민주의가 성립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볼로냐 대학에서 여성을 마치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죄인처럼 격하한 것은 여러 사례 중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서구기독교와 같은 부계 유일신을 숭배하는 회교국가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에서도 부계 우월주의가 일반적이다.
특히 절대 존재로서 부계 유일신을 숭배하는 기독교는 피조물 남성의 갈비뼈 한 조각에서 만든 인류 최초의 여성인 하와가 절대 존재의 명을 어기고 신성을 범하여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이후 하와의 원죄로 인간은 영생 불능, 기아의 공포, 약육강식의 고통, 절망적 상태 등 고통의 삶을 된 사실에 근거하여, 남녀불평등을 정당화한 대표적인 부계 우월종교이다.
물론 대다수 부계 우월주의 종교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여러 가지 원인을 교리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기독교의 부계 우월종교의 경우처럼, 하와가 창조주인 하나님을 배신한 결과 인류는 가혹한 삶과 현세의 전쟁, 폭력, 죽음 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였던 것만큼, 극단적이지는 않다.
즉 기독교는 여성의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일회적 삶을 살게 되었고, 불행하게 되었으며, 악이 생성되었다고 생각함에 따라 여성에 의해 성악설적인 세상이 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 인류는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상징적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인류가 이로 인한 나쁜 결과로써, 어떠한 이유든 오랫동안 여성을 열등한 내지는 사악한 존재로서, 괴롭힘을 당하고, 오늘날까지 정서적으로 불평등한 원인이 되는 등 피해받고 있다.
즉 여성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산 것처럼, 소외되어 수많은 기회를 잃었고, 오늘날까지 불리한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더구나 부계 유일신이 존재하는 한, 여성은 인류에게 고통을 준 중죄인으로서 족쇄가 채워져 있음에 따라 시효가 없는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운명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여성으로 태어나는 자체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무한책임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 모순을 신의 명령으로 정당화한 것이 순리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성에 대한 부계 유일신의 노여움은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했고, 자신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남성을 위한 정절을 지키는 이유가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비록 가족을 구성하였지만, 남성이 여성을 죄인처럼, 학대하거나 가족 착취를 정당화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 존재에 의해 확고하게 설정된 부계 우월주의와 더불어 생육과 번성이라는 유일신의 권고로 인하여, 남성들의 성욕을 주체할 수 없이 방만한 상태가 된 가운데, 무권리의 수동적인 상태에서 대상이 된 여성들은 정절을 지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는 모순 속에서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성적 노예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 ‘주홍 글씨’에서도 중세유럽에서 여성의 삶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즉 절대 존재로부터 남성우월주의를 보증을 받게 됨에 따라 교육훈련, 정치 권력, 재산상속 등 모든 것을 독점하게 되었고, 여성은 성적 존재로 전락한 오만방자한 사회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메세이지가 세계화함에 따라 동양의 음양 철학에서 근거하는 ‘안의 문화’에도 영향을 주어 동양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추락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여 인류는 부계사회가 등장한 후 어느 정도 남녀차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부계 유일신 종교의 성립과 확산이 되고부터, 남녀차별이 극단화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생태적으로 복지적이며 직관이 발달한 여성은 태고로부터 종교적 인간형으로써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설정한 교리에 근거하여 제사장(종교지도자)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데서 여성의 지위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의 본질인 현재 구원을 위해 나눔에 충실했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남녀평등을 이루었지만,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종교에서 분리된 정치를 남성이 독점하면서 불평등하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남녀차별이 없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모계 유일신을 중심으로 하여, 다수의 중간 신들과 아울러 부계와 모계의 조상신들과 함께하는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생각하여 조상신의 개념이 있는 반면에 남녀차별이 뚜렷한 부계 유일신 종교에서는 인간을 부계 유일신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로 설정함에 따라 오직 유일신과 인간으로만 생각하여 조상신의 개념이 없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생을 산다고 생각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는 신의 후손으로 인간을 출산하는 모성이 종교의 주체가 되었던 반면, 부계 유일신 종교에서는 주인은 창조주이며 일회적 삶을 사는 피조물 인간을 출산하는 모성을 마치 로봇을 생산하는 기계처럼, 수단으로 경시한 데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성경의 창세기에서, 낙원에서 영생할 수 있게 창조된 인간이 여성 하와의 원죄로 말미암아 낙원에서 추방되어 영생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으로 명문화함에 따라 여성은 소외된 것이다. 즉 창조주인 부계 유일신의 명령으로 여성이 소외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음양론적인 ‘우주 창생관’을 가지고 있는 동양은 인간이 혼, 령, 육화 등으로 변모하며 순환 진보하는 주체로 생각함에 따라 ‘나’를 있게 한 모성을 존경하였다. 다시 말해서 동양은 음양 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민본주의 사회로써, 사람을 재창조하는 여성을 존중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종교적 심성과 부합되는 고대 한국의 원형종교를 이은 전통 한국의 무교에서 현재 실존하는 사람을 잡신보다 우월적인 존재로 인식하거나, 모계 제사장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창조론을 근간으로 하는 부계 신본주의 사회였던 서구는 절대 존재의 피조물인 인간을 출산하는 여성을 1차 피조물에 종속되는 2차 피조물로써 믿음에 따라 사람대우를 하지 않았다. 하여 조상신을 숭배하는 동양은 인간을 재창조하는 여성을 중시했던 반면에, 서구는 부계 유일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출산하는 여성을 경시한 점에서 상반됨을 알 수 있다.
물론 동양 사회에서 ‘나’는 불멸의 ‘나’로서 여러 생을 산다고 생각하는 반면, 서구의 ‘나’는 창조물로써 일회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함에 따라 여성이 경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종교에서 분리된 정치가 철학적 인간형을 배양하고, 부계 우월종교를 만들어 의식을 지배함에 따라 생태적으로 종교적 인간형인 여성은 종교적으로도 부계에 종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신들의 태만과 성욕이나 탐욕 등을 위해, 동반자 여성들을 부계 우월종교에 의해 노예화할 수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부계 우월종교에 의한 여성을 폄하하고, 종속을 정당화한 결과, 남성들이 착취할 수 있게 되면서 급속도로 자기 발전을 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럽이 3세기경부터, 부계 유일신이 지배하는 종교제국으로 변모하게 됨에 따라 여성은 절대주의적 불변의 법칙으로 소외되었으며, 이러한 영향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동양에도 파급되어, 동양 여성이 과거보다 곤경에 처하게 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중세에 이르러 동서 문물교류로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함께 기독교의 교부철학을 벗어난 인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지식층과 서구 여성들이 절대주의적 기독교문화의 확실성을 의심하였고, 절대 존재에 대한 의심으로 탐구와 분석을 하기 시작하고 있으며, 동시에 중세(14세기~17세기) 마녀사냥도 시작되었다.
이는 17~18세기에도 여성은 여전히 사람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족쇄에서 풀려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관습이나 합의와는 반대되는 도덕적이고 근본적인 불가양도의 자연권을 17세기 서양철학에서 구체화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중세유럽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겪으면서 인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종교보다 철학에서 구하려는 했던 결과이다. 물론 유럽이 교황체제로 인하여 오랫동안 정치 권력은 위축됨에 따라 상업의 발달로 형성된 대상(大商)들의 세계 여러 지역과 활발한 교역을 통한 문물교류의 영향으로 자유주의가 태동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후일 자유주의를 구체화한 존 로크(J. Locke, 1633~1704)는 유물론적이며 감각적인 인식론과 역사철학적 논리는 계몽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로크의 ‘시민정부이론’에 영향을 받아 미국헌법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영국은 인본주의적 경향과 민주적 토양이 잘 조성되어 있음에 따라 철학적 상대주의를 근간으로 한 경험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영국이 과학발전과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영국인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에서 형성된 민주적 기질과 풍토에서 성장한 로크는 기독교적 천부인권이 아닌,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자연권(법)을 주장한 것은 영국의 독특한 문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로크의 자유주의(개인주의) 사상이 근대사회를 열게 되는 초석을 제공하여 당시의 유럽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인권에 대한 자연법적인 확고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일 시민혁명을 통해 성립된 프랑스 민법전까지 영향을 주었던 점에서 획기적인 사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유럽에서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경멸의식은 잔재하고 있었으며, 여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사회참여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임금이 없는 가사노동은 노동으로써 인정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부계 편향적인 사상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있다.
“세계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창조된 창고라는 것이 여기서의 로크의 주장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용하기 위해서 창고 속의 재화를 소유할 수 있다. 이 소유의 수단은 노동이다. 노동은 노동자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재산이기 때문에, 최소한 타인을 위해 충분하고 똑같이 좋은 것들이 남아있다면, 노동을 가한 사람만이 노동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산물에 대한 가치를 가진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은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동이 아니라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
“… 교환의 대가를 금과 은을 받음으로써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양 이상으로 자연의 산물을 공정하게 소유하는 길을 암묵적이고도 자발적인 합의를 통해 발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균등하고 불평등한 소유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 (125) 같은 책 81p – 82p
이처럼 로크적인 국가는 자연권을 소극적으로 보장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비복지적인 자유주의(개인주의) 원칙에 의해, 무제한 자본축적 경쟁으로 유발되는 양극화로 불안정한 사회가 된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하여 복지주의가 내재 된 자연법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국가가 자연권을 보장해야 하는 상황과 원칙적으로 국가개입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와 상반됨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시 무권리자(무자격자)로서 여성들의 경우에 기독교문화에 의한 소외와 경제에 의한 인권침해로 인하여, 2중 고통을 받는 사회적 약자임에 따라 마땅히 자연법의 보장을 받기 위해 국가의 보호가 필요함에도, 국가개입을 거부하는 자유주의로 착취를 당하였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초기자본주의와 흡사한 로크적 국가에서 임금을 받지 않는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자유주의(개인주의)와 자연법이 배치되는 모순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7~18C 로크 당시 서구 여성은 여전히 부계에 종속적인 상태로 소외되어 사회적 지위가 ‘무’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마치 가정에서는 노예처럼, 사회에서는 창살 없는 사회적 감옥에서 사는 것과 같은 상태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자연법이 복지사회의 근간이 되는 ‘천부소유권’을 보장하지 않음을 볼 때,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여성과는 별개로 볼 수 있음에 따라 부계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남자들만의 자연법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연법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사회가 성립된 후에도 여성이 투표권을 쟁취한 것은 20세기 초였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어떠한 의미에서 여성의 지위가 변화하게 된 것은 여성의 생태적 본능과 부합되는 소극적 복지국가가 성립된 후부터로 볼 수 있으며, 근본적인 변화를 한 것은 미국 여성에 의해 주도된 1960년대 말부터 남성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인 ‘남적론’(男敵論)을 필두로 획기적으로 변모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우월주의가 없었던 반면, 부계사회는 남성우월주의가 극단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우월주의로써 페미니즘(여성사회주의)의 결사로 여권이 신장 되고 있다. 즉 과거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 후유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여 보상적 정의로써 양생할 수 있는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의 구현을 위한 정치경제 제도가 필요함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부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세계화를 함에 따라 반동하여 만들어진 ‘남적론’처럼, 대립적 정서의 심화가 위험한 사회를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가족해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만연하는 우울증과 테러, 흉악범증가, 폭발적인 범죄 발생 등으로 인한 사회적비용의 증대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씨족사회였기 때문에 남녀평등이 가능했을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은 소우주이며 대우주와 연동되어 있다는 독특한 인간관을 갖고서, 스스로 행위의 결과로 길흉화복을 스스로 받는다고 생각함에 따라 우월주의 자체가 형성될 수 없었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는 인간의 적극적 권리로써 자연권을 보장하기 위해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모민주의의 세계화로 역사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알 수 있다.
자연권은 인권선언 전문, 제22조, 제25조, 제26조 등에서 인간의 존엄을 위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향유를 위한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자격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국가는 경제적으로 개인과 가족복지를 위한 충분한 생활 수준을 보장함과 아울러 의무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국가가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을 구현하지 못할 때는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명문화하여 인류의 나아갈 방향과 목표를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는 태고로부터 오늘날까지 인류의 이상으로써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잊지 않고, 사회협동으로 진보한 결과이다.
아무튼 천부인권을 근간으로 하는 로크의 개인의 소극적 권리(자유주의)를 시작으로 인류는 자연법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루소는 자연법을 인간의 적극적 권리로써 중요한 의미를 두었다.
즉 근대 민주주의 사회를 성립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어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바이마르 헌법으로 이어져서 전 세계가 국민국가로 발전하는 초석이 되었으며, 이후 복지를 국가 존립의 정당성으로 설정한, 이른바 복지국가(수정자본주의)로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세계화로써 신자유주의가 무한 경쟁과 복지축소 등으로 자연법의 의미를 퇴색하게 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 초기 근대사회보다 민간 부분이 획기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서비스적인 관료제를 정착하기 위해 신자유주의가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적 양극화로 인해 형성되는 빈곤층의 확대로 위험한 사회를 공고화하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경제 최고주의 세상으로 발전케 함에 따라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살게끔 한다는 점과 아울러 근대정신인 자연법과 배치된 제국주의에 의해 인류가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것을 상기하게끔 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구촌 시대가 되었음에도, 오히려 인종차별, 남·북 문제, 제국주의가 만든 피해국들의 문제나, 자본시장의 세계화로 인한 고도 집중과 기술독점 등과, 아울러 과당경쟁으로 인한 환경오염, 양극화로 인한 이분법적 대립 현상이 심화가 되는 등으로 위험한 사회가 뚜렷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써 살게 함에 따라 형성되는 이해관계의 충돌로 유발되는 사회적 경비의 과다지출이나, 과소비에 의한 환경오염방지를 위한 환경 복구 비용의 발생 등이 천문학적으로 증대하고 있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앞으로 인류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가 폭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없는 자본주의 속성에 의해서 민주정치는 무력하게 되는 가운데 초국가적인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시기를 놓치고 있음에 따라 신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처럼 협소해진 오늘날 특정 지역의 문제가 세계문제로 확대되거나 문제해결도 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즉각적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라 세계 분업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는 서로가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어떠한 지역의 문제는 전체의 문제로 이어져 불안정한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좁아진 세상에서 경쟁력 있는 초국가적 거대기업은 자본축적이나 세계시장점유가 쉬워 절대적 양극화가 가속화되며, 무한 경쟁으로 인한 과잉경쟁이 과소비를 유발하여 자원고갈이나, 환경문제 등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신자유주의 국가는 국가개입의 최소화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충실해야 함에 따라 축소되는 국리민복으로 사회통합이 어렵게 된 결과이다.
하여 상호의존성이 증대되는 오늘날 인류가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기를 바란다면, 부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이분법적인 상극의 관계가 아니라, 삼분법적(입체적) 사고로 조화로운 삶을 중시했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처럼, 상생을 위한 의회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모민주의’로 세계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인류는 지구촌 시대를 위한 UN이라는 국제기구를 갖게 되었고, 느슨한 세계정부의 역할을 함에 따라 신인류로서 개인은 세계평화를 위한 권리와 의무관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네티즌으로서나, NGO의 활동을 통해 세계시민의 덕목을 갖추면서, 세상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세계가 첨단 과학기술로 시간적, 공간적으로 협소해졌을 뿐, 각 지역의 유구한 역사, 전통적 가치로써 정체성, 전통문화, 습속, 관행 등은 여전함에 따라 문화적 충돌로 인한 적대감이나, 테러 등과 생태계 파괴, 인간성 황폐화 등 말세기적 위험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근원은 부계 편도로 발전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는 여성들이 주도하는 비정부기구로써, 녹색생명운동 국제NGO는 탈자본주의를 위한 국제적이며, 네트워크적 결사체를 통해서 마치 ‘부계주의의 종말’과 같은 새로운 세상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인식할 수 있다.
하여 지구촌 시대를 맞이한 신인류는 여성의 적극적 권리를 보장하여 부계와 균형을 이루는 세상에서 살아야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안정된 삶을 위해 권리 일부를 양보하여 공유제를 한 것처럼, 여성에게 권력의 반을 보장하는 체제를 말한다.
이는 문명화된 오늘날 인간 동료에게 적자생존 논리를 적용하여 무제한의 약육강식을 정당화한다면 인간 스스로 공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개인성에 편중한 자유방임주의처럼, 자본주의 속성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가 극단적 양극화를 형성하여, 대다수 사람이 갈수록 늪에 빠진 자포자기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경우, 천재지변 등에 의한 생존환경의 변화로 위기를 맞게 되었던 역사적 경험에서 알 수 있다.
하여 자연법을 확장한 적극적 권리이며, ‘천부인권’의 내용으로써, 지혜로운 인간은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위해 새로운 체제가 성립되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오늘날 인류가 문명화되었음에도, 태만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지 못하고, 과거에 안주하여 공멸의 위험을 방치하고 있을 만한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
하여 신인류는 국가자본주의 시대와 달리 진일보한 지구촌 시대에 걸맞은 자연권을 확대한 적극적 권리를 보장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모민주의로 위기를 극복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적극적 복지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 권리로서 자연권을 확장한 ‘천부소유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결사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경제 편을 참고 바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만 년에 걸친 선사시대 대부분이 모권사회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칼맑스(Karl Marx: 1818-1883)는 모계사회를 원시 공산사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비혈통주의 사회로써 모권시대는 성교권이 여성에게 있음에 따라 인구수가 적었고, 비교적 풍부한 자연환경으로 풍요한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자연 친화적 평화로운 하나의 세계로서 자유로운 여행을 한 사실이나, 모성이 연대하여 문물교류와 위험부담을 나누었으며, 모계가 오랫동안 분배의 중심에서 역할을 하였던 사실 등을 고려해 볼 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태고사회에서 여성이 사람을 재창조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모계의 능력이 부계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모계사회가 태고로부터 수만 년간 오랫동안 주류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로 볼 수 있다. 하여 인간은 태생적으로 종교적이며, 문화적 존재인 까닭에 모권사회가 적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미 지구에 있었던 동물과 달리, 수백만 년 전 불현듯 지구에 나타난 인간은 창조적 존재로서 영적 감응 장치와 이성을 가진 문화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양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모계사회에 대해 자주 인용되는, BC 3세기경 전진(前秦)시대에 여불위(呂不韋)가 3,000명 정도의 다양한 식자층을 구성하여 편찬한 백과사전인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태고의 백성은 어미는 알아도 아비는 모른다,’고 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모성에 의해서 인간이 재창조하는 명백한 사실을 두고서, 모성을 생명 순환의 중심으로 우월적인 존재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덧붙여 고고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수많은 신석기시대 유적발굴로 증명이 되는 가운데, 양사오문화 유적에서 합장묘는 모성 중심으로 되어있었고, 남성의 묘보다 부장품이 더 많았으며, 부부합장묘는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부계사회의 등장 이전 정교 일체였던 모권사회에서 모계 제사장은 신성한 존재로서 천명(하늘의 뜻, 민중의 뜻)을 받아서 인간에게 봉사하는 상당한 지위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함에 따라, 일반적으로 모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약간 높았음을 이해할 수 있는 예가 될 것이다.
아울러 앞에서 설명한바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모계사회가 존재하고 있으며, 오늘날 미국의 경우 아메리카 인디언의 나바호족(Navaho)은 15만 명 정도의 인디언 부족으로 에리조나, 뉴멕시코, 유타주에 걸쳐 있으며, 핵가족의 모계사회로서 처가를 거주지로 하여 약 60개의 모계 집단이 있다고 백과사전은 전하고 있다.
하여 태고의 모계사회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계 우월종교와 다른 종교적 체험이나, 모계 유습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인간의 민주성에 부합되고, 평화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제3차 산업혁명인 지식정보산업을 근간으로 하는 첨단 과학기술 시대로 대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계 정신문화가 시대를 초월해서 아직도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모계사회를 통찰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태고로부터 중기모계사회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은 모권사회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직관이 발달한 사회로써 내면의 세계를 이해한 정신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계사회가 공고화되기 시작한 말기모계사회에 이르러 동서양의 부계사회가 다르게 발전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물론 모계적 유습이 지정학적으로나 종교적 이유 등으로 동양에 많이 잔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양의 인본주의가 생명의 순환은 영혼이 진보하기 위한 것으로 믿은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영혼불멸사상’에서 파생된 원시 음양 사상이 약 7,000년 전 한민족의 원류인 동이족의 복희씨에 의해 발현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자연의 순환과정을 통해 영혼 불멸을 이해하고, 믿었으며, 우주 창생의 원리를 모성의 재창조 과정에서 유추하고, 확장한 것이 음양 사상의 원형임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본주의로써 음양론은 모계적 가치에서 발현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계사회가 공고화되면서, 모계주의적인 음양론이 고대 중국에 의해 부계주의적인 음양론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원시 음양론을 이은 고조선의 멸망으로 모계주의가 막을 내리고, 비주류로 잠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논변을 하였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종교 편을 참고 바란다.
물론 세상이 부계적 가치가 주류로 공고화되었다 할지라도, 모성애를 근간으로 하는 모계주의는 소멸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태고로부터 오늘날까지 모성은 모계적 가치의 근원인 여성과 부계적 가치의 근원인 남성을 재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은 신의 후손으로서 조상신을 숭배하고, 조상의 분신인 ‘나’는 조상의 현신으로 삼라만상의 주체로써, 스스로 만든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한 점에서 인본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고대 중국에서 노자, 공자, 맹자 등이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계 유습을 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성인들의 인문학적 성과가 흩어져 있던 고대 중국을 통합하여 중앙집권적 국가로 성립하게 했다는 점에서 부계적으로 변모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중국은 형식은 로마제국처럼, 중앙집권적 국가지만, 내용 면에서 분권적이며 가능한 지방의 전통문화를 존중하는 중용의 덕으로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모계적 가치가 내재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본주의 사회로써 천지신명(天地神明)을 의미하는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제국이 아닌 하나의 나라로 통합이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지신명의 목적과 조화로 만들어진 삼라만상의 주인공으로서, 인간의 양심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덕적 가치는 하늘의 뜻과 같은 것임에 따라 애써 지키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하나의 국가를 통일할 수 있었다.
물론 동양은 사람을 피조물이 아닌 순환 진보의 연속된 결과로 본 인본주의(상대주의) 사회였다는 점과 결과보다 원인과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덕치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고대 중국이 대국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이른바 대모신이 인간 후손에게 권고했던 ‘해혹복본’의 유시를 구현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이 잔재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물론 인간 자신이 조상의 분신이면서 산 조상이라 생각하여 과거의 수정 보완과 미래를 결정하는 현재를 매우 중시하여 적은 것으로도 나누고 만족할 줄 아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살거나, ‘수기치인’의 삶을 산 것도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신의 후손으로 불멸하는 ‘나’는 스스로 끝없는 순환과 진보를 하며 재창조를 한다는 영혼불멸사상을 믿었으며, 신선의 가르침을 익히고, 실천하는 수행을 통해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은 후일 도교의 신선 사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모성을 통해 생명이 순환 진보한다고 믿은 비 혈통적인 모계 신본주의 유습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동양은 출생양육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효를 두고 만행의 근본으로 생각하였고, 인간답게 만들어가는 사회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충으로 생각함에 따라 자식은 부모를 섬기고 부모는 조상에 대해 제사하는 것을 중시한 사회였다.
예를 들어 모계사회의 비 혈통주의는 동양에서 스승과 부모가 동격이라는 사부일체(師父一體) 사상에 의해 스승을 섬기고, 죽은 후 제의를 하며 맥을 이어간 사실이나, 유가(儒家), 불가(佛家) 등의 경우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반인 여성이 괴롭다면 인류는 괴로운 것이다.’라고 한 ‘대지’의 저자 펄벅 여사(Pearl Buck: 1892-1973)가 쓴 근세의 중국 여성에 대한 글을 보자면, “그 무렵의 중국 여성은 생활은 구원할 길 없는 하나의 틀에 갇혀 있었다.
여자의 장소는 가정이었다. 이 말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감수하는 중국의 여성은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무엇을 가정 속에 이룩해 놓았다. 중국에서는 가정이라는 것이 미국처럼 남자의 생활과는 유리되어 남자가 먹고 자기 위해서만 돌아오는 것과는 달랐다. 중국의 진정한 생활은 가정 속에서 영위되고 있었다.
남성조차도 중국 여성이 지배하는 가정의 불가결한 한 요소가 되어있었다. 왜냐하면 사회 전체의 구성을 하나로 이어진 지붕 밑에서 3대나 4대에 걸쳐 함께 살고 있는 대가족의 복잡하고 긴장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여성은 노인이나 젊은이까지도 포함한 커다란 가족 조직을 감독하기 위하여 관리자로 행동하고 있었으므로, 흔히 말해지는 것처럼 가정 밖의 일에 야심을 품을 필요는 없었다.
제사, 성묘, 출산이나 결혼 또는 사망 때에 거행하는 종교의식, 그리고 범죄자도 일족의 재판을 받았으므로 민법을 집행하는 지배권, 자녀의 교육, 사내아이에게는 전문기술이나 장사하는 방법을, 여자아이에게는 신부가 될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노인을 위로하고 병간호도 하며, 가난한 친척을 돌보기도 하는 등 – 이 모든 일은 가정 속에 있는 여자의 임무였다.…중국 여성이 자신의 가치를 알고 차분히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자신(自信)이었다.
세계 어디서나 중국의 여성을 보면 당신은 알아챌 테지만, 그녀는 개성을 가진 인간이며, 침착성이 있고, 자기의 존재나 행위에 아무런 열등감도 느끼지 않으며, 조용히 빛나는 눈동자는 동요하지 않는 온화한 영혼을 비치고 있다. 여성으로서의 움직일 수 없는 가치를 알고 있다. 남성과 비교하여 여자인 자신이라는 것을 심려하지 않는다. 여자로서 차이를 인정한 다음에, 남자와 동등함을 알고 있다.” (126) – 펄벅, 김진욱 역, 젊은 여성을 위한 인생론, 범우사, 1987, 20p~22p
그리고 중국의 현자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의 ‘내 나라 내 민족’(1935)이라는 저서에서 ‘여자의 예지 본질은 그대로 중국 정신 본질이다’라고 했다. 즉 모계적 가치가 생활 속에 문화로써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주의적인 음양 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동양은 조화를 중요시하는 사회임에 따라, 서구 여성처럼, 유일신에 의해 열등한 존재로 설정된 바도 없고, 비록 형식에 있어서는 가부장제국가이지만, 내용적 측면에서 가족의 구심력으로 모성을 존중하여 균형을 이루는 합리적인 사회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동양의 음양 철학에서 음과 양이 각각의 다른 성질로 인하여 대립으로 인한 충돌을 완화하고, 조화롭게 변화케 하는 모성애와 같은 제3의 기운으로써 충기(沖氣)를 중시한 사실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즉 충기는 음양의 각각의 부족한 부분으로 인하여 대립이 되는 것을 상호 보완하여, 상생케 하는 기운(사랑)으로써 부분이면서 전체를 의미하는 성질이다.
이는 각각의 주체로써 남녀가 다름을 존중하고, 부족한 부분을 상호 보완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나눔을 생활화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인간 상호 간에 보편적인 절충점을 찾아 양보와 타협을 하는 중용을 제일의 덕목으로 생각한 동양적 가치는 인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양 여성이 중세 서구 여성과는 달리 어느 정도 남녀가 균형을 이루었던 이유로 볼 수 있다.
물론 서구적가치가 동양적 가치와 혼재를 이루면서부터 여성들은 차별을 받았다. 이는 아마도 제3의 충기가 없는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로 인하여 남녀를 대립적인 관계로 보아 소외를 했던 것이 동양에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구 기독교문화는 남성의 갈비뼈 하나로 만든 여성은 태생적으로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폄하를 한 것이 보편화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의 설화에 나온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서, 사냥꾼에 쫓긴 사슴을 구해준 나무꾼에게 보은으로 선녀들이 목욕하는 곳을 가리 켜 주면서 한 선녀의 옷을 훔쳐서 아이를 셋을 낳을 때까지 감추어 두면 백년해로를 한다고 가르쳐주었지만, 아이를 둘 낳아 믿고 옷을 돌려주니 하늘로 두 아이를 안고 갔다는 설화를 기독교 바탕의 문화로는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신선을 의미하는 선녀(仙女) 설화를 유포했다면 중세 유럽에서 마녀로서나 신성모독으로 화형에 처하였을 것이다. 물론 전통 한국의 경우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은 조선 중기부터 처녀 귀신을 두려워하였던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여성의 삶은 가부장제라는 현실 속에서 불리하고 고단했던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모계사회가 이룩한 문명을 토대로 발전한 인류는 부계사회를 등장케 할 수 있었고, 이후 부계사회는 동양의 부계사회와 서구의 부계사회로 나뉘었지만, 서구가 부계의 절대 존재에 의한 강력한 부계사회로 발전하면서 여성은 소외되어 고통의 삶을 살았다. 왜 그런지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즉 태고의 모계사회를 이은 중기모계사회로써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넓은 범위에 걸쳐 세상의 주류를 이루어, 하나의 세계처럼, 되어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논변한 바와 같이, 모계 유일신을 숭배한 동이족으로서 서쪽(중동)에 정착한 서이족의 지류인 유대민족이 절대주의적이고 배타적인 부계 유일신 종교를 만들면서, 중동지역의 여신종교는 급속하게 소멸이 되었다.
이어서 부계 유일신 종교는 중동과 주변부로 확산이 되면서 서양은 부계 신본주의로, 동양은 민본주의로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발전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기모계사회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착한 인류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어서 모계와 부계가 공존하는 말기모계 시대에 이르러 농업기술의 발달로, 인류의 4대 문명발상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의 갠지스, 중국의 황화문명 등이 만들어져, 인구증가와 함께 잉여 생산을 비축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부계사회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연합뉴스 2010년 8월 30일 자에서 요하문명 연구가인 우실하 교수는 ‘요하문명(중국명칭; 랴호허, 중국 동북지방, 고조선 태동지)은 황하문명보다 2500년 앞선 기원전 7,000년에 이미 신석기문화(요하 문명의 일부인 홍산(紅山) 문화가 1980년 라오닝성 요하지역에서 존재했음이 밝혀짐)가 유물들에 의해 발견되고 있고, 기원전 3,500년~ 3,000년(홍산 문화 후기)에는 이미 초기 국가형태가 갖추어졌음이 규명되었다고’ 한 사실에서 모계 신본주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지역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중동의 사막 지역에서 유목문화에 바탕을 둔 창조주 부계 유일신을 숭배한 부계 신본주의가 유대민족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이후 절대 존재로서 부계 유일신인 여호와의 명령으로 중동에 산재해 있었던 모계종교(여신종교)를 악마(사탄)로 간주하여 살육하거나 노예로 만들고 막대한 재산의 수탈을 정당화하면서 종교적 기반이 확충될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번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인간은 창조주인 부계 유일신이 만든 피조물 중의 피조물인 인류 최초의 여성인 하와가 절대 유일신을 의심하여 최초로 신성불가침의 죄를 지은 원죄 자로 명문화하고 있음에 따라 후손인 여성이 만든 모계 우월종교나, 조상신을 믿거나, 어떠한 종교든 간에 사탄(악마)으로 간주하면서, 부계 유일신을 믿도록 강제하고, 개종하는 것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한 종교였다.
하여 절대 존재의 계시로 만들어진 교리를 수행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생각한 결과,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유습은 생육과 번성이라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여성은 노예화되었으며, 평화로운 여신종교가 손쉽게 멸절케 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생명을 재창조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는 여성은 생태적으로 복지적임에 따라 모계사회에서는 존경받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야만적이거나, 생명 경시나, 전체주의적이며 조직적인 폭력 앞에서 무력하였다.
예를 들어 서구가 중세 암흑시대(3세기~13세기)가 막을 내리면서 이은 마녀사냥 시대(14세기~17세기)는 직관과 영감이 발달한 비범한 여성들은 마녀로서 화형이나 여타의 잔인한 고문과 함께 수십만 명이 처형되었음에도, 조직화할 수 없었으며 근대사회가 성립된 후에도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선거권을 획득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모계 공유제 사회에서는 평화로운 가운데 남녀가 평등하였지만, 전체주의 사회로써 부계 사유제 사회에서는 불평등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부계사회에서 등장한 기독교는 창조주의 피조물인 남성의 갈비뼈 한 조각으로 재창조된 여성 하와의 상징을 포괄 상속한 여성들에게 마치 죄를 지어 노예가 된 것처럼, 부계에 종속됨을 정당화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피조물로써 인간은 창조주 부계 유일신의 영광과 뜻을 구현해야 하는 의무를 지켜야 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둠에 따라 절대 존재를 기만한 여성을 혐오한 것이다. 물론 법을 제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여성은 소외되었고, 부계만의 일방적 결정으로 만들어진 사상이나, 제도로 인하여, 여성을 마녀로 몰아 죽인다고 하더라도 항변할 곳도 없는 가련한 처지로 전락하여 성장을 멈추게 되었다.
하여 절대 존재의 피조물인 인간을 출산하는 여성이 가장 먼저 피해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동양의 경우, 사람을 삼라만상의 주체로, 백성을 하늘로 생각함에 따라 아래로부터 존중되는 민본주의에서 모성의 구심력을 존중했다.
즉 사람은 천지 만물의 조화로 이루어진 주인공으로서,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사회였다. 다시 말해서 신의 명령이 아닌 인격이 지배하는 인본주의 사회임에 따라 행복한 인생을 위해 각자의 처지와 근기에 맞는 ‘수기치인’의 삶을 권장했던 사회였다. 하여 동양은 과장되지 않고,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진지한 사회로써, 사회협동의 결과로 현재의 자신이 있다고 하는 겸손한 삶을 살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서구기독교가 추구한 절대존재의 뜻을 세계화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는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후일 동양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즉 음양 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동양은 남녀가 비교적 균형을 이루고 있었지만, 강력한 배타적 부계 유일신 종교에 대한 경계로 생태적으로 부계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형성된 긴장감은 수많은 전쟁으로 이어졌고, 불안정한 사회가 되면서 동양 여성의 지위를 하락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서구기독교 제국은 모계를 존중하였던 몽골에서 출현한 13세기 초 징기스칸의 세계화로 암흑시대는 막을 내리면서 동양의 민본주의를 알게 되었고, 동양은 서구문물과 교류하면서 여성의 지위가 위축되기 시작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징기스칸의 세계화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타 종교를 존중한 가운데, 동서양의 문물교류는 상호 간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서양은 철학적 상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경험주의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어 학문과 과학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후 상업주의를 발달케 한 결과 만들어진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새로운 생활양식이 필요하게 되면서, 유발된 시민혁명으로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근대사회를 성립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결과물은 영국적 특성에 의한 근대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생성했던 영국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가 있다.
이는 상대주의 철학자로서 로크를 비롯해 경험주의 철학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과 아울러 1215년 근대헌법의 효시로 볼 수 있는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를 제정할 만큼,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오랜 투쟁의 역사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영국인의 민주적 기질에서 민주주의가 발전될 수 있었다.
물론 철학적 절대주의가 지배했던 서구대륙과 다른 상대주의로써 과학적이고 실증주의적인 태도는 동양의 민본주의와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종교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풍토에 맞게 독창적인 요소가 많아서 교황과 갈등도 많았던 역사적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종교 편에서 다시 한번 논변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산업혁명에 의한 생산양식의 변화는 여성의 사회참여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어서 시민혁명으로 근대사회가 성립되면서 자본주의 경제 제도가 정착되었지만, 남녀가 형식적으로는 대등한 관계로써 질적인 측면인 여성성을 고려하지 않는 자유경쟁을 전제함에 따라 여성은 여전히 불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독교적 가치를 근간으로 했던 서구사회가 여성을 오랫동안 극단적으로 무시하여 형성된 정서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하여 부계 우월종교의 이율배반적 모순을 비판하면서부터,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 하여 서구 여성이 오랫동안 소외된 원인이 부계 유일신 종교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계적 가치에서 발현된 동양의 민본주의를 세계화하고자 했던 징기스칸의 지배를 받은 대부분의 나라가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여권이 신장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남녀차별 문제는 문화적인 데서 연유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공유제로 물질적 기초를 보장된 사회에서 평등했음을 상기해볼 때, 분배양식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서구문화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의 절대 존재가 불확실하게 됨에 따라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과학적 확실성이 요구되었으며, 실존하는 개인의 확실성을 근간으로 한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성립하게 되었음에도, 기존하는 절대주의 풍토에서 유발된 이해관계의 첨예한 갈등이 제국주의로 이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근대 민주주의 사회로 변모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오랫동안 부계 신본주의에 의한 절대 봉건제 사회였기 때문에, 유발된 가치충돌로 인하여 형성된 아노미 현상 (가치부재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서구는 강력한 부계사회로써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여성을 소외하고, 착취를 정당화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극단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제국주의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인간을 절대 존재의 피조물로 믿는 서구는 조상신의 개념이 없으며, 출산을 원죄로 인한 형벌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것을 기피 하는 여성의 중도적인 상생의 성향을 무시하거나,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여성을 소외라는 극단적인 차별이 당연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부계 유일신의 배타성은 권력 양극화를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부패한 구시대는 퇴출이 되었지만, 자본주의가 무한소유를 정당화하여 부의 양극화를 유발하고 있음을 볼 때, 상극의 토양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서구적가치에서 발현된 자본주의가 무제한 소유를 정당화함에 따라 인간의 이기심을 극단적으로 배양하며 상극현상을 유발하는 것이다.
하여 상생을 중시하는 동양은 인간 상호 간과 아울러 대자연과 조화, 정신과 물질의 조화나, 남녀 간의 조화, 영육 간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 등 상생을 중시함에 따라 자본주의와 배치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화를 중시한 동양의 중용사상이 극단적이지 않고, 비대립적임에 따라 흐릿할지는 모르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스스로 인정하는 겸손과 양보로 보완하는 상생의 삶을 위한 사상임을 상기해 볼 때, ‘관계의 삶’을 중시하는 모민주의로 역사 발전해야 합리적이다.
아무튼 인류는 고도 물질문명을 이루었음에도, 오히려 대다수 남성의 삶은 과잉경쟁으로 고단하며, 여성의 삶도 마찬가지이며, 아울러 양성 모두가 상품화됨에 따라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으로써 사람의 도리를 다하기 힘든 시대로 변모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현대인이 문명의 이기로 순간적이나마 행복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대다수 시간을 힘들게 살고 있다.
즉 남의 떡이 크게 보인다는 속담처럼, 매체를 통해 동경하고 부러워할 만한 장면을 볼 때, 모든 사람이 자신만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고생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특히 오늘날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유발된 절대적 양극화로 물질적 기초가 취약한 사회적 약자나 대다수 여성의 자연권은 그림의 떡이 되고 있음을 상기해 볼 때, 인류의 이상인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게 된 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여 오늘날 천문학적인 경제 규모에 부합되는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한 온전한 민주주의로써, 모민주의 사회가 성립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오늘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혼재된 중도실용주의를 넘어, 민주주의 본질에 부합되는 모계 민주주의(모민주의)가 성립되어 부계와 모계가 각 각의 한 축으로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모계가 생활 정치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의 여성운동이 서구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과 부계주의 등을 답습하기보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녹색 생명운동과 더불어 복지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쟁을 치를 때 적에 대해 자유, 평등, 박애(관용)의 개념이 없다. 아울러 승자의 경우 우월적 지위로 도마 위에 있는 고기를 요리하듯, 마음먹은 대로 전쟁배상금이나, 기타의 명분 등으로 수탈이나 착취를 합리화시킬 수 있다.
물론 전쟁포로에 대한 처우나, 부상병치료 등을 규정하는 국제법도 있으며, 인간적 연민에 의한 시혜적인 것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통치의 목적에 부합되는 원칙에서 벗어난 일이 결코 없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승자는 패자를 항구적으로 종속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무능화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역사는 승자의 편의로 기술되고, 해석되어 간다. 즉 승자는 영구지배를 위해 공고화하는 과정으로써 신분제를 만들며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에도 패자는 패자로 존속되어 전쟁에 동원되거나, 착취를 위한 생산수단으로 강제한 것이다.
이는 가난의 대물림으로 죽지 못해 사는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현실 적응을 하기 위한 영성이 열리는 경우가 있거나, 대다수 패자는 공포로 인한 우울증이나, 반사회적인 성향으로 발전에 범죄자가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인격으로 발전한 경우,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을 흐린다는 격언처럼, 피해의 범위가 넓음에 따라 대다수 사람이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인간 상호 간에 불신이 만연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문제는 반사회적인 사람이 가족이나 사회에 대한 무책임과 증오심으로 인한 범죄나, 충돌의 결과는 인간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사회적 비용의 폭발적 증대로 인하여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한 복지비용이 감축된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을 증원하거나 관료나 전문직 종사자를 계속 고용해야 함에 따라 조세부담의 가중으로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의 복지나 재기를 위한 정부투자의 감소로 인하여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전체를 곤경에 빠트리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승자 스스로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양극화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승자독식 문화가 배타적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결과적으로 불안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원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성성을 근간으로 하는 부계사회에서 유래하고 있는 승리를 영구히 절대화하려는 승자독식 문화가 오늘날까지 부계 편향의 정치나,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모권사회가 인구가 적고, 여성성을 근간으로 한 사회로써, 천재지변이나, 맹수의 위협 등을 벗어나야 하기 위한 씨족 상호 간에 협력해야 할 상황임으로 승자독식 문화가 형성될 수 없었다. 하여 부계사회의 등장과 함께 형성된 승자독식 문화에 의해 배타적인 인간관계가 전쟁 등을 유발함에 따라 인간 불신과 비하의 원인이 되었으며, 이후 인간을 출산하는 여성이 성적 존재로 전락하게 한 원인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은 고릴라의 힘이나 맹수의 날카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으며, 스스로 창조한 유무형의 문화로 통제하고 발전하는 문화적 존재로서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내재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모계 유일신(대모신 마고)을 믿은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은 신의 후손으로서,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창조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모성애를 근간으로 성립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신의 후손으로서 인간은 스스로 선한 세계를 창조하고, 구현하기 위해 우수한 두뇌와 이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부계사회의 특징인 승자독식 문화가 공고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다수 사람은 폭력과 기아의 공포를 겪게 됨에 따라 불멸하는 신의 후손이 아닌 단지 머리 좋은 동물로 생각하게끔 되었다. 하여 승자독식 문화가 승리를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온갖 비인간적인 비열한 술수를 발달케 하였으며, 이를 합리화하며 정당화함에 따라 성악설을 긍정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을 신의 후손임을 긍정하는 성선설을 근본으로 하는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반면, 성악설이 주류를 이룬 부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인간을 출산하는 여성의 지위가 추락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태고로부터 있어 온 원형사회로써 모계사회는 남녀가 비교적 균형을 잘 이루고 있었지만, 부계사회가 되면서 남성이 주체가 되고 여성이 객체가 된 것이다. 이는 부족이 연합하는 과정에서 유발된 충돌로 인하여 성악설적인 사회가 되면서 복지를 위해 형성되어 있었던 여성의 네트워크 조직은 무너지면서 약화 되었기 때문이다.
하여 지구환경의 변화나, 인구증가와 잉여 생산 등으로 인하여 부계사회가 등장하면서 유발된 잦은 충돌과 분쟁으로 모계적 가치가 비주류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부계사회가 공고화되면서 여성에 대해서 열등, 교활, 이중인격, 소인배 등 온갖 성악설적인 인간관으로 일방적인 매도를 하면서, 차별을 합리화하였다.
이처럼 부계사회가 공고화하고부터, 승자로서 부계 자신의 정의로 여성을 폄하하고, 권리를 박탈하여 마치 전쟁포로처럼,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매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모성애의 지고함을 체험하여 신을 알게 되었으며, 품 안에서 양육되어 사람을 살 수 있는 기본적인 틀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열어 주었음에도, 모성애를 약점으로 생각한 이율배반적인 야만의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즉 여성으로 태어남을 벌로 알고 운명으로 생각하게 강제한 것이다. 하여 부계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압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숨죽이고 살아간 여성을 두고, 소인배와 같은 부류로 매도를 하였던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대다수 여성은 인간의 원형인 종교적 인간형임을 부계 우월종교에서 신자의 대부분을 여성이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여성이 인간의 종교적 심성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남성보다 인간적임을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태고부터 종교를 주도한 여제사장이 부계사회가 공고화된 후, 비록 남제사장으로 변모하여 여성을 격하하여 열등한 존재로 만들었음에도, 신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영혼 불멸로 여러 생의 삶을 산다고 믿은 모계 원형종교에서 파생된 부계 우월종교가 일회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써 변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종교 지향성은 태고로부터 오늘날까지 진리처럼, 변치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태생적으로 내재 된 인간의 종교적 심성과 부합되는 모계 원형종교에서 이차적으로 변모한 부계 우월종교는 부계사회가 공고화되면서 성립하여 여성을 격하하거나, 소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자로서 만족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계시대는 여성의 생태적 특성인 종교적, 복지적, 평화적, 분권적, 배려, 감수성 등의 성향은 인간의 여성성으로서 인간의 우수함을 규정하는 최고의 덕목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여성을 무능한 자로 정치참여를 제한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부계사회는 모성애가 인류의 구심력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여성을 정치에서 소외한 것을 생각해 볼 때, 부계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이 매우 힘든 삶을 살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직관이 발달한 모권사회는 단순한 생활과 더불어 다양성을 존중한 개방적인 사회인 까닭에 남녀가 평등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차별을 위한 가치설정이나 명분을 축적한 일이 없음에 따라 평화롭고 풍요한 생활을 하였으며, 부계사회가 공고화되고부터 닫힌 사회가 됨에 따라 계급투쟁으로 인한 빈곤한 삶을 살게 된 사실과 비교함으로써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부계 유일신 종교에서는 마치 여성을 인류의 원수처럼, 설정하여 모든 것을 앗아갔으며, 동양에서는 음을 근간으로 시작한 모계의 원시 음양론은 성질이 다른 음양은 대등하여 수평적임을 왜곡하여 음양은 양으로 시작하고, 양의 가치를 우월한 것처럼, 해석하여 가부장제를 정당화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인간의 구심력으로써 모성애를 무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신인류는 첨단시대를 맞이해서 직관이 발달한 모계사회가 행복 지수가 높은 문명을 이룩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면서 문명의 시원을 이룩한 여성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무한한 공급을 하는 대자연이 정교하며, 이를 이해하는 인간 또한 걸작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됨에 따라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생각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믿음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해혹복본’의 신념을 상기해 볼 때, 오늘날 인류는 우주의 창생과 지구의 생성과 생명체의 출현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실로 거대하면서 정교한 우주를 본격적으로 이해하게 된 오늘날 외면적으로 대우주를 탐구하여 우주개발을 해야 하는 과제와 더불어 소우주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여 순환·진보의 의문을 풀어가기 적합한 ‘존재의 삶’과 ‘관계의 삶’을 지향하는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이 보편화되어야 함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과거의 부계사회처럼 여성을 먹이사슬의 하위 체로 인식하여 분절되기보다, 남성의 동반자로서 여성이 인간의 연대성을 이어주는 복지를 전담하는 생활 정치가 보편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구촌 시대를 맞이한 인류가 수만 년에 걸쳐 수많은 사연으로 이룩한 문명의 결과물을 나누며, 과학기술의 발달이나, 우주 개척 등 공동으로 협동해야 할 과제가 많음에 따라 사회협동을 강화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제3차 산업혁명인 정보화시대를 맞이한 신인류는 무한축적을 정당화한 세계자본주의로 거대자본의 축적이 쉬워짐에 따라 형성되는 99대 1이라는 절대적 양극화 사회를 신인류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부계주의적인 기존의 분배양식은 1대 99라는 절대적 양극화로 위험성이 증명되었음에 따라, 종말을 고하고, 탈 양극화를 위한 모민주의 체제가 세계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구시대가 모든 것을 독점한 결과 유발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혁명으로 근대사회를 성립하게 한 것처럼, 무제한 소유를 허용하는 부계적 분배양식에서 ‘관계의 삶’을 위한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역사 발전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존재의 삶’을 살았던 과거 훌륭한 사람들처럼, 인류가 문명화되고, 진보할수록 ‘삶의 질 향상’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확산이 되고, 평균화되고자 하는 거대한 흐름의 시대적 요청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절대 존재로서 부계 유일신이 지배하는 서구 절대 봉건제 사회는 최초여성인 하와의 원죄로 인하여 풍요와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낙원에서 추방되어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음이 성경에 명문화되어 있음에 따라 여성의 소외는 정당화되었다.
이는 기독교문화의 토양에서 형성된 남녀불평등이 공고화되어 있음에 따라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연법사상이 발현되었음에도, 17~18세기까지도 여성의 초야권이 귀족에게 있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시민혁명 당시 여성해방을 위한 여권 선언은 근대사회가 성립된 후에도 유명무실했으며, 그 후 100년이 지난 20세기 초 여성들의 결사로 선거권을 쟁취한 사실이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여성성과 부합되는 소극적 복지국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비복지적인 신자유주의가 형성한 위험한 사회는 여권신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즉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절대적 양극화로 인한 폭발하는 갈등을 유발하여 위험한 사회가 형성되고 있음에 따라 여성에게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구는 근대사회가 성립된 후에도 제국주의가 등장하여 인간 존엄을 무색하게 했으며, 오늘날 복지축소를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원칙을 세계화하는 자체가 복지적인 여성에게 치명적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양극화현상으로 인한 복지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여성은 이중고를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여 복지를 지향하지 않는 체제는 여성을 무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환경적 측면에서나, 양극화 문제 등을 유발하여 위험한 사회로 퇴보하고 있음에 따라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로 진보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소극적 복지국가를 넘어 인류의 이상인 적극적 복지국가로 역사 발전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음에 따라 지구촌 시대를 사는 신인류의 행복한 인생을 위해 생태적으로 민주적·복지적인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지구촌 시대는 갈등의 폭증으로 인한 충돌을 원천적으로 감소케 하는 새로운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살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유발되는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 ‘신보수주의’라 하여 과거 여성처럼, 전통적인 가정을 권장하고 있지만, 비현실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주 시대의 전 단계인 지구촌 시대는 부계 편도의 종말로써 부계와 모계의 다른 성질을 각 각의 한 축으로 존중하며,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분배양식을 설정할 정치경제 제도가 세계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늘날 인류가 물질을 이루는 원소가 107개임을 발견하였으며, 이를 인위적으로 조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재창조 능력으로 만든 수많은 결과물을 만든 인간의 능력을 볼 때,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만큼,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의 사회협동으로 이룩한 위대한 결과물을 두고 볼 때,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무궁한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음에 따라 사람에 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첨단 과학기술은 인간의 내면에서 발현된 측면에서 볼 때, 모계사회가 믿었던 불멸하는 신의 후손으로서 인간임을 긍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인류로 ‘관계의 삶’을 위한 모계적 분배양식을 구현할 수 있는 체제가 세계화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무궁한 가능성의 근간이 되는 내면 탐구를 하며 ‘해혹복본’을 이루기 위해 절제와 나눔을 생활화했던 것은 참고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스스로 삶을 재창조하는 주체로 믿은 것이나, 오늘날 인간 스스로 첨단과학 시대를 만든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즉 직관이 발달한 모계사회가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인 까닭에 인간으로 출생하여 적선(積善)과 진보하기 위해 순환한다고 믿은 사실이나, 오늘날 인류의 첨단 과학문명은 주체로써 인간을 위한 선한 의도로 발전코자 하는 것이나, 모두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다.
참고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몸을 영혼의 그릇이라 생각하였으며, 인간의 영혼이 스스로 몸을 만들었다는 의미인, 육화되어 지구에 태어난 것으로 믿었다. 즉 지구에서 살기 적합한 몸을 갖고 생활하며, 여러 사정으로 영혼이 몸을 떠나야 할 경우, 인생에서 형성된 결과로 지구나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서 새로운 몸에 접속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신의 후손으로서 ‘나’라는 존재의 근원인 영혼은 불멸하며 시공이 없는 까닭에, 영혼이 지구에 국한한 것이 아니며, 어떠한 별에 머무르든, 어떠한 생명체에 결합하든, 어떠한 차원이든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하였음을, 본향으로 되돌아올 것을 권고한 절대 존재의 ‘해혹복본’유시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모계 유일신을 조상신으로 숭배하면서, 육화된 현재 인간을 가장 우선한, 마치 수행공동체처럼, ‘해혹복본’을 위한 나눔을 생활화한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오늘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이는 오늘날 부계주의의 심화로 위험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요 이상의 과잉경쟁과 과중한 부담을 주고 있는 자본주의 분배양식은 신인류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인류의 이상임에 따라,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역사 발전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지구촌 시대는 질적인 인생을 위해 완만한 성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대임에 따라, 양극화를 정당화하고, 복지축소를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로 세계화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임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는 부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부적합함을 알 수 있다.
부계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구약성경의 율법은 전형적인 부계주의로써 정치적, 지역적인 성격이 있지만, 신약은 모계적 가치인 사랑과 나눔의 실천을 진리로 믿은 모계 원형종교와 매우 흡사함에도, 오히려 부계주의의 공고화로 여성은 소외되고 혹독한 대우를 받았으며, 실천이 매우 어려웠던 사실에서 표리부동함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종교사회로써 삶의 궁극적 목적을 수행으로 알고 교리가 단순했지만, 종교가 부계사회에서는 정치를 위한 수단으로써 전락하면서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분제를 근간으로 한 부계사회가 차별로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종교가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신의 의지로 포장하여 차별의 논리를 만들고, 개종하지 않으면 미신을 믿는 미개인이라 하거나, 여성의 경우 무능력하니 지배를 당하여야 한다느니, 온갖 구실을 만들어 차별과 착취를 정당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태고로부터 인간의 양심과 배치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거나 종용하는 것을 악으로 생각하여, 선한 삶을 살기로 권고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과 배치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부계사회는 삶을 일회적으로 생각함에 따라 부계 혈통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만약에 투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명분으로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여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대다수 사람의 경우 낮은 지위에 있을 때는 인간 동료로서 연민에 의한 진보를 공감하지만, 높은 지위나 부를 이루게 되면 보수적으로 변모하여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은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필요가 없게 되어 잡아먹는다고 하는 ‘토사구팽’이나, 절대왕 조에서 자신이 만든 법이라 할지라도, 자신은 적용하지 않는 등의 역사적 경험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부계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는 표리부동하며 언행일치가 되지 않았던 까닭에 인간 상호 간에 불신이 형성되거나, 내심으로 서로 경시한 사회였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프랑스대혁명의 인권선언을 믿고 여성해방을 조건으로 참여하고 희생을 한 공로자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성공 후 권력의 배분에서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상은커녕 수많은 여성 정치지도자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파문을 당하는 등 토사구팽을 당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부계 우월주의 사회가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리는 식의 불공평함을 정당화하는 비열한 방법이 난무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 고통을 경험한 우리는 부계 우월주의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일제는 고대부터 일본의 속국이라는 억지 주장과 무능한 민족으로서 마땅히 우월한 일본인에 의해서 통치를 받아야 하며, 사대 한 민족으로서 자신들에게 사대를 당연하게 하라고 하며, 당쟁을 일삼는 양반은 무능하면서, 착취를 일삼는다고 하여 패망의 원인을 두고 서로에게 원망하게끔, 정치지도자와 민중을 이간질하는 식민사관으로 스스로 민족의 정체성을 비하하게끔 조장한 것이다.
또한 ‘조선인과 마른 명태는 두들겨 패야 맛이 난다’라고 하였던 것이 변모하여, 고대 한국으로부터 이어온 ‘안의 문화’를 대립적인 구도를 만들어 한민족 스스로 ‘여자는 마른 북어처럼 두드려야 한다’라고 하거나, 더불어 ‘엽전은 별수 없어’라고 하며 냉소적인 패배주의를 형성하여 자승자박의 상태로 자멸케 한 사실이다.
뿐만이 아니라, 한민족의 정체성인 ‘홍익인간’의 삶으로 인류에 실로 엄청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의 혹독함으로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르도록 일제는 한민족이 거짓을 일삼는 나약한 민족으로 만들어갔다.
이는 마치 자신이 연애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논리로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자신이 부도덕하면서 상대를 가르치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소위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라고 하는 우리 속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나라까지도 역사를 왜곡하고, 인종 차별하며 서로가 원망하는 구조를 유도하여 초토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공헌을 하는 것처럼, 이중적 부도덕으로써 총체적으로 사악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고조선의 ‘홍익인간사상’은 한민족의 정체성이라는 점과 고대 중국에서 고조선을 두고,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였던 사실을 볼 때, 태고로부터 문화민족으로써, 유구한 역사가 있는 도덕 국가였음을 부정하고자 하는 자체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대 중국의 통치이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예(禮)라고 한 사실로 볼 때, 제의를 주관한다는 의미가 있는 예(禮)를 중시했던 동이족의 정통성을 이은 홍익인간 한민족의 독특한 문화를 높이 평가한 사실을 일제가 애써 무시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동양에서 서구자본주의를 극단적인 경박한 것으로 절하였던 것과 달리, 동양 문화의 변방에 있었던 일본은 서구자본주의를 생존 양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역사에서 자국민을 오랫동안 억압하였듯이, 일제 식민지 당시 한민족에게도 상당한 억압을 하며 혹독했던 사실을 상기해 볼 때, 동서양이 구현하고자 했던 인간 존엄에 대해서 무관심한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하여 무력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닫힌 사회였던 전통 일본이 ‘일본제국주의’로 쉽게 변모하여 주변국을 식민지로 만든 것은 기아, 폭력을 이용한 착취기술과 공포통치로 인간의 도덕성을 무너뜨렸던 자신들의 풍토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의 서구에서는 식민지에 대해서 실익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제국주의를 유발한 초기자본주의의 잘못을 검토하는 상황에 있었음에도, 유럽을 답습하기 바빴던 것은 세계 흐름을 읽지 못한 무지에 의한 독선의 결과일 것이다.
하여 부계 우월주의가 만들어낸 초기자본주의가 인간에게 독이 되었던 사실을 한민족이 식민통치로 인한 혹독한 경험이 오늘날까지 잔재 되어 사회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여 근대사회가 되었음에도, 사랑보다 공포에 더많은 비중을 두는 부계적 가치에 충실했던 제국주의를 통해 부계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 속성에 충실하고자 하는 비복지적인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1대 99라는 절대적 양극화로 위험한 사회가 됨에 따라 부계적 가치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다. 하여 모계와 부계를 각 각의 한 축으로 제도화하여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모민주의’ 정치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모계적 가치를 내재한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기 위해 모계적 분배양식의 세계화를 위한 모민주의로 역사발전을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첫째, 인류의 문명을 열었던 모계사회를 이어 혈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사유제와 화폐경제로 진입하면서 풍요한 평화로운 삶은 막을 내렸다. 이로 인한 만성적인 재화의 부족을 겪게 됨에 따라, 신분제로 닫힌 사회가 되었고, 이는 생로병사의 중심에서 역할을 하였던 여성의 지위가 하락하게 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부계사회가 각박한 현실로 인하여 애써 영성을 거부하면서 영적 장치가 퇴보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부계적 가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사상이나, 제도 등으로 만들어진 위험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체제로써 모민주의가 성립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신인류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세계화를 위해 인간의 여성성이 배양되는 과정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둘째, 부계혈통주의와 전체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부계사회가 사회협동의 결과물을 노동보다 신분으로 얻는 것이 훨씬 크기 때문에, 신분제를 공고화하였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제정일치 사회로써 종교사회였던 반면, 부계사회가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신분제 강화의 수단으로, 종교가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예를 들어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인간은 주체임에 따라 순환·진보하는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했지만, 부계사회는 항구적 권력의 유지를 위해 자연신, 태양신이나, 인격신인 부계 유일신에 의해 권력을 부여받는다는 왕권신수설에서 인간이 객체가 되는 상반된 사실에서 상반됨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중기모계사회는 종교사회로써 여러 생을 산다고 생각함에 따라 비혈통주의사회였지만, 부계사회는 정치사회로써 일회적인 삶으로 생각함에 따라 부계혈통주의가 어떠한 것보다 우선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계혈통주의가 어떠한 체제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20세기 말 구소련의 경우 공산당이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간부들이나 부유층은 자본주의에 충실하면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라 부계적 가치가 주류를 이루는 세상에서는 어떠한 체제이든 권력 집중 현상이나, 소유 집중 현상 등 절대적 양극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공유제를 통해서 인간 존엄을 보장했던 것처럼, ‘천부인권’의 실질적 내용인 ‘천부소유권’을 보장할 수 있는 이성의 한계를 인정한 ‘소유상하한제’가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신인류에게 부합됨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모계사회가 살아서 사람으로, 죽어서 영혼으로 순환 진보하는 독자적인 ‘나’는 ‘너’와 같은 주체로써 내가 함께 이룩한 사회협동의 결과인 문화에 지배를 받으면서, 동시에 ‘천부소유권’이 내재가 되어있음을 생각한 것이다.
셋째, 닫힌 사회로써, 부계사회는 착취를 정당화한 신분제로 인하여 부패했으며, 타율적인 사회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열린 사회로써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는 신의 후손으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임에 따라 자율성을 중시했으며, 선한 목적을 위해 순환·진보한다고 믿은 사회였다.
이는 상대주의 사고방식인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로 되며, 영원한 강자도 없고 영원한 약자도 없다’고한 우리 격언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인간 상호 간의 우열은 있지만, 부계와 모계는 우열이 없음에 따라 시대적 요구에 따라, 부계적이든, 모계적 생활양식이든 적합한 것을 선택하여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양의 음양 철학은 각각 다른 성질인 음양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함에 따라 각 각의 지역별로 여망과 환경의 변화, 사회의 필요 등에 의해 누구든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 ‘人’자는 남녀가 서로 돕는 보완적인 관계임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존재의 명령으로 어느 하나가 종속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성악설적인 인간을 만들어가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넷째, 혈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부계사회에서는 남녀가 혼인할 경우, 여성의 능력이나 재산은 가부장에게 편입됨에 따라, 여성의 능력개발이나, 재산을 상속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한민족의 경우 여성이라 할지라도 성씨를 상속했을 뿐만 아니라, 공평한 상속을 한 사실을 최근 발견된 사대부 집안의 문집이나, 문서나, 기록 등으로 알 수 있음에 따라,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행 상속제도는 유증이 없는 한, 출가한 여성에게도 상속권이 있다. 물론 부계혈통주의의 정서에 의한 유증으로 상속을 결정하였을 경우, 여성에게 상속권이 없는 것은 문제로 남아 있다. 만약 ‘모민주의’ 분배양식이 성립한다면, 여성에게 최소상속이 보장될 것이다.
다섯째, 근대사회가 성립되었음에도, 부계 우월주의로 실질적으로 남녀평등이 구현되지 못하여 여성의 삶이 계속 불리하다면, 근본적으로 문제점이 있음을 인정하여 탈 부계주의적인 ‘모민주의’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남녀불평등으로 인하여 얻는 이득보다 차별로 인한 불이익이 훨씬 크다면, 부계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태도로 인류의 이상인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데 협력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관성이 없는 엘리트주의가 세상에 공헌하는 총량에 비해서 차별로 인하여, 대다수 사람이 불행하게 되었다면 퇴출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모신의 후손으로서 인간은 이타적 우수한 사람과 이기적 우월적인 사람과는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대로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준 신인(신선)과 성인군자들은 사람들 스스로 신의 후손임을 깨닫기를 설파하고, 언행일치로 몸소 실천하여 증명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적극적 봉사자로서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 등과 물심양면으로 인간답게 살도록 연구하는 철학자, 인문학자, 과학자, 우수 예체능 자 등은 우수한 사람들이지만, 우월주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엘리트라는 말은 우수하다는 의미이지만, 엘리트주의는 우수한 사람이 우월적 지위를 획득하여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고 사물을 처리하거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의미함에 따라 내면적인 부문이 취약하거나 도덕적으로 열등한 사람도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부계가 우수한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 자체가 우월한 것은 아니라고 볼 때, 부계 우월주의는 모순적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 R.사이먼은 엘리트주의가 일관성이 없음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실제로 엘리트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해될 수 있는 원리에 의거하여 그들의 차별을 정당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근본적 차별 원리의 자의성을 입증하는 셈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여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책임 있는 자리에 앉으면 안 된다’는 말보다 ‘여자는 아이를 기르는데 더 정서적으로 적합하기 때문에 책임 있는 자리에 앉으면 안 된다.’라는 말을 더 경청하게 된다.”라고 했다. (127) – 같은 책 104p
따라서 부계주의를 근간으로 발전한 결과로써 위험한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 탈 부계주의적인 사회로 변모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계주의는 인류의 위대한 문명과 첨단과학기술시대를 이룬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음에 따라, 현실적으로 부계주의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체제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떠한 목적지를 가야 하는 버스가 운전기사가 심장마비로 차량이 멈추었을 때, 승객 중에서 면허를 갖고 실제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경멸하는 범죄자였고, 한 사람은 면허만 있을 뿐 운전이 서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격자였을 경우, 현실적인 이유에 의해서 범죄자의 양심에 맡기고, 운전을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경우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기적 우월주의로 인해 인류의 대다수가 인종차별이나, 불행한 삶을 겪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꿀 수 없을 만큼, 부계주의가 오랫동안 의식을 지배하고 있음에 따라 모계의 지도력을 배양할 엄두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예 믿지도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버스가 운전경험자에 의해서 다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해야 하는 것처럼, 부계사회가 만든 자본주의도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임시방편임에 따라 언제나 인류의 삶에 적합한 새로운 사상이나 체제로 수정할 수 있는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아무튼 부계적 가치로 편향되어 발전한 결과로써, 무한소유의 탐욕을 정당화한 자본주의가 과당경쟁을 유발함에 따라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처럼, 여성의 삶이 고단하다. 특히 서구 여성은 동반자로서 인정받지 못했고, 오랫동안 극단적으로 폄하된 가혹한 삶에 의한 깊은 상처로 후유증이 남아 있는 가운데,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의 상품화로 소외된 여성이 수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그리고 여성이 더욱 잘할 수 있는 복지나, 양육, 건강 식단 등의 분야조차 소득을 위한 직업으로 전문화되고 산업화함에 따라, 대다수 여성은 가족 건강과 복지를 위한 생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로서 변모함에 따라 여성은 경제적인 면에서조차 남성에게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서구적가치인 자본주의가 세상의 주류를 이룸에 따라 각 지역의 문화나, 동양적 가치가 표류를 하게 되었다. 즉 직관(영감)이 발달한 모계사회를 이어 중기모계사회의 원시 음양 사상을 이은 음양 철학에 근거한 한의학이나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여 현재를 설계한 역학이나, 인간의 한계를 위로한 무교 등 행복한 인생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 배금주의로 인하여 쇠퇴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주의적인 음양 사상은 배타적이거나 극단적이지 않으며, 모순과 대립의 성질이 아닌 화합과 조화에 더 의미를 두어 성장보다 안정을 중시한 사상임에 따라, 지구촌 시대를 살아야 하는 신인류에게 적합할 것이다.
이는 음양 사상은 남녀가 질적으로 다른 주체로써 총량이 같으며, 상호 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 관계로 생각하여 존중과 조화를 중시함에 따라, 지구촌 시대에 구현해야 할 남녀평등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구촌 시대에서 요구되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해 부계와 모계가 각 각의 한 축으로 역할을 하는 생활 정치가 보편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신인류에게 적합한 새로운 정치경제 질서로써 부계적 가치와 모계적 가치와 균형을 이루는 ‘모민주의’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생활 정치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지구촌 시대는 탈 양극화, 관용(박애) 정신, 환경보호, 생명 존중, 만족할 줄 아는 태도, 삶의 질 향상 등이 충족되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위험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적이고, 복지적인 여성이 국제 NGO로써 생명 녹색운동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신인류의 이상인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여성이 생활 정치를 주도해야 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근대사회가 성립된 지 2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신장은 더디며, 현실에서 남성과 대등한 수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모권사회에서 모성이 분배의 중심이 된 원시공산제로 남녀평등을 이루었지만, 부권사회는 여성의 고유한 특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종교조차도, 부계 우월종교로 변모케 하여 남녀차별을 정당화한 세월이 오랫동안 문화로 공고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성립된 후, 20세기 초 소극적 복지국가로 발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비복지적인 신자유주의로 퇴행하고 있음을 상기해 볼 때, 부계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고,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모민주의’ 체제로 적극적 복지국가를 구현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부계와 모계가 상호 보완하는 주체로써, 여성 인권이 만족할만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새로운 체제인 모민주의로 진보해야 인류의 이상인 적극적 복지사회가 세계화된다는 뜻이다. 이를 생각하면서 여권신장을 논해보자.
중세유럽은 암흑기(3세기~13세기)를 벗어나면서 불확실성이 만연되어 14세기 르네상스(문예부흥 운동)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어서 탈기독교적인 세속적인 자연법사상이 새로운 인권개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동양의 인본주의와 달리, 피조물 사상에서 연유한 독특한 인본주의로써, 인간은 누구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기본권으로써 ‘천부인권’을 갖고 있음에 따라 인간은 존엄한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자연법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문화를 근간으로 한 서구사회는 여성을 남자의 갈비뼈 한 조각으로 만들었다고 격하하면서, 여성들은 소외되어 논외였지만, 이후 모든 인류를 포괄하는 시민혁명의 인권선언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사회가 성립됨에 따라 여성은 결사로써 여권신장이 가능케 된 중요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태고부터 음양 사상을 근간으로 한, 인본주의 전통이 있는 동양이 덕치주의로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한 것 보다, 서구의 자연법사상은 인간의 기본권을 법치주의로 뚜렷하게 보장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획기적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인본주의적 인간 존엄을 구현하기 위해 성립한 근대민주주의가 소극적 복지국가를 넘어 인류의 이상인 적극적 복지국가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유산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권신장이 근대사회의 성립으로 상당히 진전되었으며, 남녀평등은 실정법상의 권리로, 차별금지법으로 명문화되었다는 점과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 미래를 위한 발언권이나, 미래를 이끌어갈 권력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을 해석하는 기준으로써나, 모계적 분배양식을 구현하기 위한 체제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인류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것이다.
물론 서구의 기독교문화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환경에서 소외된 여성들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가진 훌륭한 남성들과 우수한 여성들의 오랜 투쟁의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모계가 엄연히 존재하며 태고로부터 인간을 재창조하면서 모성애로 인류의 구심력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여성을 무시하고, 객체로써 소외하여 엄청난 고통을 주었지만, 생태적으로 보살핌에 능한 슬기로운 모성은 인내를 미덕으로 생각하며,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한 결과, 위대한 선각자나 훌륭한 지식인 등을 탄생케 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써, 원만한 순환 진보와 행복한 인생을 위해 나눔(사랑, 박애, 자비)을 실천하는 삶에서 해답이 있음을 깨닫게 되어 몸소 실천하였던 것은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양육으로 성장한 성인(신인)들은 모성애를 통해 신의 본질을 이해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여 인간은 막연한 피조물이 아닌 실존하는 어머니의 모성애에 의해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기능을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있다고 한 로크적 국가에서 인류의 염원인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부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문화적 토양에서 형성된 관습이나 정서에 의해 무의식중에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는 만큼, 부계적 토양에서 성장한 남성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여 개인 우선의 소극적 권리(개인주의)를 보장하는 로크적 국가는 여성에게 불리하고, 양성평등 원칙을 지킬 수 없음에 따라 적극적 복지사회가 구현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인 법(성문법적 규칙, 약속 등)은 어떠한 면에서 여성 자신과 별로 상관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남녀평등을 법률로 성문화되었다고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음에 따라, 법의 실효성이 없음을 여성들이 인식하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근대 민주주의 사회와 배치되는 실질적 남녀불평등이 공고화되는 이유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들은 소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유발되는 권리충돌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손실이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 존엄을 구현하기 위해 성립한 근대사회와 자본주의 체제가 불 합치함에 따라 유발되는 불안정성으로 복지적인 여성이 힘들어진 결과이다. 이는 1789년 만민 평등한 인권선언을 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아 시민혁명이 성공했음에도, 여성의 선거권은 20세기 초에 여성의 결사로 획득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제2차 대전 후 소극적 복지사회가 구체화 되었지만, 오늘날 다시 자본주의 원칙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루게 되어 여성이 힘들게 된 사실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인류는 ‘천부인권’을 보장하는 자연권에 머물러 있지만,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적극적 자연권으로 자연권의 의미가 확대되어야 실질적인 남녀평등이 구현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부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직자들에 의해서 1860년대까지 노예제도의 정당화에 열을 올렸다는 사실과 더불어 배타적 인종차별을 통해서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은 차별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위로받았으며, 백인우월주의에 매달려 유색인종에게 가학적 행동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파괴한 사실로부터 자본주의가 인간을 극단적 경향으로 변모케 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속성으로 만들어진 제국주의로 인해 식민지나 자국민이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체제 붕괴를 우려한 나머지, 20세기 초에 소극적 복지국가를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만 명이 살상된 세계 제1차 대전을 치렀으며, 세계 제2차 대전 중 나치가 600만 이상의 유대인을 절대 유일신의 이름으로 학살이 자행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이전투구를 위해 끝없이 투쟁하는 성악설적인 인간성을 배양하는, 자본주의 생활양식으로 인권선언을 정치적 수사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과 배치되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이루어진 절대적 양극화, 생태계 파괴 등으로 인하여 위험한 사회가 형성됨에 따라 자본주의는 불행한 인생을 만드는 체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처럼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살기 위해 죽이는 연구를 한 결과로 볼 수 있는 핵과 재래식 무기 등은 지구를 몇 번씩이나 전멸케 할 수 있는 가공할 파괴력과 더불어 개인화기의 첨단화로 테러를 쉽게 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볼 때, 당장이라도 부계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고 새로운 길로써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가 세계화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류는 인간 상호 간에 행복한 인생을 도와주는 상생을 하기보다, 죽이기 위한 상극의 경쟁을 한 결과, 오늘날 예측 불능의 위기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은 자본주의를 진리처럼 믿고 자본주의적인 심성을 배양하고 있는 가운데, 막연한 희망과 자만심으로 가득함에 따라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즉 인간은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거나, 소비를 통해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장점만을 홍보함에 따라 오늘날 절대적 양극화로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여 생지옥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내면을 탐구하면서 외부를 이해하고자 했던, 모계사회가 개인 개인을 독립적인 주체로써 ‘상생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분배양식인 공유제를 한 사실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부계사회가 등장한 후, 오늘날까지 부계주의가 편향적으로 발전한 결과로써 자본주의 체제가 대량소비로 인한 절대적 양극화, 환경오염, 천재지변, 인간성 황폐화 등으로 회복 불능의 상태로 위험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소극적 자연권’을 보장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태도로 사회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무책임한 행동을 한다면, 위험한 사회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적 존재로서 인간은 개인성과 사회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함에도, 편향적일 때 위험한 사회가 됨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구의 자유주의(개인주의)를 두고, 민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며 조화를 중시한 동양에서는 무익무덕(無益無德)하다고 생각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무한소유욕을 정당화한 자본주의가 이기적 심성을 편향적으로 발달케 함에 따라 인간의 궁극적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사회성이 퇴보하여 인간성 황폐화가 만연되고 있다.
즉 과거 소규모 경제에서는 자본주의가 원만히 작동하지만, 오늘날처럼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천문학적인 규모에서는 대다수 인류가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음에 따라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는 위험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촌 시대는 천문학적 규모에 맞는 체제가 세계화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계적 분배양식으로 과학기술을 발달케 하여 우주 시대를 열면서 일상생활은 완만한 여유를 갖게 하는 모민주의가 적합할 것이다.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직관적으로 전체를 이해하였던 반면, 부계사회는 힘든 현실 세계를 통해 내면을 이해코자 하였다. 물론 부계사회는 내면과 외면을 분리하여 생각함에 따라 첫 단추의 오류처럼, 인간의 선한 본질의 근간이 되는 내면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 공기처럼, 보이지는 않아도 바람으로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를 들어 수박의 겉이 푸르다고 속까지 푸르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차원이 다르면 서로 볼 수 없고, 몸과 마음으로 느낄 뿐이라는 투명 인간의 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생존해 있을 때, 생태학적으로 형성된 기억과 사후의 타인이 이미지로 기억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며 겸손한 태도로 자신을 성찰하기를 집중한다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영역이다.
반면에 빙산의 일각인 유한한 물질세계를 통해서 무한한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는 척하는 경박한 예도 있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를 사는 신인류는 물질 일부로써 인간이 아닌 소우주로써 인간을 생각하고, 이에 합당한 생활양식으로 살아야 함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부계적 가치에서 발현된 자유주의 분배양식보다,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모계적 분배양식이 공고화되어 인류의 이상인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한 체제로 역사 발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포스트 자본주의로써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기 위한 모민주의 사회로 역사 발전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태적으로 민주적, 복지적인 여성에게 적합한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을 위해 정치 권력의 반 이상을 여성이 획득하기 위한 결사를 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인간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천부인권’의 내용인 ‘천부소유권’으로써 물적 기초를 보장하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체제를 통해 인간 존엄을 적극적으로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주의 국가로부터 억압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유주의가 물질 풍요로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것으로 믿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환경오염이나, 과소비, 양극화, 복지축소,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인간성 황폐화 등을 유발하면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의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인류의 이상인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기 위해 생태적으로 복지적이며, 민주적인 여성이 탈자유주의적인 온전한 민주주의로써, ‘모민주의’시대로 역사 발전한다.
물론 오늘날 민주적 생활양식이 보편화되었고, 인류의 이상으로써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 됨에 따라 가능한 것이다. 특히 존재의 삶을 지향하는 지구촌 시대와 어울리지 않은 부계적 분배양식을 강화함에 따라 유발되는 위험한 사회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관계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신인류에게 적합한 체제를 세계화해야 함에도, 1대 99라는 절대적 양극화를 유발하는 신자유주의로 ‘소유의 삶’을 강화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한 단계 더 진보한 단계인 인간의 민주성을 충족하게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의 세계화가 순리임에도 불구하고, 역사퇴보를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부계적 가치에서 발현된 자본주의가 이기적 심성을 배양한 결과,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모성의 구심력이 약화 됨에 따라 사회기초조직인 가족의 붕괴나, 도를 넘는 가족이기주의 등으로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라 근대사회가 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할지도, 경제적인 이유로 선언적 의미에 머무르게 함에 따라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제도가 성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가 ‘풍요 속에 빈곤’을 특징으로 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빈곤감을 느끼며 소비 욕구가 증대되는 만큼, 소비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내면세계보다, 형이하학적인 경제적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인간은 결코 행복한 삶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된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주의 심성을 배양하며 살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발 위험한 사회를 극복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계 편향의 정치에서 부계와 모계가 각각의 축으로 하는 생활 정치로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알고 있을지라도, 자본주의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며 욕구를 배양한 결과가 신자유주의로 나타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 스스로 신의 후손임을 믿음에 따라 인간을 재창조하는 모성을 존경했으며, 공유제 사회로써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여 외면을 이해하고자 한 직관이 발달한 사회로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즉 모권사회가 수만 년을 나름대로 풍요하고, 평화로운 생활의 질이 높은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모계적 분배양식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모성애를 근간으로 이루어진 모계사회에서 모계가 분배권을 가진 공유제 분배양식으로 행복 지수가 높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부계사회가 빙산의 일각인 가시적인 외면의 세계를 탐구하며 내면의 세계를 이해코자 한 사유제 사회로써, 수많은 전쟁으로 인한 곤궁한 인생을 행복 지수가 낮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수많은 전쟁을 치르게 하였으며, 남녀차별을 뚜렷하게 한 원인이 될 것이다. 이처럼 ‘존재의 삶’을 살았던 부계사회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높고, 평화로웠던 반면, 부계사회가 ‘소유의 삶’을 지향함으로써, 불안정한 사회가 되었으며, 여성의 지위가 추락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부계사회의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았던 것은 모계의 원시 음양론을 이은 동양의 음양론이 양이 우선하는 경향으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하거나, 부계 유일신에 의해 인간이 창조된 피조물로써 믿은 서구 부계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격하한 것이나, 더불어 고대 부계사회의 영웅탄생 설화는 모성의 잉태를 부정하고,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등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근대사회가 인간 존엄을 구현하기 위해 성립한 사회라면, 남녀가 평등했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처럼, 존재의 삶을 살 수 있는 체제가 세계화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모민주의’ 분배양식인 ‘소유상하한제’로 실질적 인권보장으로 남녀평등을 이루는 체제가 성립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내면세계를 탐구하여 인간을 신의 후손이라고 믿은 사실을 오늘날 첨단 과학기술 시대를 이룩한 사실로부터,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공유제가 인류에게 적합함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신의 후손으로 외면의 근원인 무궁한 내면세계를 인간의 본질로 믿은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인간관이 합리적임을 통찰력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년 전 어떤 유명 피자 회사에서 사람값의 연구를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사람의 값은 500억에 이른다고 한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인간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환산해본 후, 자본주의사회가 행복한 인생을 구현하기 힘든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즉 자본주의가 인간을 상품화하면서 인간은 스스로 싸구려로 만들고, 인생이 아닌 축생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2012년 현재 70억 세계인구가 살아가는 지구에서 현시가로 자본금 500억 규모의 회사가 불과 수천 개 정도임을 생각해본다면, 상생의 삶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모민주의’ 분배양식인 ‘소유상하한제’가 현실적 대안임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여성의 가치도 500억 이상이며 모성의 재창조 능력과 세상의 구심력으로써 모성애 등을 감안 하면 남성보다 배로 비싼 1,000억 정도 될 것이다.
하여 부계적 가치로써 자본주의가 세상의 대다수 사람을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하게 하고 있으며, 인간의 선한 심성과 소우주라는 높은 가치를 싸구려로 만들어간다는 사실 등을 깨달은 신인류는 부계주의의 종말을 선택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근대사회가 성립된 지 200년을 넘겼고, 첨단 과학기술 시대가 되었음에도, 사회적 약자나, 여성의 경우 인간 존엄의 당위성을 천명한 자연법사상이 절대적 양극화로 유명무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부계주의가 오랫동안 공고화되어 있음에 따라 근대정신인 자연법사상이 실효성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자연법사상에 충실하기 위해 부계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체제인 ‘모민주의’로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해야 함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순환·진보하는 영적 존재로 믿었던 것이나, 나눔의 실천을 궁극적 삶의 의미로 생각한 나눔의 수행으로 영적 진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도 충분하다.
하여 오늘날 인류가 사회적 약자(노약자, 장애인, 고아, 모자가정 등)를 돕고 개선하기 위한 복지주의의 공고화를 인류의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것 등을 상기해 볼 때, 역사발전의 방향성이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여 부계주의가 주류를 이룸에 따라 사회 진보의 방향이 부계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구심력으로써 모성애를 근간으로 하는 모계적 가치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계적 가치로써 복지주의를 공고화하는 체제를 성립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인간답게 살기 위해 타인의 삶을 인간답게 살도록 돕고자 발현된 모민주의가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만드는 위험한 사회를 통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한 인생은 소유를 위한 성장보다, ‘관계의 삶’을 통해 안정을 추구할 때, 다가온다는 사실을 인식한 결과이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에 적합한 모계적 분배양식을 보편적 가치로 세계화하기 위해 생태적으로 민주적이며, 복지적인 여성들이 ‘모민주의’체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계사회는 공유제로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했지만, 부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인류의 이상으로 남아 있다. 즉 태고로부터 인류는 적극적 복지사회를 염원한 결과가 모계 신본주의 사회로 나타났지만, 부계사회에서는 실현된 바가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부계사회가 생태적으로 민주적이고, 복지적인 여성의 정치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여 생태적으로 복지적인 여성이 적극적으로 정치참여를 할 수 있는 체제가 성립되어야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정치가 현실 세계에서 가치분배의 문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으로써 정치는 복지사회구현을 위한 합리적 분배양식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는 제정일치의 모계사회를 이은 부계사회는 정교가 분리되면서 정경 일체 사회가 되었으며, 근대사회에서 정치경제가 분리되었지만, 사실은 정치를 중심으로 종교와 경제가 연동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기 위한 새로운 민주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체제를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 분배권을 부계가 정치를 독점함에 따라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불능하게 되면서부터, 남성에게 종속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정치적으로 소외된 여성은 남성의 동반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쟁포로처럼, 무장 해제된 상태로써 성차별을 받았다.
또한 권력과 소유가 비례하는 부권사회가 공고화되면서 권력을 잃은 모계는 태고로부터 고유한 일이었던 종교에서도 퇴출이 되면서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재산과 권력을 획득할 수 없는 여성은 소유물로 전락 되었다.
즉 부계사회에서 만든 부계 우월종교에 의해서 여성의 본업이었던 종교에서 신자로만 있게 되면서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거나 여성 상호 간에 불신이 형성되는 사실 등은 무 권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태고로부터 이어진 원형종교로써 한민족의 무교가 모계 제사장으로 이어진 것은 예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주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하여 여성도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헤브라이즘(유대주의)이 세계화되기 수백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재창조하는 여성이 마땅히 정치 권력을 획득할 자격이 있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들은 남성의 동반자로서, 인간완성의 한 축으로써, 마땅히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야 함에도, 정치소외로 인한 굴욕과 더불어 성적 존재로 혹독한 삶을 살아야 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부계사회는 자연 친화적인 여성을 마치 자연물처럼, 대상(객체)으로 삼아 돈벌이의 수단이 되거나, 소모적인 존재로 상품화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튼 서구 여성들이 기독교문화로 인하여 오랫동안 소외되어 있었지만, 막스가 산업화로 노동과 임금을 교환하는 사회가 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이 없어지며 상품이 주체가 되고, 사람이 객체가 되어 소외된다고 주장함에 따라 여성은 새로운 소외를 다시 맞고 있다.
즉 자본주의사회가 인간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돈이 주체가 되고 인간은 객체로써 상품화함에 따라 부계사회가 등장한 후 오늘날까지 여성의 경우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인간을 소외하는 자본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한, 위험한 사회로 퇴보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서구사회의 뿌리 깊은 절대주의 풍토에서 만들어진 자본주의가 세계화하는 한 위험한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주체로써 인간을 스스로 객체로 전락하게 하는 ‘소유의 삶’을 부추기는 자본주의를 넘어 주체로써 ‘존재의 삶’을 살기를 권장하고, 물질적 기초를 보장하는 온전한 민주주의인 ‘모민주의’가 성립되어야 위험한 사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계주의에서 발현된 자유주의와 모계주의로써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만든 반쪽민주주의에서 온전한 민주주의로 진보한 ‘모민주의’를 세계화하는 데 어려움은 있다. 다시 말해서 지구촌 시대는 첨단 과학기술로 온전한 민주주의가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부계 일변도의 역사적 경험과 진보로 익숙해진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인생이 짧다고 생각함에 따라 변화로 인한 부담보다 반쪽민주주의에 적응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 생활에서 선거할 때마다, 누가 당선되어도 똑같다고 하는 푸념과 정치 무관심 현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전체주의 사회로써 부계사회는 변화할 때마다 불안정했으며, 변화한다 해도 여전히 부패를 반복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음에 따라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또한 포에르바하(L. Feuerbach, 1804-1872)는 사람들이 관념적 신을 만들어 인간 최고의 것을 신에게 양도하여 경배하면서 인간 문제를 신에게 위탁하는 것이 자기소외의 근원이라 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만든 신이 주체가 되고, 인간은 스스로 객체가 되어 신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이 종교집단에 소속되어 개인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아마도 유일신 체제의 서구사회가 스스로 피조물로써 평가 절하하면서부터 부패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유가 될 것이다. 반면에 인본주의 전통이 있는 동양은 인간을 소우주로 인정하여 주체로써 자율성을 강조하였다. 하여 동양의 천명사상은 스스로 자기완성을 위해 ‘수기치인’의 삶을 행복한 삶으로 생각한 사실에서 서구 부계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동양에서는 인간은 대모신의 후손으로 우주가 있기 전 있었던 존재로서, 육화되어 순환 진보한다고 믿은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을 이었다고 할지라도, 끓임이 없는 재생의 순환적 삶을 믿은 모계 고유의 제의권(祭儀權)을 박탈함과 동시에 ‘천부소유권’을 보장한 공유제를 사유제로 전환하면서, 성악설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전체주의 사회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아울러 동양의 부계사회는 민본주의로, 서구의 경우 자연법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사회를 만들었지만, 동양의 민본주의는 백성이 하늘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제로 분배는 불공평했으며, 서구의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이라고 했지만, 대다수 사람은 굶어 죽을 권리밖에 없었던 표리부동한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였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다.
하여 지구촌 시대를 맞이한 자연법사상은 ‘천부인권’의 내용으로써 ‘천부소유권’까지 확장하여 모계적 분배양식을 보편화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자연법사상에 충실한 ‘존재의 삶’을 위한 적극적 복지사회가 구현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한소유를 정당화하는 자본주의가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는 다이야몬드형 사회로 인간이 꿈꾸어왔던 풍요한 사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 것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 존엄을 구현코자 하는 자연법의 취지와 배치하는, 빌프레도 파레토의 법칙인 20대 80의 양극화 사회로 발전하여 오늘날은 1대 99의 절대적 양극화로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질과 정신 등 모든 면에서 파국이 예상된다. 다시 말헤서 지구촌 시대는 자본주의 분배양식으로 살아갈 수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아무튼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여성이 불행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볼 때, 절대적 양극화로 사회가 불안정하게 된다면, ‘남적론’처럼 내심 저항 의식이 배양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영육의 불균형을 초래함에 따라 형성된 부조화의 결과로 생명 경시 풍조의 만연과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으로 먹이사슬의 붕괴로 생명 체계에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실제로 과거의 인류가 재앙을 맞으면 경제 규모가 작은 사회로써 슬기롭게 대처했지만, 거대경제 규모가 된 오늘날 인간의 욕구가 급팽창하면서 만들어진 초대형재앙은 첨단 과학기술로도 감당 불능이라는 과학적 결론에 있다. 아울러 국가 존립의 정당성을 자연법사상의 구현에 있는 근대 기능 국가가 오늘날 절대적 양극화로 인해 기능이 상실함에 따라 위험한 사회로 공고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 한다면, 수정자본주의가 규정하는 소극적 복지로써 생활권보다, 적극적 복지를 위한 물질적 기초를 보장하는 모민주의의 ‘소유상하한제’가 세계화하는 것이 인류의 당면과제임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지구촌 시대가 요구하는 인류의 구심력으로써 모성성의 강화와 배양을 위한 체제로써 ‘모민주의’가 세계화되어야 하는 것은 시대 소명임을 이해할 수 있다.
Part II. Human Dignity Chapter 1. The Age of Human Dignity The dictionary…
Chapter 4. Conclusion We already knew that the poor Ok-soon, who was introduced earlier,…
Chapter 3. The happy life of a new generation 1. A history of human…
Chapter 2. Beyond capitalism According to the French Declaration of Human Rights, "the principle…
Part 6. The political philosophy of the mother …
Chapter 3. Neoliberalism 1. Neoliberalism contrary to the global zeitgeist 1.1 Capitalism t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