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중기모계사회가 궁금합니다.

제2장. 모계 신본주의 사회

 

일반적으로 여성 상호 간에 배타적인 면이 있는 것은, 정치로부터 소외된 여성이 과거의 혹독한 세월이 뼛속 깊이 유전화가 된 정서의 영향입니다. 즉 남녀평등을 이룬 모계사회와 달리 부계사회가 비대칭적으로 발전한 결과, 모래알과 같은 상태로 변모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체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부계사회가 이미 수천 년 동안 공고화되어 있음에 따라 여성이 조직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구조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없음을 암시하는 비유로써, 여성의 삶은 부초(浮草: 물에 떠다니는 꽃)와 같다고 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를 독점한 부계에서 여성을 폄하하고,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변명의 기회조차도 없었던 소외된 인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부계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에 따라 여성이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본주의의 근원이 되는 모계적 가치(모계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가치가 되면서 여권신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성 상호 간에 모래알이라는 편견은 사라질 것입니다. 물론 지구촌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여성이 주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정치 편에서 논변이 있을 것입니다.

 

 

1. 중기모계사회

 

1.1. 모계사회의 몰락

인간의 민주성(독립성)을 존중한 모권제가 부권제의 등장으로 철저히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만 년 동안 세계 각지의 소수민족이 문화로써 모계 유습이 아직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는 모계사회가 원만하고, 직관적이며, 자연 친화적인 사회임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권의 유습을 이은 사회가 근세까지도 존재했고, 아직도 세계 여러 곳에서 모계사회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모계적 가치가 부계적 가치로 흡수되어 작용이 되고 있음을 다음 인용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근대 독일 지방에 있었던 모계사회를 보자면, “지벤베르거의 치고이네트족과 오랜 세월 살다가 마침내 그중 한 종족의 데릴사위가 된 하인리히 풀 불리스로키 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치고이네르의 네 종족 중에서 박사가 같이 살았던 그 당시까지 아직 옛 법률을 그대로 지켰던 종족은 야사니와 챨레 두 종족이었는데 이들은 모계 계승에 따랐다고 한다.

다른 지방을 떠돌아다니던 치고이네르인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는 완전히 치고이네르식의 가족 조직을 갖춘 아내의 혈연 군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재산은 아내의 소유이고 따라서 아내 혈족의 것이다. 남편은 이방인일 뿐이다. 모계 계승의 법칙에 따라 자식들도 어머니 혈족의 일원이 된다.

심지어 독일에서 지금까지 계속 모권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이 있다. 「서부독일 리뷰」제2권에 따르면 (1902년 6월 10일 자) 베스트팔렌의 할테른 교구에서는 재산상속 시 여전히 태고의 씨족 모권제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식은 어머니로부터 상속을 받는다,’고 한다.” (13) (베벨 54P)

그리고 최근 중국의 원남성의 오지 루그호(호수)의 인근에서 모여 사는 모소족의 모권사회는 전 세계의 보편화된 가부장제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살아가고 있으며, 가장으로써 모성의 민주적 권위를 존중하고, 아울러 자연과 부합되는 생활을 함으로써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어머니가 중심이 된 대가족으로서 자식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모계씨족사회처럼 여성이 주도하는 절제된 성교를 통해서 남녀구분이 뚜렷한 가운데 진지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는 통찰력으로 이해했던 태고의 모계사회를 유지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운 것이며, 모계사회의 관습이나 가치관을 실증하고 있게 됨에 따라 인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례입니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13세 정도가 되면 성인식을 남녀가 함께하고, 옷으로 성별을 구별하고 있으며, 3년간 남녀의 상대를 찾고 만약 찾게 되면, 3년간 남성과 교제를 하고 합방을 원하면, 여성의 친정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여자는 싫은 남자가 집에 온다면 방문을 닫아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물욕이 없으며 자연과 인간, 인간 상호 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남녀상호간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태고의 고대 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고조선(삼조선)이 고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BC247-BC210)에 의해 약화 된 다음 기원전 108년경 한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승계한 삼한 중 하나인 고구려의 데릴사위제와 흡사합니다.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 해모수와 유화아씨가 야합하는 대목을 보면, 서민은 서민과 결혼해야 하나 남자는 반드시 여자의 부모에게 가서 폐백을 드리고 사위 됨을 세 번 고하고, 그 부모의 허락을 얻어 결혼하며, 결혼한 뒤에는 남자가 여자의 부모를 위하여 그 집에 머슴이 되어 3년간의 고역을 다하고 딴살림을 차려 자유의 가정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14) (서진영 27P)

하여 모계사회에서 남녀는 쌍무적인 관계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모권사회는 공유제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태생적으로 종교적 심성을 가진 문화적인 존재로서 인간에게 적합한 분배양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최근에 고고학자들은 모계사회를 풍요하고 행복 지수가 높은 사회라고 논증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 현대사회가 인류복지라는 과학기술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생명을 위협하는 가공할 무기체계나 과잉경쟁으로 환경오염, 자원 낭비로 인한 부존자원 고갈, 양극화 등으로 인한 형성된 위험한 사회와 비교됩니다.

하여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믿고, 인간의 개체성(민주성)을 존중하며, 대자연과 조화로웠던 모계사회는 대자연과 대립하는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서서히 쇠락하게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2. 모계 유일신사회

태고모계사회는 중기모계사회처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직관이 발달한 사회로써, 나름대로 풍부한 상상력과 초능력자가 많았던 사회였을 것입니다. 이는 몇 번의 간빙기와 자연재해를 극복한 후, 등장한 중기모계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 대모신의 후손으로 생각하면서 본향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한 사실에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태고로부터 전해지는 압축된 내용으로써 상징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중기모계사회의 마고(모계유일신) 시대를 이은 고대 한국(12환국, 단국檀國)이 동양과 서구 일부와 중동을 아우르는 대연합을 이룩하였다고 주장하는 사실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부도지’에 의하면, 선사시대였던 구석기 말 마고 시대를 이어 신석기인 약 8천 년 전에 있었던 환인천제(桓因天帝) 시대를 12 한국(환국, 단국)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상고사 시대인 환웅 시대는 약 6천 년 정도이며, 후기신석기와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함께했던 단군의 고조선 시대는 BC 2,333년에서 BC 108년까지입니다. 그리고 환인(桓因)은 환(桓)은 동글고 환하다(밝다)는 뜻과 원인(근본)의 뜻인 인(因)으로 볼 때, 마고 시대의 모계 신본주의 사회를 이은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몽고어에서 하늘을 뜻하는 탱그리(Tengri)와 단(檀)과 한자의 천(天, 텐)과 같으며 하나님이라는 의미인 환(桓)과 같은 의미로써, 단군(檀君)(Tangun)은 모계 하나님(유일신)을 숭배하는 제사장 중의 제사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토속신앙인 무교의 당골(무당, 여제사장)과 같은 뜻입니다. 따라서 고대 한국은 수만 년에 걸쳐 일관성 있게 모계 유일신을 숭배한 종교사회였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태고의 모계사회를 알 수 있는 중기모계사회로써,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인본주의 사회였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한국(단국)의 환웅 시대의 갑골문자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천부경’(天符經)(대우주와 연동된 소우주 인간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압축하여 알려주는 81자로 이루어진 경)이나, 태고의 모계 유일신 신앙은 인간의 종교적 심성이 모성애에 의해 촉매가 되어 발현된 원형종교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격신으로서 모계 유일신이나, 후손으로 조상신 등을 숭배하며 세상의 주체가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지역 외, 다른 지역에서는 자연신으로써 태양신이나, 대자연 속의 인간으로 생각한 자연을 숭배하는 토뎀 신앙 등 여러 종류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즉 모계사회가 인류문명의 초석을 다진 후, 등장한 신석기시대는 조상신으로서 중간 신의 등장과 함께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정령신앙(精靈信仰)인 애니미즘(Animism)이나, 다른 부족과 구분하기 위한 지역의 강한 동물인 곰이나 호랑이 등등으로 부족의 성격을 상징으로 한 토테미즘(Totemism) 등이 있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정교분리를 이룬 부계사회가 잦은 전쟁과 약탈 등으로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게 되면서 다양한 종교가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모계사회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가 됨에 따라 유발되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신앙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는 부계사회의 신앙체계가 관념적으로 변모한 사실을 종교학자 카모디의 다음 글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은 모든 인간 행위의 맥락이고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사냥, 농사, 길쌈, 금속, 세공과 같은 고대의 모든 노동은 성과 관련이 되어있다. 예를 들어 수렵인들은 아내가 임신했을 때에는 최소한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기도 한다. 이들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은 성스러운 것이고 동일한 것이라 믿는다.

임신은 성스러운 사건이기 때문에 임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사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대부분의 농경민들은 수확을 하기 전에 작물에게 용서를 빈다.” (15) (P.L 카모디, 강돈구 역, 여성과 종교, 서광사 1992. 25P)

이처럼 인간은 타고난 종교적 심성을 타고난 인간은 공존을 중시하는 사려 깊은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문명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대모신의 후손으로 인간은 다른 곳(본향, 다른 차원)인 지구에 불현듯 나타났다고 생각한 것을 받아 드릴 수 있습니다. 종교학자 카모디의 견해는,

“소규모사회인 고대사회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초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에 고대의 종교적 심성은 시간적으로 350만 년 정도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선사시대이든 현대든지 간에 이러한 사회는 기본적으로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살펴볼 고대 종교적 심성은 문자로 된 기록물을 거의 남겨 놓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가장 오래된 인간의 심성은 문자가 아니라, 말과 예술을 이용하였다. 모든 고고학적 유물들에서 인간의 문화적 발달을 예시해주는 종교적 상징물을 찾아볼 수 있다. … 고대인의 세계관은 매우 간결하기 때문에 고대 종교의 특징인 성(聖), 풍요, 다산, 신화와 제의 그리고 샤만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6) (같은 책 26P)

 

1.3. 순환·진보를 믿은 사회

인간은 태생적으로 종교적 심성이 있습니다. 즉 인간에게 내재 된 영적 감응 장치로 성스러움과 영적 교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모성은 태몽으로 영혼의 육화 과정에 신이 함께함을 알게 되고, 신생아는 모성을 통해서 신을 인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여 잉태, 출산, 양육하는 모성이 인간의 종교적 심성을 열게 하고, 배양하고 있음을 볼 때, 모성애가 인격신 종교의 뿌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한국의 유습을 이은 무교에서, 무당(여 제사장)이 접신을 할 때 어린애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두려움과 수많은 상처로 인해 모성애를 통해 신과 대화를 나누며 행복했던 모성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연령 퇴행의 심리학적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여 인간은 스스로 신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임에 따라 종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날에도 무교의 영적 교감은 실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적 체험이나 ‘전생론’ 등은 최근 심리학에서도 일부 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매일매일 꿈을 꾸면서 미래를 예측하거나 독특한 태몽 현상을 현대과학에서 섣불리 단정을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도 영감에 의해 발견이나 발명한 예가 무수히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여 제사장은 모계 유일신이 권고했던 ‘해혹복본’을 구현하기 위해 중심적인 역할을 함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을 이은 초기 신라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 중국의 사신들에 의해 전해졌음을 기록하고 있는, ‘일반여성들에게 상당한 존경을 표시하였으며 심지어 나이가 어린 여성에게도 나이 많은 남성들이 존칭을 쓰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으며 함부로 대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징벌을 받았다는‘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의 신궁은 대모신을 숭배하고, 조상신과 함께 문제를 풀거나, 국태민안을 제사하던 곳임에 따라 남성들은 접근할 수 없었던 성소로써 독립적이었다는 사실 등으로부터 여성의 지위가 상당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산모가 대모신, 중간 신 (조상 신)에게 제의를 한 신궁에서 훌륭한 인재의 잉태와 출산을 염원하였던 신라를 통해서 고대 한국의 모계 유습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효대사의 모친이 경산 진량에 있었던 신궁에서 원효대사를 낳고 며칠 있다가 돌아가셨다는 기록이 있음을 볼 때, 모성의 지위가 특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본향으로 되돌아오라는 모계 하나님의 권고인 ‘해혹복본’을 생각해 볼 때, 인간은 유물론적인 인간관으로서, 창조론이나, 진화론과는 다른 영적 존재로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종교 편에서 논변이 있을 것입니다.

 

 

2. 유일신 원형종교

 

모계사회에서 모성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가 제사장으로서 씨족을 대표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을 재창조하는 모성의 생태적 능력을 존중하였기 때문입니다. 모계사회가 단순하고, 직관이 발달한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성의 출산과 모성애는 아무리 흔한 것이라 할지라도 경이로운 것으로, 생각한 실존을 중시한 사회였습니다. 이는 출산을 매우 중시한 가운데 여아의 출산은 경사였으며, 모성을 존경하였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모성이 생명을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세계를 이해하면서 만들어진 지혜와 우월적 능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각 지역의 생존환경에 맞는, 실생활과 밀접한 조상신들과 교류한 고대 한국(단국)의 화백회의에 여 제사장들이 씨족의 대표로 회의에 참석하거나, 토론을 주도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계사회가 제정일치 사회이며 씨족 상호 간에 지식과 정보를 공유해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나눔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공유제를 한 모계사회는 종교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모계사회의 공유제는 박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종교적 심성에서 만들어진 분배양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부계사회가 인간이 아닌 제3자로써 태양신과 같은 자연신이나, 유일신 등 초월적인 신에 의해 정치적 권위를 부여받는다고 하는 왕권신수설과 상반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믿은 종교사회였다면, 부계사회는 신이 주체가 되고, 인간은 객체가 되는 전체주의 사회였다는 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인격신으로서 유일신 원형은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믿고 나눔을 강조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마고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1. 나눔을 위한 신앙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순환 진보하여 ‘해혹복본’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신념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어떤 유형의 종교든 나눔(자비, 사랑)을 근간으로 하며, 남녀노소 누구든 양심이 있으며, 영혼 불멸을 생각한다는 점 등으로부터 그들의 신념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부계사회의 다양한 종교에서도 수양 정도나, 체화된 습속이나, 전통 등에 따른 다양한 방식의 나눔을 통해 영적 성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앞의 사실을 긍정할 수 있습니다. 모계사회에서 나눔이 삶의 궁극적 목적임을 깨달은 결과입니다.

하여 실천하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나눔을 진리로 알고 실천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행복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폭주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실천이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으로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실천을 중시한다는 점과 같습니다.

즉 종교가 다양한 방식의 나눔을 설파할지라도, 신자나 지도자가 실천하지 않는다면, 진리가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나눔(사랑, 자비)을 궁극적 삶의 목적으로 생활화한 종교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종교적 심성과 부합되는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씨족 별로 대모신(마고삼신)의 후손인 모계신, 부계신 등의 조상신을 믿거나 다양한 신앙이 허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어떠한 방식이든 나눔을 실천하고 체험하여 본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해혹복본’의 권고는 지역 사정이나 개인차에 따라 적합한 수호신을 허용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여 대모신의 후손으로서 인간은 주체로써 우선적이며, 중간 신(조상신)은 객체로써 수호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중기모계사회에서 현존하는 ‘나’는 과거로부터 온 ‘나’로 믿고, 가족 단위로 진보하며, 현재 함께 한다는 순환적 세계관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모신의 후손이라 생각한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율적인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는 격언이나, 한민족의 토속신앙을 재구성한 동학의 만민평등사상인 ‘사람이 곧 하느님이다’라고 하는 ‘인내천’(人內天)사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가족 중 먼저 죽은 사람이 어느 정도 지나서 재생하여 특정한 곳(원했던 곳)에 살면서 과거의 가족과 재구성하며 진보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족에게 헌신하는 행복 지수가 높은 사회였습니다. 하여 모계 유일신 신앙은 나눔으로 복된 삶을 축원한 신앙으로써, 현재의 삶에 충실한 신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재의 선한 삶이 미래의 원만한 순환과 진보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신앙입니다. 이는 부계 유일신 종교가 관념적이고 배타적이며 중앙집권적이지만, 반면에 모계 유일신 종교는 직관적이고 단순하며 개인적이고 분권적인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계 유일신 신앙은 비정치적(비조직적)이고 인간의 고된 삶을 나눔으로 위로한 생활 종교였습니다. 모계 유일신 마고 하나님(대모신)의 후손인, 인간과 직접 교류하는 여러 중간신 (조상신)을 숭배하였습니다. 이는 전통 한국의 무교와 흡사합니다.

하여 인류가 종교와 정치, 경제의 삼각관계에 의해서 여러 형태의 체제가 성립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종교적 심성에서 만들어지는 박애를 배양하는 체제로 역사 발전되는 것이, 순리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순환하는 개인의 진보를 위해 현실 세계에 있을 때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모계 유일신의 후손인 인간은 영육이 교차하면서 진보한다고 믿음에 따라 나눔 자체를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을 제도화한 분배양식이 공유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불멸하는 영혼(에너지)이 모성을 통해서 육화된다고 믿었으며, 이를 점지하는 대모신(삼신할매)의 은혜에 대한 고마움을 구체화한 것이 고대 한국의 ‘곰 신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카모디의 글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대인의 풍요 다산에 대한 관념은 죽음 뒤의 삶에 관심과도 연결된다. 중국의 북경 근처에 있는 용골산 동굴에서 50만 년 전경에 만들어진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 무덤에서 그 당시의 사람들이 죽음 뒤의 삶을 갈망하였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마치 무덤이 자궁인 양 죽은 사람이 태아의 자세를 취한 상태로 묻혀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고대인들 중에는 죽은 뒤에도 ‘어떤 것’ 존재한다는 관념을 통해서 죽음의 당혹감을 극복하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 (같은 책 27P)

이처럼 모성을 통해 재창조된 인간은 재생을 위해, 무덤의 모양이 모성의 자궁과 같은 형태를 취했거나,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풍수지리 사상에서 명당의 위치를 자궁의 모양과 흡사한 지세에 두고 있다는 사실 등에서 모계사회의 유습이 이어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빙산의 일각으로써, 가시적인 세계와 미지의 무한한 비가시적인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모성애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모성애를 근간으로 하는 신앙이 나눔으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2.2. 태몽으로 인식한 절대 존재

태고의 모계사회가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성의 태몽을 통해 알게 된 모계 하나님(삼신)에 대한 상상력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지구에서 삶을 체험한 후 영적 존재로서 사람은 본향으로 반드시 되돌아오라는 마고 유일신의 유지인 ‘해혹복본’을 수증(修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수많은 별에서 재생하며, 끝없는 순환 진보를 하여 자신의 본향(북두칠성)으로 되돌아가기를 염원한 사회였습니다. 끝없는 창작 욕구와 완성을 위해 매진하는 예술 활동처럼, 인간으로 실존할 때마다 자신을 연마하여 본향으로 되돌아갈 자격을 갖기 위해 나눔을 실천한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행위의 결과는 다른 생명체로 되거나, 다양한 별(행성)에서 재생되거나, 북두칠성의 본향으로 간다는 등을 생각했습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공유제는 연속적 재생을 위한 분배양식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현재의 어려움이 인간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집단적인 화해의 제의를 통해 삶을 재창조하였습니다. 이는 고대 한국에서 각 지역의 문물을 교환하기 위해, 10년에 한 번씩 신시(神市)를 열었고, 지역별로 일 년에 한 번씩 신시(神市)가 열렸던 사실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을 이은 전통 한국의 무교에서 유사한 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정초에 혼돈, 불합리, 무질서, 모순 등을 의미하는 카오스적인 상태를 소거하기 위한 행위로써 종이나 물건 등을 태워 재로 만드는 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무지로 인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준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원한의 증오심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는 인간성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한 치유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여 재창조를 의미하는 새 질서를 위해 매년 초에 반복하고 있음을 볼 때,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관용적인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인용문에서 앞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실계는 공간성에 의한 형질 존재, 곧 공간 존재가 존속되고 있는 세계이지만 이 공간 존재는 시간 조건 위에서 있는 시한성을 안고 있어서 현실계에는 모든 존재(만물)는 존재 조건인 공간과 시간의 조건변화에 따라 존재는 지속과 단절, 유와 무, 생과 사, 풍요와 빈곤의 변화를 가져온다.

혼돈과 어둠뿐인 ‘카오스’에서 하늘과 땅이라는 우주공간이 시작되고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태초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래서 공간과 시간의 질서가 시작되는 ‘코스모스’의 우주가 시작된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코스모스’의 유계(현실)에 존재하는 인간도 ‘코스모스’의 존재 조건인 공간과 시간의 제약 속에서 생의 변화가 계속된다.

‘코스모스’의 소계 시간은 이렇게 생명을 영원으로 지속시키지 못하는 순간세계에 비해 ‘카오스’는 태초가 시작되기 그 이전인 무공간 무 시간의 영속계이다. 그래서 ‘카오스’는 ‘코스모스’의 존재 공간과 시간 이전의 세계임으로 세속의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영적 존재의 세계인 동시에 ‘코스모스’의 근원이 된다. ……

‘카오스’로의 회귀가 세속적 죽음인 데 반하여 ‘코스모스’로의 환원은 세속으로의 재생을 의미하게 된다. 이 재생은 죽음(신병)을 통해 존재의 근원인 ‘카오스’로 되돌아가 여기서 영원 존재의 실재 능력을 체득한 신성적 의미의 신권자로 다시 태어나 무당이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18) (김태곤. 무속과 영의 세계. 한울 1993. 26P)

또 하나의 예로써 카모디는 고대인들의 재창조 슬기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류를 성스러운 우주에 통합시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고대의 제의에서 창조는 가장 중요한 신화적 주체이기 때문에 종교학자들은 다양한 창조 신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종교학자들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 외에도, 원초적인 바다속에 들어가서 땅을 들어 올리는 행위, 동물의 희생, 우주적인 알, 성적교섭, 인간 몸의 해체, 수음 등을 통한 창조에 대한 신화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창조행위를 재현하는 제의도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바느질, 대장일, 씨 뿌리기 또는 집을 짓는 것과 같은 행위들도 창조 신화의 모델을 따를 뿐만 아니라, 신년 축제에서는 창조 신화가 낭송되고 재현하기도 한다.

왜냐면 해마다 전체우주는 다음 해를 위해서 재창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신년 축제에서 심리적으로 세계에 무질서를 부여하였다가 다시 질서를 부여한다.” (19) (PL 카모디 31P)

 

2.3. 무형문화재로 남은 원형종교

모계씨족사회는 전통 한국의 마을공동체에 솟대와 성황당(서낭당)이 있는 풍경과 흡사할 것입니다. 하여 전통 한국의 성황당은 신당으로써 동제를 지냈으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였던 성소로써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을 이은 유서 깊은 곳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세계의 고인돌이 한반도에 반 이상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큰 산의 깊은 산중에 풍수지리적으로도 명당인 곳에 수도처가 있었으며, 후일 불교의 사찰에 융합되어 산신당(각)으로 변화된 사실에서도 이해됩니다. 앞의 사실은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산 중에 여 제사장과 사제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행차할 때는 마치 제왕의 행렬처럼, 화려하고 웅장하였으며, 특정한 곳에서 제의를 행사했다고 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수도 과정에서 이룬 영적 체험을 음악이나, 무용으로 표현하거나, 삶을 압축하여 상징화한 미술로 전달하거나, 강인한 체력을 만드는 놀이문화로 건강한 정신을 만드는 등의 예체능 활동을 한 사실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예체능을 통해 어떠한 경지에 이르거나, 종교적 신비체험은 이어지고 있으며, 세계 각 지역에서 지금도 선사시대의 원형신앙을 이해할 수 있는 유적이나, 무형문화재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로병사의 통과의례를 부족 단위나 씨족 단위 등에서 마치 연극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처럼, 여 제사장과 사제들은 압축된 언어로 표현되고 전달되었습니다. 즉 종합예술을 통해 삶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여 제사장은 태교 음악, 출산 의식, 돌잔치,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등 인생의 고비마다 예술적 표현과 의식을 통해 삶을 위로하며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신당(神堂)에서 펼쳐지는 제의 행사에서 군중들은 영적 체험을 한 후, 자신이 갖고 온 것을 나누고, 본향으로 되돌아가기를 염원했습니다. 하여 제례를 통해 인간의 본향을 표현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인식의 경우에 남성과 여성의 지위나 역할에서 남성은 육체적 고통을 여성은 정신적 부분을 강조하였던 사실에서 모성이 전략적이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카모디의 글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성을 위한 성년식은 일반적으로 고통을 강조한다. 남성에 비해 성숙 과정이 좀 더 극적인 여성을 위한 성년식은 그 사회가 원하는 대로 여성이 갖추어야 할 준비를 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

이 두 경우 성년식에서 성인이 되려는 사람은 성(聖)에 대한 지식, 부족 신의 성격 그리고 성인으로써 갖추어야 할 조건들에 대해서 배운다. 출산 의식,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에서도 모든 부족 구성원들은 죽음에의 순례인 삶의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성스러움과 자신들을 다시 재결합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20) (같은 책 32P)

아무튼 고조선 시대에 ‘소도’(솟대를 설치한 신성한 곳)라고도 했던 신당(성황당)에서 무교의 여 제사장(오늘날 무당)이 제의를 주관하고, 공동체의 안녕과 개인들의 ‘생로병사’의 원만한 통과의례를 위한 신성한 지역으로서 씨족 회의를 하였던 곳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한국은 씨족의 여 제사장을 비범한 실력자라는 의미인 선비라고 했으며, 제의나, 회의장으로써 ‘소도’(신당)라고 했습니다. 이는 중기모계사회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무교나, 마고 삼신할미 설화 등을 뒷받침하는 ‘부도지’나 ‘한단고기’ ‘삼국사기’ 등의 상고사에서 전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삼신할미는 부성과 모성의 태몽에서 실제로 체험되고 있음에 따라 ‘해혹복본’(解惑複本) 신념을 긍정할 수 있는 상징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육화를 점지하는 마고 삼신이 늘 함께한다는 사실을 태몽으로 실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이 체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재한다는 사실을 긍정하고 있습니다. 하여 비록 고대 한국의 삼신신앙이 저변에서 체험되고, 생활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계의 교리종교처럼 조직화 되지 못하여 격하되었지만,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인 순환 진보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됨에 따라 과학적으로 규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부계 유일신 종교의 영향으로 삼신할미를 마귀할멈이나, 적그리스도로서, 샤머니즘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 한민족의 삼신신앙 체험이나, 원형종교로써 무교 등을 부정한다면, 종교 자체가 허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성애로 시작된 원본 종교에서 변모한 부계 우월종교의 시각에서는 삼신 사상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인간 상호 간에 나눔을 생활화하여 다 같이 ‘해혹복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눔을 실천한 단순한 신앙이었던 반면, 부계 우월종교가 관념적이고, 복잡한 율법과 배타적인 것을 ‘조직원리’로 하기 때문입니다.

 

 

3. 박애가 생활화된 사회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지구를 오래전부터 열악한 곳으로 생각하였으며, 탐욕을 극복하는 수행지로 믿었습니다. 지구를 마치 수련장이나 훈련소처럼 생각한 이유입니다. 이는 동물을 섭취할 때 간단한 희생제를 치렀던 사실로부터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계사회가 인간이 동물을 마음대로 살육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동물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앞의 사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모계사회가 생명의 순환·진보를 믿음에 따라 모든 생명체에 명복을 빌어준 반면, 부계사회는 1회 적인 삶을 생각함에 따라 동물을 전리품으로 생각하며 필요 이상의 살육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동물을 음식으로 섭취할 때 희생제를 치른 사실이나, 인간은 순환 진보를 반복하여 신이 된다고 믿었던 사실 등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선이 되거나, 인간으로 반복하거나, 동물에서 사람으로 되거나, 소수의 사람 중에 가축으로 퇴보한다고 하였던 고대 설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는 종교 편에서 다시 한번 논변이 있을 것입니다.

 

3.1. 인본주의 사고

오늘날 빛을 발하고 있는 태양은 이미 수억 년 전의 태양으로써 지구와 함께 항상 규칙적으로 움직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항상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태양과 달, 별 지구가 규칙적으로 운행하는 가운데, 동물 역시 규칙적이며 정해진 환경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상황에 따라서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재창조 능력으로 생존환경이 변화할 때, 인류는 여러 유형의 사회를 창조하였습니다. 하여 인간은 행복한 인생을 위한 합리적인 규범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문화적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한한 상상력과 도구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재창조할 수 있는 영적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구의 자연증가와 잉여물 등으로 인한 사회적환경의 변화로 부계사회가 등장한 사실에서 긍정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스스로 설정한 가치에 복종하고, 적응하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목민 생활을 하였던 초기 모권사회가 풍요한 자연환경에서 내면세계의 탐구와 자유로운 여행과 교류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만큼 역량이 축적된 후 생성된 중기 모권사회가 농경 정착이라는 농업혁명을 일으킨 사실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모계 유습이 남아 있었던 고대 희랍에서 상대주의(인본주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정치적) 동물이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즉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규율하고, 결정하는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 사회가 정당함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논변한 데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관계로 영구적으로 이토록 지배자가 같은 시민에 대하여 일시나마 우위에 서려고 하는 그러한 관계에 있다. 일방(一方) 가장의 그의 자식에 대한 지배는 전제적이며 이것은 사랑과 연령에서 오는 존경의 덕으로 일종의 전제 군주적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21) (아리스토텔레스, 이병길 최옥수역, 정치학, 박영사 1977 44p)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남녀관계를 여성이 계급투쟁에서 패한 존재가 되면서 가부장제가 성립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남녀의 사회적 지위가 절대주의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지위가 결정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본주의(상대주의)는 인간이 스스로 창조하고 결정할 수 있는 문화적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여 철학적 상대주의와 동양의 음양 사상은 인본주의라는 점에서 같지만, 상대주의는 대립적이지만 음양주의는 상보적(相補的)인 점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동양의 음양 철학은 경험주의로써 귀납적임에 따라 동시대의 고대 희랍의 철학적 상대주의라는 점은 같습니다. 하지만 서구철학은 부분적이며 분석적이라면, 동양철학은 전체적이고 입체적인 면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음양은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낮과 밤, 부드러움과 강함, 여성과 남성의 생태적 특징, 자석의 N극과 S극, 안(위)과 밖(아래), 구심력과 원심력, 내면과 외면, 생과 사 등 전혀 다른 상반된 성질이면서 서로 보완하며 하나를 이루고 순환한다고 하였습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BC 453~221) 음양설과 천지의 도라고 하며 삶에 필요한 기본요소인 수, 화, 목, 금, 토(水, 火, 木, 金, 土)로 상생상극을 논하여 구체화한 오행설과 합쳐서 진보한 것이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동양의 기본사상으로써 주역은 동주(東周)시대(BC 771)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역경(易經)입니다.

그리고 주역은 후일 전한의 동중서에 의해 유교와 결합하여 구체화 되었습니다. 이어서 송·명대의 주희(AD 1130-1200)가 유교와 습합하여 만든 역경이 주역(周易)입니다. 주역은 사서삼경(四書三經) 가운데 중심입니다. 그리고 주역은 태극, 음양, 사상(四象), 팔괘, 대성괘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모계 신본주의 사회를 알 수 있는 ‘부도지’(符都誌)와 비교하면, 태극은 하나로써 시작과 끝을 이루는 전체이며, 우주 창생과 순환의 원리이기도 하며, 의인화한 것은 마고(麻姑)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극이 음양으로 나뉘었다고 하는 것은,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 없이 궁희(穹姬) 소희(巢姬)를 낳았다고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상(四象)은 음양에서 태양, 소음, 소양, 태음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는 황궁(黃穹), 청궁(靑穹), 백소(白巢), 흑소(黑巢)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팔괘는 사상이 음양으로 나뉘어 삼라만상 생성의 근간으로 생각합니다. 각각의 두 천인(天人) 두 천녀(天女)를 합하여 모두 8명이었습니다.

주역의 본문인 대성괘는 64괘로써 1에서 30 괘와 그리고 31에서 64괘까지 나뉘어 있습니다. 전자는 우주의 선천적인 생성원리를 말하며 후자는 인간의 후천적인 변화와 순환과정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4 천인과 4 천녀가 결혼하여 각각 3남 3녀를 낳아 9황 64민은 모두 이들의 후손이다. 이러한 것은 ‘부도지’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후일 ‘주역’이 먼저인지 ‘부도지’가 먼저인지는 뚜렷이 구분할 수 없으나,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천지창조를 전하고 있는 ‘부도지’의 내용으로 볼 때, 주역보다 수천 년을 앞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나라(BC 11C~ 770) 당시에 이미 부계사회가 공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부도지’에서 모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도지’는 마고, 궁희, 소희가 삼신으로서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후 삼위일체의 삼신 사상(三神思想)이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 사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이는 고조선의 성립과정에서 환웅, 웅녀, 단군으로 천부신, 지모신, 신인(진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여 주역이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원시 음양 사상이나 유습 등을 원용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역에서 인간이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의 주체가 되어 음양 교차로 순환하며 변화하는 삼라만상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한 것이나, ‘부도지’에서 모계 유일신의 후손인 인간이 하나님의 유시인 ‘해혹복본’을 이루는 주체라 한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아울러 우주와 인간이 연동되어 있다고 생각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순환 진보를 위해 조화로운 삶을 중시한 점에서도 같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면 관계상 이 정도로 하고, 종교 편에서 다시 한번 구체적 논변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고대 희랍의 상대주의 철학은 남녀를 이분법적, 대립적인 관계로 생각하여 힘이 있으면 여성이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반면에 동양의 음양 철학은 음양이 역할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 값이 같음에 따라 남녀가 상보적인 상생의 관계로 생각하였으며, 조화로운 삶을 위해 필요에 따라 여성이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동양은 음양의 균형을 이루는 중용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사람의 도리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남녀노소의 조화와 천지 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삶과 배치되는 의도적으로 극단화하여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을 악으로 간주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동양의 음양 사상은 순환 진보하면서 재생을 연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생물학적 인간을 이해할 뿐, 스스로 영적 존재임을 알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첨단 과학기술 사회를 만들었음에도,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단지 머리 좋은 동물로 격하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형성된 생물학적 기억은 홀로그램처럼 입체적으로 축적됨에 따라 순환 진보로서 재생할지라도, 생물학적 기억을 갖고서 환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근대사회를 만든 서구가 실증주의에 의한 학문의 발달과 획기적인 과학기술문명을 이룩한 결과로써 홀로그램 기억방식이 만들어짐에 따라 재생에 대한 설득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3.2. 나눔을 실천한 열린 사회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종교사회로써 공유제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후일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닫힌 사회가 됨에 따라 경계를 두게 되었고, 지역별로 독특한 문화(생활양식)가 형성되면서 공유제는 퇴출이 되었습니다.

즉 사회질서를 위한 윤리나 도덕률을 첨부하지 않는 나눔이 일상화된 종교사회에서 정치사회로 변모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있었던 자유로운 여행과 지식의 공유, 나눔 등은 전설로 남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벨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여성은 종전의 주도적인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이 옛 풍습에 결부된 종교상의 관행은 비록 그것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되기는 하였지만, 그 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요즘 들어 이러한 관행들이 지녔던 본래의 의미를 재규명하려는 노력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22) (베벨40p)

그리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모계 유일신 신앙은 오늘날의 도덕 윤리적 종교와는 다른 생활신앙으로써 비조직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전통 한국의 신앙과 무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통 한국의 경우 매일 새벽 자신의 집 장독대에서 정한 수와 촛불을 밝히고, 가족의 행복한 인생을 기원하거나, 정해진 절기 때 동네나 다른 장소에서 여 제사장에 의해서 종교체험과 신념을 공급받았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조직화 된 종교나, 조직화를 이루지 못한 각종 종교나, 샤머니즘 등에서 다 같이 영적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서구의 경우 조직적이고 특정한 장소를 통해 주기적으로 전도하고, 종교가 통치의 수단이 되면서 타 종교의 영적 체험을 마귀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인들이 염원했던 성(聖), 풍요, 불멸, 신화 제의, 샤먼 등을 현대인 역시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종교적 심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태생적으로 종교적 심성을 타고났으며, 인간은 종교적 인간형이 기본적이라는 점에서 영적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은 신을 인식할 수 있는 종교적 심성을 타고난 것입니다. 이는 수만 년 전부터 모계사회가 믿었다고 볼 수 있는 인간의 조상으로서 모계 유일신을 숭배했던 마고 시대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태고로부터 이어진 상징으로나 구전으로 전해진 우주 창생의 원리를 구체화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믿었던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계 하나님이 생성한 모신이 남신과 여신을 생성하였고, 이후 일부 후손이 지구에서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를 이어서 부족연합국가로 발전, 변화되는 과정을 ‘부도지’에서 기록한 사실과 상고대 한국의 역사서로써 ‘한단고기’ 등을 통해 긍정할 수 있습니다. 하여 부계 우월종교가 등장하면서부터 인간 스스로 자연의 일부로써 내지는 유일신의 피조물로써 격하하면서 영적 존재임을 부정하는 것은 상고사와 배치됨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현대인들이 기성종교에 대한 불만과 갈증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종교의 본질인 나눔을 실천하기보다 변명만 늘어놓거나, 상대를 지배하고자 하는 의도인 배타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이나, 혼란 등으로 실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계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종교가 정치적 수단으로 변모한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종교적 심성과 종교적 체험을 통해 발현된 단순했던 모계 신앙과 달리, 모계 신앙에서 발전된 부계 우월종교는 복잡하고 관념적이라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층민과 함께 생활화된 무교의 여 제사장 무당이 ‘영매자’(신접인)로서 조직화할 이유가 없고 나눔의 실천이 쉽습니다. 반면에 부계 우월종교는 교리로 조직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며 실천이 어렵습니다. 하여 조직종교처럼 정치적인 힘을 갖출 수 없었던 결과, 한민족의 전통 신앙임에도 불구하고, 무속신앙으로 전락한 사실로부터 부계 우월종교가 정치를 위한 수단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교가 종교의 본질을 이루고 있으며, 여 제사장과 여사제와 더불어 다수의 신자로 구성되어 있고, 유일신 종교의 원형으로써 체계적임에도 불구하고, 생태적으로 종교적 인간형인 여성이 정치적으로 무력한 결과 미신으로 전락 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종교로써 무교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미신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이는 ‘부도지’에서 전하고 있는 모계 유일신의 후손인 영적 존재가 인간으로 육화되어 순환 진보를 한다고 생각하여 나눔의 실천을 중시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신앙을 무교가 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일신 원형종교는 부족연합국가가 성립하면서부터, 부계 우월종교나, 부계 유일신 종교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3.3. 적극적 복지사회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여 제사장들이 ‘해혹복본’을 위한 ‘수증’(수행, 기도)을 행하였습니다.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무한과 극소의 곡선적인 시간을 이해하여 영혼 불멸을 믿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내면세계를 통해서 현실을 이해코자 한 결과일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빅뱅이라는 순간적인 창조의 시간과 이후 지구의 나이가 150억 년이라는 진화론적인 물리적 시간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곡선적인 시간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어서 앞의 사실을 긍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주물리학에서 블랙홀과 빅뱅처럼 극대와 극소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과 전체에서 수렴(음)과 확산(양)을 반복하며 균형을 이루고, 순환·진보한다고 생각한 것은 흡사합니다.

아무튼 모계사회는 모성이 분배권을 가진 복지사회로써, 공유제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권사회는 풍요한 사회였다고 최근에 인류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즉 모계사회는 기아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야만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추방되어 변방의 고립된 일부 미개한 부족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첨단 과학기술 시대인 오늘날에도 미개하거나, 야만의 삶을 살아가는 부족이 있는 것처럼, 문명의 시원을 이룬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도 미개한 부족이 있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행복 지수나 문명을 자본주의 사상으로 평가한 것도 원인이 될 것입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나눔을 최고의 덕목으로 설정하여 삶을 개척했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알았던, 사회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연합사회로 부계사회가 공고화됨에 따라 유발된 잦은 충돌로 인하여 삶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인간을 재창조하는 여성의 지위는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인류의 반인 여성들은 태고로부터 이룩한 모계 선조들의 위대한 유산과 영광을 잊은 체, 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영적 존재를 육화하는 모성이 아니라, 부계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씨받이로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또한 부계사회가 공고화한 후, 온갖 박해를 받았지만 태고로부터 변치 않는 여성의 영적 능력과 종교적 심성으로 인해 부계 우월종교에서도 신자의 대다수로 채워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적 체험을 하는 전통 한국의 무교는 오랫동안 기성종교로부터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배타적이지 않은 특징과 소규모의 사제조직으로 구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웃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계 우월적 조직종교가 지도자와 신자와 일정한 거리의 유지와 집단적이지만, 무교는 소집단과 개인의 행복한 인생을 위한 치유와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대자연에서 보여주고 있는 순환 체계를, 단계별 다른 구조로 인하여, 직관으로 이해해야 함에 따라 온전한 이해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성의 한계를 넘어 직관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물론 소수의 탁월한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수련을 통해서 알고 있으며, 혹자는 유체이탈이나 텔레파시 등의 초능력을 체험하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일반적 기억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이 잠금장치로 인해 체험할 수 없음에 따라 1회 적인 삶으로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부분이 발달함에 따라 전체를 인식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다수 사람은 반복 재생의 순환 체계를 대자연의 순환을 통해 느끼고 있지만, 현실의 어려움으로 이를 망각하거나 감성이 무디어져서 퇴화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동양에서는 사람의 마음과 몸의 결정체인 혼백(魂魄)에 대해서 음의 성질로 혼(넋, 생각)은 본래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으며, 양의 성질로 백(형체, 몸)은 지하에 묻혀 소멸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며, 모성이 죽은 자녀를 가장 먼저 만나 인도한다는 믿음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부계적 가치의 결과물인 생명 경시, 양극화, 환경오염, 핵무기, 개인 총기의 발달, 자원고갈 등으로 인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계가 본능적으로 녹색 생명 운동을 범세계적으로 펼쳐가고 있음을 상기해볼 때, 여성의 정치력이 지구촌 시대를 맞이하면서부터 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과거처럼 완력으로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며, 여성이 생활 정치의 주체가 되면 물리적 강제력도 수단으로써 통제할 수 있음에 따라 수만 년의 풍요와 평화로웠던 모권사회처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지구촌 시대를 맞이한 신인류의 삶을 위해 폭력적, 유사 폭력으로써 자본집중, 양극화, 환경오염 등의 극복과 독재적(독선적)인 인간형의 퇴출을 위한 새로운 분배양식의 성립을 주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이상인 적극적 복지사회는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함에 따라 여성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인류가 살아야 하는 지구촌 시대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물질적 기초를 보장하는 적극적 복지사회가 구현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계주의의 결과인 위험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즉 모계적 분배양식인 나눔의 신념을 구체화한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태로부터 태어난 인간이 오랫동안 여성을 무시한 배은망덕에 대한 보상은 적극적 복지사회의 구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태생적으로 복지적인 여성이 ‘천부인권’을 확장한 ‘천부소유권’의 다른 의미인 기본소득제를 성립하고, 생활 정치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4. 행복 지수가 높았던 사회

태고부터 聖, 풍요 다산, 신화와 제의 등을 주관하였던 여성은 부계사회가 등장한 후에도 샤먼, 예언가로서 씨족과 부족의 지도적인 지위에 있었던 사실에서 여제사장의 지위가 절대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유일신 원형종교로써 모계 유일신 신앙이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교권이 있었던 여성이 식량에 맞추어 수태를 조절하면서 씨족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생활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풍요로웠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에 이르러 풍요로웠다는 견해를 나타내는 학자가 많아지고 있음에 따라 설득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기적인 욕망을 동기유발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빈곤하여 승용차를 갖지 못하거나, 인터넷을 할 줄 모른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며, 단지 불편할 뿐인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제정일치의 모계사회는 종교적 인간형이 주류를 이루면서 수만 년에 걸쳐 행복 지수가 높은 사회였습니다.

이는 나눔을 생활화한 단순한 사회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의 사회도 각 지역에 따라 미개한 부족이나 야만적인 씨족도 있었다. 이는 오늘날까지 야만적인 집단이나, 미개한 삶을 살아가는 원시 부족도 남아 있음을 볼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4.1. 대모신 숭배

D. L. 카모디가 고대사회의 유일신으로 위대한 여신(The Great Goddess), 대모신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이는 종교 편에서 설명할 태고의 12한국의 모계 유일신으로써 마고 하나님을 실증하는 가설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선사시대(구석기, 신석기)와 역사시대의 초기에 하나의 여신이 숭배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숭배 관념은 스페인에서 멀리는 러시아까지 널리 퍼져있다.

둘째, 위대한 여신의 이름이 다양하고 또 그 신을 숭배하는 의식도 다양하지만 어떤 공통적인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통의 위대한 여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존재하였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여성적인 풍요(뱀, 특정의 나무들)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임신한 여성을 나타내주는 상징물을 통해 위대한 여신을 숭배하는 하나의 종교적 문화, 또는 적어도 문화층이 있었다는 가설은 매우 강력하게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

셋째, 이와 같이 위대한 여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널리 퍼져있었던 이유는 고대인들이 인간의 재생산은 오직 여성의 ‘창조’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가설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인들은 임신한 여성의 배가 불러오고 또 실제로 아이를 낳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여성의 창조성은 매우 공개적이고 명백하고 분명하였다. 한편 인간의 재생산에 있어서 남성의 역할은 이에 비해 덜 분명하고 감추어져 있다. 결과적으로 또 다른 세대를 위해서 죽음을 극복하는데 필수적인 성스러운 풍요를 가능케 해주고 표현해주는 인류생존의 과업은 여성의 역할로 간주 되었다.

다시 말해서 출산의 성스러움을 통해서 여성은 위대하고 우주적인 여신의 창조에 동참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것과는 가능한 한 거리가 먼 것에서 자신들의 ‘신격’을 구성해낸다.

따라서 위대한 여신(대모신)은 고대인들이 가장 신비스럽고 결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인간의 출생에 대한 경험에 의해 생겨난 고대인의 관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시해볼 수 있다.” (23) (같은 책 35-36P)

이러한 가설과 함께 위대한 여신에 대한 고고학적, 신화적 자료가 풍부합니다. 이러한 자료에서, 고대 종교의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은 조상신으로 중간신인 남신, 여신, 부족 여신 등으로 다신적인 형태였으며, 신격과 역할들이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스스로 모신의 후손으로 믿음에 따라 출산하는 모성이 생명의 재창조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태고의 모계사회에서 재창조와 생로병사의 중심에 있었던 여성이 우월적인 존재였으며, 비범했던 여 제사장은 후일 조상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즉 ‘부도지’에서 모계 유일신이 모신을 낳고, 남녀의 중간 신을 낳아서 신의 세계를 만든 다음, 수많은 영혼과 함께 우주 창생을 한 후, 영혼이 육화되었다고 믿었으며, 이를 이어주는 중보자로서 여 제사장이 순환 진보의 중심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교의 여 제사장이 인간을 해치려는 잡신을 꾸짖기도 함에 따라 일반 혼령이나 보통 신보다 우월한 존재로 생각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여 제사장이 여신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카모디가 인류문명의 초석을 여신이 이루었다는 가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메르, 바빌론, 이집트,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중국에는 세계를 창조한 여신들이 있습니다. 특정의 문화적 요소를 창조한 여신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인도, 아일레드, 수메르에는 알파벳, 언어, 그리고 문자를 고안해낸 여신들이 있다. 어떤 문화에서는 농약과 의약이 인자한 여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수우인디언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여신에 의해 들소가 생겨났다고 믿는다. 앞에서 제시한 가설이 맞는다면, 우리는 고대의 여성들이 그들 부족의 언어, 농경, 치료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고대인의 심성에 의하면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성(聖)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가 여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여성이 여신의 주요한 중재자라는 것을 말한다.” (24) (같은 책 36-37P)

하여 모계씨족사회에서 탁월한 여성이 씨족의 제사장으로서 추대될 만큼 열린 사회였기 때문에 인류문명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모계사회가 수만 년을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충분한 영양과 우수한 체력, 두뇌, 지혜, 복지적 성향 등 모든 면에서 여성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여 제사장의 풍모와 능력이 상당했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계사회가 등장하면서 부계혈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세습제(신분제)가 만들어짐에 따라 권력세습을 무능한 자라 할지라도, 상속하는 닫힌 사회에서 형성된 불안정한 사회에서 여성이 위축되었습니다.

즉 부계 우월주의가 공고화됨에 따라 불안정한 사회가 되었고, 다양한 신앙체계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계사회가 부족연합을 이루는 중앙집권적 정치사회가 되면서부터, 다신교와 정령신앙, 애니미즘, 토테미즘 등의 범신론적인 종교와 부계 우월적인 종교가 만들어졌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혼란기에 모계 유일신 종교를 원용한 부계 유일신 종교가 등장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계사회가 태고의 고대 한국의 주변 지역부터 서서히 공고화되면서부터, 모계 유일신 종교는 구심력을 잃게 되었고, 동시에 다신교적이고 범신론적으로 변모한 그룹과 모계 유일신을 믿던 서이족(유대족)에 의해서 부계 유일신 종교로 변모한 경우가 될 것입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동양에서는 원시 음양론을 근간으로 하는 민본주의 사회로 발전되었지만, 서구는 부계 유일신이 중심이 된 부계 신본주의 사회가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계 유일신을 숭배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씨족의 독자성을 존중한 분권적인 공유제로 필요한 만큼 공평하게 분배한 사회였습니다. 이는 아마도 당시의 사회가 인구가 매우 적음에 따라 씨족 상호 간의 협동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물론 여타의 동물과 달리 인간 스스로 인생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고등한 존재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입니다. 하여 단순한 사회로써 신앙 공동체 사회처럼, 종교적 신념을 구현하기 위한 ‘존재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공존을 중시한 사회였습니다.

 

4.2. 삶의 질을 추구

오늘날의 진화론적 추론으로 현대사회와 모계사회를 비교한다면, 모권사회는 동물 수준의 야만 사회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권사회가 행복 지수가 높았다는 사실을 최근 인류학자들의 주장을 상기해 볼 때 적어도 야만 사회가 아님은 확실합니다. 나눔을 통해 본향으로 되돌아올 것을 주문한 대모신의 약속을 믿은 문명사회였습니다.

하여 행복한 인생은 삶의 질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을 신의 후손으로, 상황에 따라 보이는 신으로 대우를 했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단지 만년 이상의 시간이 경과 되었다고 하여, 야만적인 사회로 볼 수는 없습니다. 즉 비록 만년이라는 시간이 경과 했다 할지라도, 공유제로 평화를 유지한 인간다운 생활을 하였다면 야만 사회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인디언 추장이 쓴 ‘빠빠라기’라는 책에서 서양인들은 왜 불편한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지를 의아해했던 것은 문화의 차이일 뿐, 결코 야만인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부계사회가 이룩한 대규모경제와 첨단과학기술문명 등 수많은 결과물과 문명의 초석을 이룬 모계 신본주의 사회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성애를 근간으로 하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를 미개한 야만의 사회로 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인 행복한 인생의 척도인 행복 지수를 고려할 때,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보다 행복했다는 가설이 학자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여 태고부터 주류를 이루었던 모계적 가치가 근대민주주의로 나타나면서 인류가 획기적으로 진보한 사실을 상기해 볼 때,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공고화된다면, 행복 지수가 높아질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유제를 분배양식으로 한 모계사회의 경우 설화나 성경 등을 참고로 한다면, 평균수명이 매우 길었던 반면, 독점을 정당화했던 부계사회의 경우 평균수명은 고대 그리스의 경우 19세 정도였다고 하며, 서구는 19세기에 이르러 23세였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연계가 제한적인 약육강식으로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음을 알았던 모계사회는 독점을 금기로 하였던 반면, 부계사회는 무한한 절대주의 독점을 추구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계사회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무한하게 먹지 않으며 나눔을 순리로 믿었던 반면, 부계사회는 자연계의 공존 법칙에서 일탈한 삶을 추구했던 결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4.3. 평화로운 삶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을 이어왔던 한민족의 습속과 역사, 전통문화, 고문서 등을 통해, 모계 신본주의 사회 이전 인류의 대다수 기간을 점했던 초기와 중기모계사회를 통찰력으로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초기 신라 시대 박제상의 ‘부도지’에서 태고모계사회를 이어 부계사회가 등장한 배경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물론 고대 한국으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무형문화재인 무교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씨족상호간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사회로써, 모계 유일신의 후손인 중간 신과 씨족 모신을 숭배하여 전체와 부분의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씨족상호간의 존중으로 수만 년에 걸쳐서 평화를 유지하여 오랫동안 사회를 안정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치안 비용이나, 전쟁 비용이 없음에 따라 착취나 수탈의 도미노 현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권사회의 여 제사장은 우수한 신체와 지혜로움, 관대한 성품 등으로 인하여 신성한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카모디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특히 여자아이의 출생은 종종 경사스러운 일이었고, 여성은 잘 알려져 있는 종교의식을 거행하고 서기, 의사 또는 상담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많은 문화적 유산(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성을 위한 의식들)이 여성에 의해 이룩되었다고 믿었으며, 여성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많은 종교 학자들은 위대한 여신을 믿는 문화는 호전적이기 보다는 평화 애호적이며 독재적이기 보다는 민주적이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25) (카모디 37-38P)

이처럼 모권사회가 인간의 개체성으로 인해 유발되는 갈등을 완화할 수 있었던 관용적인 사회였으며,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모신의 후손이라고 믿음에 따라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였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모계 유일신의 후손으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라는 3요소 중에서 인간이 주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삼신 중 하나의 신으로 믿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분권적이며 복지적인 사실에서 볼 때 비록 원시적이기는 하나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계사회가 수만 년에 걸쳐 이끌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공존이 전제되어있는 자연법칙에 충실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4.4. 우수한 정치역량

인간은 고대 중국의 양자가 주장했던, 이미 인간에게 내재 되어있는 것이 발현되고 있을 뿐이라고 한, ‘양지론’에 근거한다면, 창조적인 인간 자신을 스스로 영적 존재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는 태고의 인간을 고릴라 수준이었을 것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지만, 동물들은 문화를 창조한 일도 문명을 이룩한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과 동물이 몸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적인 부분을 비교할 수 있지만, 이성을 갖고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으로 우주를 이해하며 만든 가치를 창조하여 스스로 적응해가는 문화적 존재인 까닭에, 무지한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은 스스로 가장 적합한 생활양식을 창안하여 스스로 복종하는 정치문화나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를 획득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거나 재창조하는 생산양식이나 여러 자연물을 조합하고 가공하여 맛있게 먹는 음식문화 등을 볼 때,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믿었던 신의 후손임을 긍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여 인간은 신의 후손이기 때문에 있는 창조력을 비롯해 탁월한 능력은 자기책임을 전제로 한 특권임과 동시에, 공공선을 이루며 영적 진보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이러한 의무를 경시하거나 지키지 않았을 때, 하늘이 노하여 천재지변이나, 인재로 재앙을 당한다고 경고한 것이 오늘날 환경악화와 유별난 천재지변 등의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가 모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부계주의의 공고화로 반쪽민주주의에 머물고 있음에 따라 위험한 사회가 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계사회가 공고화되면서 성립한 부족연합국가가 전체주의로써 수천 년에 걸쳐 발달하면서 만들어진 절대 봉건제의 부패가 극심하여 근대사회로 진보했지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위한 수단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정자본주의로써 소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면서 민주주의가 좀 더 공고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구촌 시대는 모계적 분배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적극적 복지사회가 구현되어야 함에도,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로 퇴보하고 있습니다.

하여 인류의 발전과정이 구심력과 원심력에 의해 진폭(사이클)을 이루며 진보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모계민주주의’가 세계화되는 것이 바람직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신인류에게 민주주의가 민주적 분배양식을 위한 절차적 정의로 정치적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민주정치가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 ‘천부소유권’을 보장하는 모계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모민주의’로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의 근본을 백성으로 생각하고 백성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라고 한 동양의 민본주의가 수천 년 동안 백성의 복지가 국가의 목표(위민보국. 爲民保國)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인간의 민주성과 복지는 따로 때어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민주성과 복지본능은 결코 소멸되지 않으며, 어떠한 형태로 변모하고 재구성하여 진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서구의 경우 비복지적인 자유주의가 복지적인 민주주의와 결합을 해서 비복지적인 사회가 된 결과 제국주의로 인해 유발된 세계 1차, 2차 대전으로 인류가 참혹한 경험을 한 후, 인간에게 복지는 필수적임을 인식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사회가 발달할수록 모계적 가치인 복지사회로 역사 발전되어야 함을 간과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물론 부계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 진일보한 수정자본주의(소극적 복지)에서 적극적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모계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되기 위해 민주주의가 정치적 의무를 다하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하여 민주주의의 발전과 비례해서 생태적으로 민주적이고, 복지적인 여성의 정치적 역량을 크게 강화해야 할 시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태고부터 주류를 이루었던 모계주의가 부계주의의 등장으로 비주류가 되어 있을지라도, 종교나 사회제도에서 내재하고 있음에 따라 모계주의와 부계주의가 다 같이 주류를 이루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체주의 사회를 벗어나 근대민주주의 사회가 성립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정치적 역량이 발전된 결과를 놓고 볼 때 우수함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여성이 역량을 펼칠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계사회의 정치역량이 우수했음을 알 수 있는 특징으로써 최근까지 남아있는 사실을 카모디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시에라레온의 아프리카인들도 여성에게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이 사회의 여성은 자존심을 지니고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이러한 상황이 종교에 의해서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모두 특히 성년식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밀결사조직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비밀결사인 ‘산데’는 지역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 어린 소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속해있는 지역의 비밀결사 조직에 소속된다.

(모계적인 사회토대이다) 그러나 결혼 뒤에는 남편이 살고있는 마을로 가서 (남성 중심의 사회토대이다) 그곳의 비밀결사에 참여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출산을 할 즈음에는 자신이 태어난 마을로 돌아오는데 출산할 때는 종종 자신의 성년식을 도와주었던 여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이처럼 이들은 두 지역의 비밀결사에 참여함으로써 한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적인 봉사를 하며, 종교적이고 시민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 여성이 비밀결사를 통해서 부족과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비밀결사는 부족의 통합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 ……

젊은 여성이 비밀결사에 들어가는 입문식은 격리와 교육이라는 전통적인 과정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입문자들의 음핵을 제거하는 의식이 지니는 목적중의 하나도 이와 같이 남편의 아내들의 유대를 결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고통스런 의식은 다른 여자들의 후원 속에서 행해진다.

다른 여자들은 음식, 노래, 춤으로 이 의식의 주인공들을 위로한다. 이들의 관념에 의하면 그녀가 겪는 현재의 고통은 그녀의 앞으로의 풍요 다산을 확실히 해주며, 그녀의 남편에게 자신의 도덕적 사회적 성숙을 보여주는 표시이다. …… 이것을 통해서 입문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6) (같은 책 41P)

이처럼 모계사회는 마치 오늘날 복지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처럼 씨족상호간의 네트워크조직을 유지한 가운데 여성 비밀결사 조직에 의해 높은 지위를 유지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있었던 종교 경찰제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대 한국(단국)의 모계사회가 씨족을 대표하는 여 제사장이 주기적으로 지역별 회의에 참석하고, 만장일치에 이르도록 토론을 하였던 화백제도를 원형 민주주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씨족의 제사장이 씨족에 의해 직접 추대하거나, 씨족들 간의 연합회의는 대의제민주주의와 유사하며, 이러한 씨족연합의 화백제도는 합의제 민주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여성은 생태적으로 민주적이기 때문에, 원시공산제로써 원시 복지사회를 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계주의를 근간으로 한 세계화가 가능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여성이 생명녹색운동을 국제적인 NGO(비정부기구)로써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상기해볼 때, 민주주의의 정치역량이 기대됩니다.

 

 

5. 모계신본주의사회의 특성

 

5.1. 자연법칙에 충실한 사회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풍요했던 공유제 사회로써 사색의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는 인간만이 문화를 갖고 있으며, 고고학적 유물들의 대부분이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계사회가 스스로 ‘생로병사’에서 일어나는 의문이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풍부한 상상력과 의문을 풀고자 하는 본능을 충족하기 위해 사회협동을 하였습니다. 즉 수만 년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선조로부터 많은 정보와 지식의 전달 등과 영감과 체험, 검증 등을 통해서 만물의 척도가 된 것입니다.

하여 실험과 오류의 수정 등 수많은 검정과 사색을 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평안과 순환을 위해 서로가 돕는 중심에 인간이 있음을 알게 된 사회가 모계 신본주의 사회로 볼 수 있습니다.

중기모계사회는 인간 스스로 사색과 토론을 통해서 신의 후손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하여 인간은 스스로 삶을 재창조한 문화(가치, 신념, 질서, 생활양식)에 복종하고, 살아가는 문화적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생존을 위한 자연계의 질서에 적응하는 기계적인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동물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성적인 인간은 스스로 창조한 문화로 주체가 되고, 자연은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물의 척도로써 인간은 모든 사물의 본질이나 원리를 이해하여 관계를 설정하는 최고의 지위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여 모계사회는 종교를 만들고, 도구와 기술 등으로 기초를 튼튼히 다진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계의 제한적인 약육강식처럼, 모계사회는 공유제로 소유를 제한한 자연의 법칙에 충실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계사회의 훌륭한 결과물들은 후일 사유제를 근간으로 하는 부계사회를 등장케 했습니다.

즉 농업혁명을 일으킨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잉여물을 축적할 수 있는 저장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구의 증가와 동시에 씨족 간의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이 많아짐에 따라 닫힌 사회로써 부계혈통주의 사회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계사회는 부계혈통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신분제로 착취를 구조화하면서 갈등은 심화가 되었으며 대다수 민중이 만성빈곤에 시달린 사회였습니다. 물론 민중의 빈곤은 집권자의 탐욕과 민중을 통제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대사회의 귀족들은 근친혼으로 권력을 유지코자 함에 따라 만들어진 아둔하고 무능한 귀족들로 인하여 분쟁과 부패가 일상화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사람 역시 먹어야 사는 절박한 약점을 가지고 있음에 따라 짐승처럼, 먹는 문제를 통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할 정도의 억압을 정당화한 성악설적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5.2 ‘해혹복본’의 구현

모계사회가 수만 년을 평화롭게 이어왔다는 점에서 공유제가 인간에게 적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개인성과 사회성이 균형을 이루게 하여 영육의 조화를 이루게 하였으며, 동료로서 인간 상호 간의 연대감으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없는 가운데, 세계를 자유로운 여행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계사회는 공유제가 보편적 가치임에 따라 유목민처럼 자유로운 이동과 씨족상호간에 교환으로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직관적인 사회로써, 언어도 단순하여 어느 지역 누구에게나 압축된 언어나, 간단한 수화나, 몸짓(바디랭귀지)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유목민으로 세계여행을 했습니다.

즉 모계사회에서 꽃을 국화라 하여 어떤 종류의 꽃이든 국화로써 통일되어 있었던 것처럼, 언어는 은유적이고 단순하여 세상 어디를 가도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불멸하는 영혼이 순환 진보하면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순환을 벗어나, 본향으로 회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우주의 수많은 별과 행성 중의 하나인 지구에서 식물에 이어 동물이 생성된 후, 안정되었을 때 지구에 도래해서 나눔(사랑)을 익힌 다음 본향(상징적으로 북두칠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믿으라는 ‘해혹복본’을 신념으로 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지구는 동물들이 사는 열악한 곳으로 생각함에 따라 본향인 천시(天市)처럼, 지구에 신시(神市)를 만드는 것을 인간의 사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의 동물들은 사람과 달리 독풀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특별히 교육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인식하는 것에 비해서, 인간은 자동으로 구분하지 못하고 동물을 통한 경험과 인간의 교육을 통해서만 안다는 점에서 앞의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구가 인간의 본향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여 오늘날 인류가 마치 신시처럼, 지구촌 시대를 열게 된 것은 각자 부족한 부분들을 완성하기 위해서나, 전생에 갈고 닦은 것을 업그레이드하여 전문화하는 등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과를 조율하고, 계속 진보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 개인의 독자적인 코드를 갖고 순환 진보하기 적합한 곳을 선택한다면, 대체로 가족으로 재구성될 확률이 높다. 이는 대모신의 후손으로 인간은 중간적 존재로서 수행과정이 가족을 통해 익혀지고, 순환 진보한다고 생각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생로병사를 함께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갖게 되는 가족을 통해 영적 진보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생명 자체를 중시하여 동물을 살육할 때 좋은 곳으로 태어나라고 주문하며 간략한 희생제를 치렀던 사실에서 대우주의 순환 체계를 믿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애니미즘, 토테미즘이라고 하여 동물을 숭배한 것처럼, 오해하는 원인이다. 물론 부계사회가 되면서 다양한 종교가 만들어졌으며, 어떠한 지역에서는 가장 많이 사는 동물을 지명으로 표시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모계사회의 희생제가 후일 미개한 부족에 의한 다른 의미로 퇴보된 면도 있지만, 일단 더 많은 동물을 포획하기 위한 의미도 있었던 것을 우크라이나 근처의 부족들에 의해 아직도 전통적 사냥기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류가 동시에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진화가 더딘 사람이나 미개한 부족들의 경우 똑같은 말이라도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인류가 첨단 과학기술 문명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매체를 통해 아마존과 같은 오지에서는 미개한 생활을 하는 부족이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3. 농업혁명을 일으킨 사회

우수한 두뇌와 몸을 갖고 태어난 현생인류가 불현듯 출현하여 문화로 삶을 재창조하였습니다. 또한 화산의 축적된 에너지가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분출되는 것처럼, 오랫동안의 모계사회에 의해서 인간의 우수한 점을 육성하고 여타의 생각들을 검증한 후, 모계 유일신 종교를 만들고, 문명의 초석을 다져 농업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의 행동이나 주위 환경의 변화를 통해 징조나 암시를 이해하고, 예측하여 길흉을 점치거나, 규칙적인 자연현상을 관찰하여 사물의 법칙을 탐구하였습니다. 하여 인류는 마치 개인 컴퓨터가 네트워크를 이루어 슈퍼컴퓨터가 되는 것처럼, 사회협동을 하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문화적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이룩한 첨단 과학기술로 우주 창생의 의문을 풀고, 확인하고, 개척하면서 재창조한다는 점에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모계 하나님의 후손으로 생각한 것이나, 오랜 경험으로 형성된 신념인 ‘해혹복본’ 등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또한 갈고닦아 본향으로 돌아오라는 대모신의 기다림을 굳게 믿었던 사회였습니다. 이는 전통 한국 여인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자신의 집 모퉁이 장독대에서 ‘정한 수’(새벽의 맑은 물) 한 그릇을 상에 올려놓고, 후손을 위해 밤과 낮이 교차하는 새벽녘 어두컴컴할 때 정성을 다하여 기도합니다.

이는 나보다 너를, 후손을 위해 아름다운 마음의 씨를 뿌리며 열매가 맺기를 천지신명께 기도한 어머니와 후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대모신의 권고와 정서적으로 같습니다. 이는 태고로부터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는 모성애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여 가정을 성소로 이해했던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유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성이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남아와 여아를 출산하면서 음양론적 세계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음양이 교차하는 새벽에 모성의 기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모계 신본주의 원시 음양론은 ‘생로병사’의 중심에 있는 모성의 지극한 정성에 의해 축적되면서 발현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당시의 모성은 기술, 지식 등 모든 면이 우월하여 원시 음양 사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음과 양이 교차하면서 끝없는 순환 진보한다고 생각한 음양론적 세계관은 출산을 통해 체험되기 때문입니다. 하여 인류가 오늘날 첨단과학기술문명을 이룬 사실을 상기해 볼 때,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생명은 다양한 생으로 이어지며 순환 진보한다고 믿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삶을, 마치 정거장에서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것처럼, 잠시 머무는 곳으로 생각하여, 집착으로 인한 과중한 부담이나 격한 변화를 싫어하여 ‘존재의 삶’을 살았던 사실을 신인류는 참고해야 합니다.

 

5.4. 절대 존재 마고 삼신

대우주를 인식하는 주체로써 소우주 인간은 하늘, 땅, 사람 등 삼라만상을 대우주로 인식했습니다. 이를 의인화한 대모신을 마고 삼신이라 합니다. 이는 태몽에서 인지하는 인격신으로 변모한 신입니다.

물론 절대 존재로서 하나님은 구지 모계 유일신이나, 부계 유일신이라고 할 필요가 없겠지만, 모성이 인간을 재창조하며 삼신의 점지를 직접 받기 때문에 마고 삼신을 모계 하나님으로 칭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즉 모성의 태에서 함께한 삼신을 인간 스스로 모계 유일신으로 정하였습니다. 하여 생명과 함께한 대모신은 인간과 대화를 하는 신이라기보다, 삼라만상과 어떠한 현상이나 징조, 영감, 꿈, 이성 등으로 인식할 뿐, 간섭하지 않으면서 항상 함께하는 친근한 절대 존재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신은 대모신의 후손으로 중간 신(조상신)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중기모계사회에서 대모신의 분신인 중간 신(조상신)은 인간과 협력하여 현실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였습니다. 이는 고대한 국(단국)에서 삼신과 다양한 수호신들이 사람들의 처지에 맞게 도와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는 ‘곰 신앙’에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즉 부계 유일신의 피조물로써 인간은 오직 유일신만을 숭배해야 하는 부계 유일신 종교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인하여 극단적으로 불안정하고, 갈등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대안으로써 부계 유일신의 율법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여 인간적이며 친근한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신앙과 초월적이고 위력적 배타적인 절대주의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나눔의 실천(덕)을 생활화하고, 체험하여 본향에 되돌아가기를 염원하였습니다. 즉 인색함에 대한 벌로서 지구에 태어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전통 한국의 설화에서 하느님의 자식으로 벌을 받아서 지상으로 보내어졌다고 하는 내용과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지구에 머무는 동안 나눔의 덕을 쌓아 본향으로 되돌아가기를 염원한 사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약성경에 교훈 이상의 의미를 가진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라고 한 사실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자연생태계와 부합되는 합리적인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계사회가 등장하면서 형성된 공포정치로 형성된 이합집산의 과도기 과정에서 패망한 부족(패족)이 흩어지면서 원시적인 삶으로 퇴보하거나, 야만적인 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동물을 섭취할 때, 희생제를 하면서 죽은 생명체가 진보되기를 기원했던 사실을 볼 때, 순환·진보를 이해한 사회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대 여성들의 현명하고 지혜로웠던 삶을 카모디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비밀결사의 예를 보면 고대 여성들은 자연적인 삶을 살고 고대의 남성들은 문화적인 삶을 산다는 인류학적 주장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밀결사를 통해서 여성은 사춘기부터 출산 때까지 자신들의 자연적인 본능을 문화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 지역의 여성들은 난잡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위생적인 방법에 따라 자신들의 아이들을 낳아서 길러야 한다. 따라서 여성이 자연적인 삶을 본능적으로 산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비밀결사는 자의적인 조직체이며 (분명히 문화의 일부분 이다) 이것을 통해서 여성은 자신들의 삶을 인도하고, 자신들의 전체 부족사회를 규정짓는 중요한 규범들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낸다. 이 지역의 여성들은 자존심과 존엄성을 지니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비밀결사를 통해서 여성이 되는 것이 인간이 되는 완전한 방법이며 풍요와 질서의 신성한 존재와 제한 없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27) (카모디 41-42P)

 

5.5. 존경받은 모성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여성이 약간 우월한 가운데, 남녀 동수가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하였으며, 모계 신본주의 사고로 세상을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성이 양성을 낳음으로써 양성을 출산과 양육을 함으로써, 균형 잡힌 생각을 하였으며 남성들도 모성을 생명의 순환 창구로 생각하여 사람이 죽으면, 모성이 인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부모보다 먼저 자녀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카모디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대 여성들은 활력과 위엄이 있었다. 왜냐하면 고대사회에서는 또 다른 세대를 존속시키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궁은 인류를 존속시키는 풍요의 힘을 지니고 있다. 인류가 그러한 풍요의 힘과의 관계를 상실할수록 그리고 풍요로운 우주와 멀어질수록 여성은 종교에 의해서 부여된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28) (같은 책 45P)

그리고 이성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어머니를 존경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신의 본질과 흡사한 모성애가 인간에게 있는 영적 장치를 열어 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인간의 영적 감수성과 종교적 심성이 모성애에 의해서 열리고 발현된 결과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태고로부터 생명을 재창조하는 여성들이 신앙의 중심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부계 우월종교의 신자는 다수의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늑대소년 이야기에서 다시 한번 논변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모계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의 목적으로 수만 년간 공유제 분배양식을 보편적 가치로 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이 우수한 두뇌와 훌륭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공존을 중시하는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은 선한 존재임에 따라 근대사회를 만들 수 있었으며, 획기적인 인권신장과 첨단과학기술문명을 가능케 했습니다. 즉 인간이 모성의 태와 품에서 선한 존재로 양육되면서 열리는 영적 감응으로 세상을 해석한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성애로 발현된 종교는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부계 우월주의로 각색된 부계 우월종교로 변모하였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핵심 가치인 나눔은 명분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신의 후손으로 인간은 영적 존재가 아닌, 머리 좋은 동물 정도로 폄하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부족연합국가가 성립된 후, 지역 환경이나 역사적 배경, 생존전략, 문화적 차이 등에 의해 각양각색의 부계 우월종교가 난립하게 되면서 세상은 온통 신들의 전쟁처럼 변모한 결과입니다.

하여 부계사회에서 종교전쟁을 정당화한 것은, 의식을 지배하는 종교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종교와 전쟁은 어울리지 않는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씨족과 부족연합이라는 복합적인 사회를 형성한 부계사회가 이질적인 신앙이나 습속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종교전쟁이 빈번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폭력과 유사 폭력인 기아의 공포와 종교의 사랑이라는 두 축으로 소위 ‘공포와 사랑’, 정치적으로는 ‘당근과 채찍’이라는 상반된 내용의 중심에 종교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계사회는 정치와 심지어 종교에서도 공포나 채찍이 더 많은, 공포가 만연한 사회였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6. 모계 신본주의 사회의 쇠락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나눔을 본질로 하는 종교가 통치 수단으로 되거나, 착취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등 종교가 세속화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성애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원형종교보다, 남성이 출산을 체험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부계 우월종교는 실용적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모성의 출산과 양육의 과정을 통해 모성애가 발현되며 신생아는 모성을 통해서 신의 본질을 체험한 것과 부계의 작위적인 신 관념과 다른 것입니다. 하여 모계사회의 종교는 모성애를 근간으로 하는 보살핌, 부드러움, 박애, 나눔, 순환 진보 등 긍정적인 것을 본질로 이해했던 반면, 부계 우월종교는 인간에게 신을 공포의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모계사회는 신을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운 비범한 사람(성현)을 존경하여 추종한 인본주의 사회였습니다. 하여 모계 유일신 종교와 이를 원용한 부계 유일신 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완만하여 직관적, 입체적인 사고로 내면 탐구의 기술이 발달했던 반면, 부계사회는 불안정함으로 인하여 유발된 조급증으로 내면 탐구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시야가 정지해 있을 때 시야가 약 200도 이상을 볼 수 있지만, 자동차로 빠르게 속도를 낼수록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사회로 변모한 부계사회에서는 종교사회였던 모계사회보다 영적 체험이 힘들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내면 탐구를 통해 외면을 이해했던 반면, 부계사회는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빙산의 일각과 같은 가시적인 부분과 보이지 않는 훨씬 큰 빙산의 뿌리와 같은 내면세계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생각했습니다. 즉 몸이 소멸할지라도 물리적인 시공의 제약을 초월한 영혼(상념)은 3차원에서 육화되고, 순환·진보함을 믿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학습효과라기보다 빙산의 예처럼, 신의 후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주체로써 진리 탐구의 욕구와 영감을 느끼는 독특한 존재라는 점에서 합당한 견해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직관이 발달한 모계사회가 오늘날 150억 년의 물리적 거리인 우주의 끝을 넘어 시공을 초월하는 다른 차원과 교류한다는 의미가 있는 텔레파시나 초능력으로 교류한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쌓아놓은 결과로 재생 이동한다고 믿었던 사실을 상기해 볼 때, 모계사회는 종교적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고대 중국의 전한의 동중서 (BC179-104)가 몸의 작은 뼈가 366개로써 1년 365일과 동일 하다거나, 손가락이 10개이며 인간의 재창조가 10개월에 완성되어 출산 되는 등 인간을 통해서 대우주나, 자연법칙을 이해한 것이나, 수학적으로도 다른 차원을 이해할 수 있지만, 종교적 상상력은 적은 편입니다.

 

5.7. 선함을 배양한 사회

대다수 사람은 선량하고 양심적이며 다툼을 싫어하는 까닭에 제3자로써 공동체에 판단을 구하여 갈등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사회적 (정치적) 동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견해차로 인한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누가 잘못한 것인지를 길을 막아놓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라’라고 하거나, 개인이 아닌 집단 간 수탈이나 살육을 할 경우, 양심의 괴로움을 제삼자인 국가에 전가하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표리부동한 점 등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생태계 파괴, 양극화, 인간성 황폐화로 인한 흉악범죄의 기승 등 인생을 참담하게 하는 위험한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정치경제사회제도가 만들어져야 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인간 상호 간의 불신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극단적인 경향으로 인해 법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권리충돌로 인한 위험한 사회가 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 양극화현상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불신과 고통, 사회적 책임의 망각, 환경오염, 갈등 폭발, 범죄의 흉포화, 반사회적 범죄의 조직화, 지능화하는 등으로 사회적비용의 천문학적 증가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과 배치되는 지나친 생존경쟁으로 인해 유발되는 가족해체나, 선을 지향하는 순환 진보와 역행하는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여 모계사회가 순환 체계를 상징으로 압축하여 전달하였고, 대모신의 후손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공유제나, 수많은 경험과 농사기술, 농기구의 발명, 문자의 발명 등으로 인류가 문명을 이룩할 수 있는 기초를 확립한 것을 상기해본다면, 모계적 분배양식인 ‘모민주의’ 정치경제 제도가 세계화되는 것도 바람직함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우수한 여성들에 의해서 농경 정착을 시작했던 중기 모권사회에서 모성들은 출산 양육, 씨족복지, 모신 숭배,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점술, 씨족 간의 기술교류, 의료행위 등을 하며 씨족의 중심역할을 하였고, 남성들은 농사, 목축, 사냥, 땔감 확보, 건축 등 단순노동을 하며 모계를 보조한 사실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하여 오늘날 양극화나 탈복지정책, 가공할 무기체계 등으로 위험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 부계적 분배양식인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도, 바람직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 존엄을 구현하기 위해 적합한 모계주의 분배양식이 보편적 가치로 되는 것이, 합리적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5.8. 내면 탐구의 생활화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신을 인식하는 존재인 인간을 모신의 후손으로 믿었던 것은 마치 땅속의 씨앗이 때가 되어 적당한 조건에 이르면 발아되는 것처럼, 인간에게 내재 된 영적 감응 장치가 열리고 자연적으로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태초의 신앙은 인간이 순환 진보를 거치면서 알게 된 것을 환경에 적합한, 삶에 필요로 재구성된 실용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태고로부터 비범한 여 제사장의 출산 과정에서 있었던 복식호흡과 좌선으로 내면을 탐구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신체 구조에서 완벽한 자세이며 내면 탐구의 기술 중의 하나로써, 오늘날 ‘선’(禪)이라고도 하는 좌선으로 평온한 가운데 내공을 쌓은 결과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내면의 세계를 이성과 감성 내지는 직관으로 이해하여 표현할 수 있는 비범한 모계 종교지도자의 탄생으로 원형종교가 구체화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모계 신본주의 사회에서 삼신의 의지로 하늘이 열리고, 땅이 만들어졌으며, 후일 안정된 후 인간이 살게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남녀의 결합으로써 재창조된 인간은 본향으로 되돌아가기를 염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처럼 생각하여, 마음은 내용물로서 변화무쌍함에 따라 나눔의 실천을 통해 마음을 갈고 닦아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영혼이 정적이고, 마음은 동적으로 생각함에 따라 영적인 것의 진화는 현재 실존하고 있는 마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현실 세계에서 나눔으로 마음을 연마해야 본향으로 도달하게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는 모계 신본주의 사회가 개인의 욕구를 한발씩 양보하여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 공유제를 한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사회로 규모가 커짐에 따라 부계의 지위가 상승하여 공동재산의 관리를 맡게 되면서부터, 모권은 쇠락하게 되었으며 부계를 보조하는 지위로 변모하였습니다.

즉 문명의 시원을 이룬 모계 신본주의 사회는 닫힌 사회(신분제)로 발전한 부계사회에 의해 소멸이 된 것입니다. 물론 부계사회의 등장으로 출산과 양육, 모성애, 복지적 성향 등은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훌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약점이 된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계사회에서는 10개월간의 과정을 거치는 출산을 기적으로써 생각했던 반면, 부계사회는 정복자나 국가 시조의 탄생 설화에서 알이나 특수한 방식 등에 의해서 태어났다고 주장하여 출산의 경이로움을 남성들은 애써 외면하려 하였던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계혈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승리한 집단이 영원히 지배하기 위한 제도를 계속 생성하며, 불공평함을 정당화함에 따라 여성은 퇴보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계사회가 단순히 생존경쟁을 넘어 합법적인 수탈조직에 참여해야만 하는 사회로써, 마치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상태와 같은 험악한 사회에서 여성은 진보할 수 없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계주의의 등장과 함께 통찰, 용서, 호기심, 개방, 아름다운, 인내, 친화력, 공정, 활력, 겸손, 자율성, 영성, 평화, 창의, 양보, 진지함, 유모어, 나눔, 봉사, 사랑, 희망 등 긍정적인 용어보다, 부정적인 용어인 전쟁과 불안정, 증오, 공포, 폭력, 비평화 등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부정적인 용어가 많아지는 만큼, 여성의 삶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따라서 부계적 가치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 모계적 가치는 명분으로 작용함에 따라 실리를 위한 새로운 정치경제 제도가 성립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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